26년간 음계(音階) 위를 걸어온 ‘부활’
26년간 음계(音階) 위를 걸어온 ‘부활’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8.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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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 노래 하고, 환갑에도 연주하는 그룹 될 것”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 우리 락 음악의 중심에 있는 그룹 ‘부활’. 그들은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의 노래로 데뷔 초 큰 인기를 얻었지만, 많은 시련도 겪었다. 하지만 그 시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리더 김태원을 중심으로 26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락’이라는 음악과 함께 해왔다. 최근 김태원은 예능 <남자의 자격>에서 ‘할마에’라는 별명을 얻으며 또 다른 카리스마와 즐거움을 주는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영역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기를 얻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음악을 사랑해, 음악에 미쳐 살고 있다. 그들의 기획사 사무실 겸 카페 ‘코끼리 탈출하다’에서 만난 그룹 부활은, 부드러움 속 강렬함을 담고 있는 그들의 음악과 닮아 있었다.

 

▲김태원, 채제민, 정동하, 서재혁 (좌로 부터 시계 방향)

※(김) 기타 김태원, (채) 드럼 채제민, (서) 베이스 서재혁, (정) 보컬 정동하

요사이 <남자의 자격>을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예능 출연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요?

(김) 예능에 대해서는 90년대 초부터 멤버인 채제민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습니다. (채) 방송에서 나가는 태원이 형의 모습이 일상이랑 똑같아요. 예능감이라기보다 태원이형 만의 독특한 매력이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김) 부활이 어려울 때 누군가가 나서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2008년 말에 우연한 계기가 돼서 맹수들이 으르렁 거리는 MBC <라디오 스타>에 혈혈단신으로 참여해 승부를 건겁니다. (채) 같이 출연했던 김흥국씨가 라디오 스케쥴 때문에 먼저 가, 혼자 남았던 태원이형이 그 5명의 MC들의 공격을 멋있게 다 이겨내는 것을 봤습니다. (김) 한가정의 가장으로 나갔다고 보면 됩니다. 그 절박함이 김구라 씨의 절박함 보다 위였다는 거죠.(웃음) 검색어 1위를 한 것이 제가 음악을 하면서 처음이었습니다. 2008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채) 태원이 형의 락커 정신이 좋은 반응을 얻은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에 대비해 멘트를 준비했다면 오히려 그런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거에요.

스키장 CF가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김) 돈 받고 하는 건데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없다고 느껴져 정말 미안했습니다. 대사도 없고 작가분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었어요. 돈을 적게 받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큰 역할을 해내야 할 것 같았지만 별로 한 것도 없고 리프트만 몇 번 타다 끝났습니다. (채) 추위를 잘 못 견디는데 그래도 나름 큰 역할을 한 거에요.(웃음) (김) 리프트를 세 번 정도 탄 것 같아요. 스텝분들의 연출력이 굉장한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재밌는 영상이 나올지는 몰랐거든요. (채) 원래는 뒷모습 대역으로 여자 출연자가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태원이형의 뒷모습을 보고 그냥 태원이형으로 가기로 했답니다. (김) 몸이 좋지 않아 많이 말랐을 때라 여자 스키복이 잘 맞아 뒤태가 좋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 것 같습니다.

부활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김) 음악이라는 것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래 들려지면 좋은 음악이 됩니다. 시대가 급변하다 보니깐 오래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게 됐고 선택도 빨리하게 됐죠. 70-80년대만 해도 굉장히 음악이 오래 들려졌습니다. 차트의 1등이 돼도 7주 정도는 유지가 됐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몇 일만에 차트의 순위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만큼 오래들을 수 있는 음악이 없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부활은 26년이 됐고 80년도와 90년도에 들었던 우리 음악이 추억이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강렬할 것 같은 락 음악을 하면서도, 서정적인 가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김) 서정적인 가사라는 것은 제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깐 그렇게 느끼지만 제 스스로 서정적이라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락 음악에 서정적인 가사가 어울리기 어렵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슬픈 것이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이나 딥 퍼플(Deep PurPle)도 발라드 음악들이 대중들에게 더 알려져 있고 그들의 실험적인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락 음악 자체에도 발라드 음악들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더 사랑을 받는 것이죠.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아쉽습니다.

부활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계속 음악을 해왔을까요?

(김) 부활이 성공을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음악을 해온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활이 화면에 보일 때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26년 중에 20년은 심해에 있었습니다. 가끔 반짝할 때의 모습만 알고 있는 것이죠. (채) 사실 태원이형은 그 반짝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계속해 나갔을 것 같습니다. (김) 저뿐만이 아니라 부활의 4명은 음악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드럼을 맡고 있는 채제민도 부활에 들어온지 14년이 돼 교체된 멤버보다 원년멤버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죠. 현재와 미래를 이 멤버들과 함께하는 것이니깐 부활의 원 맴버들이라고 봐야합니다. 계속 빛을 보았다면 우리가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마어마한 자만과 교만을 어떻게 이겨냈겠습니까. 그럴 때 쯤 시련이 찾아온 것이 우리가 26년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된 것 같습니다.

정동하 씨는 부활의 멤버가 된 것이 큰 영광이자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요?

(정) 워낙 유명하고 걸출한 선배들이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인데 제가 그분들을 경쟁자로 생각했다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무대위에서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그분들을 저의 음악적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그분들이 계셨던 곳에 남아서 제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들을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컬로 정동하 씨가 들어오고 난 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 부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활동을 하고 있는 보컬멤버입니다. 저 친구도 대단한 것이지만 저희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팀이라는 것은 참아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참아가며 정이 들고 서로의 단점을 발견하면서 서로 감싸는 것이 팀이거든요. 장점이 화려한 사람 넷이 모여서 팀을 이룰 순 없습니다. 다 부족함이 있는 것이죠. 제가 아는 남자의 자격 7명도 다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예능 출연하면서 술을 끊었다고 하던데, 그런 결정을 한 계기가 있을까요?

(김) 알콜 중독까지 갔었습니다. 그때는 죽든지 살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기로에 있었죠. 입원한 병실에서 ‘과연 이대로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꿈에 동화될 수 있을까’, ‘내가 술을 끊는다면 그게 가능할 수 있지도 않을까’라는 생각에, 술을 단번에 끊게 됐어요. 죽느냐 사느냐에서 삶을 선택한 것이죠. (정) 정말 깜짝 놀랐어요. 15년간 매일같이 마셔오시던 술을 바로 다음 날부터 끊으시더라구요.

그렇다면 술을 포기하면서 까지 이루고 싶은 이상과 꿈이 무엇인가요?

(김) 아주 단순하게 음악을 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하고 싶은 소년이었고, 청년이었으며, 어른이 됐고, 이제는 늙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은 똑같아요. 저는 단지 음악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 동안에 유명해질 수 있고, 가시밭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그 가운데 음악이 함께하기 때문에 모든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부활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음악에 미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음악으로 채워지고 있는 가요계의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채) 더 열심히 해야죠. 대중음악이니깐 대중이 선택을 해서 듣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돌이 대세인 것은, 밴드들이 더 훌륭하게 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대중들이 봤을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장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와중에서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장르들의 음악들이 잘 못해줘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김) 다리를 놓을 때, 기반 공사가 좋아야 그것이 오래가는 것인데, 지금 우리나라 음악의 현실은 기초 공사가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음악의 장르가 너무 한쪽에 집중돼 있습니다. 또 화려하지만 그 음악의 뿌리가 없습니다. 지금의 아이돌 가수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한 것 아닌가요? 그 선배들은 음악의 뿌리이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음악의 선배들이 다 사라져 있는 상황입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 아이돌들이 지금은 굉장히 화려할 수 있지만 과연 저희처럼 시련이 왔을 때도 견디면서 20년 넘게 음악을 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을 목숨을 걸고 죽을 때까지 해나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화려함에 취해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함이 사라지더라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활 엔터테이먼트라는 기획사를 직접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서) '코끼리 탈출하다'는 카페이자 저희 사무실입니다. 편안하게 인터뷰도 하고 팬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곳이죠. 지금은 제가 부활 엔터테인먼트 대표해서 전반적인 실무를 보고 있습니다. 12번의 앨범이 나오는 동안 8번 소속사를 옮겼는데 그때마다 부활 홈페이지 주소도 바껴 필요한 자료들을 찾는 것이 어려웠어요. 초창기 자료는 거의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우리가 직접 나서기로 한 겁니다. 기획사를 차린지는 2년 정도가 됐습니다. 이제 저희 나름대로 영상, 사진, 보도자료 등 각종 자료들을 관리하고 있고, 멤버들이 같이 참여해 더 효율적인 부분도 있고, 특히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좋은 방향으로 잘 진행되고 있어요.

정동하 씨는 처음에 부활의 멤버가 된 것이 큰 영광이자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요?

(정) 워낙 유명하고 걸출한 선배들이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인데 제가 그분들을 경쟁자로 생각했다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무대 위에서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그분들을 저의 음악적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그분들이 계셨던 곳에 남아서 제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한 이라고 생각했지 그들을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속곡 동화는 어떤 노래인가요.

(정) 12집의 앨범의 파트1은 지난해 8월에 나왔었고 파트2로 올해 3월에 앨범이 나왔는데 ‘사랑이라는건’으로 타이틀 이후 ‘동화’라는 후속곡을 발표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앨범에 들어 갈 노래는 아니었어요. 태원이형이 나중에 넣어야겠다고 남겨 둔 곡이었는데, 저희 매니저 중 영화 라디오스타의 안성기와 비슷한 느낌의 매니저가 있는데, 그 형이 태원이 형에게 이 노래가 너무 좋다고 이번 앨범에 꼭 넣었으면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앨범에 포함됐어요.

이해인 수녀님의 시 ‘친구야, 너는 아니’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해인 수녀님과는 인연이 궁금합니다.

(김) 필리핀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감동을 받아 저희 집에 식사 초대를 했었습니다. 식사를 함께하는 동안 이런 저런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말씀드렸고, 그때 마음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녀님의 글로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죠. 하지만 그분은 제가 하는 음악인 락이 시끄러울 것으로 생각하시고 큰 관심을 갖지 않으셨어요. 거절은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분의 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야 너는 아니’를 발견하고 곡을 만들어 이해인 수녀님께 들려드렸습니다. 이해님 수녀님께서 음악을 들으시곤 락그룹이라고 해서 꼭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셨고, 그때부터 인연이 된 겁니다.

시 ‘친구야, 너는 아니’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김) ‘친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엄마’라는 소재가 담긴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를 노래에다가 억지로 끼워 맞추면 대중가요 같지 않고 건전가요 같은 느낌이 되는데, ‘친구야 너는 아니’는 마치 노랫말처럼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곡을 쓰다 보니 가사가 더욱 와 닿았어요.

2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해온 팬들이 큰 힘이 될 것 같은데요

(김) 우리가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다음에 생겨난 팬들도 감사하지만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항상 함께해준 초창기 팬들이 마음속에 더 각인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분들 때문에 지금의 부활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부활의 역사를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현재만 좋아해주시지 마시고 부활의 전체를, 부활의 역사를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故김재기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있어 지금의 부활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만족합니다.

10년 뒤의 부활의 모습을 상상해 보셨나요?

(김) 10년 뒤에 부활은 단지 10년 늙어 있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저희는 미래를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로 늙어서 할아버지들이 무대에 설 것이며 정동하는 중년이 됐겠죠. 보컬이 불혹이고 드럼, 베이스, 기타가 환갑인 그런 팀이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