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국제영화제, 무엇이 문제인가
충무로국제영화제, 무엇이 문제인가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9.0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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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망가지면 안 될 충무로 영화제

지난 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그 네 번째 발걸음을 이어갔다.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유독 올해는 더욱 힘든 발걸음이었다. ‘영화제가 열린다, 열리지 않는다’의 말들이 오간 끝에 개막식을 무사히 치러냈다. 하지만 다른 여타 영화제들이 해를 넘기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충무로국제영화제는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인 충무로에서 개최되는 영화제가 모두의 축복을 받지 못한 채 반쪽 행사로 전락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도 삐걱거렸던 영화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공식 기자회견이 계획됐던 지난 8월 4일,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통보 메일이 각 언론사로 전달됐다. 영화제측은 서울시로부터 받기로 한 예산취의 집행이 결정 나지 않아 확정되지 않은 잘못된 사항을 알리는 것보다 기자회견을 연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서울시 지원금 30억 원과 중구청 지원금 15억 원을 비롯, 각종 기업 스폰서까지 합해 약 60억 원의 예산으로 화려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올해는 중구청의 지원금 7억 원과 지난해 영화제 예산 잉여금 3억, 부가세 환급금 3억 3천만 원, 기업체 후원금(우리은행5천 만원, 기타 5천 600만원) 등을 모아 약 15억 원 정도의 대폭 감소된 예산으로 영화제가 시작됐다.

당초 서울시로부터 약 25억 원의 예산을 기대했던 영화제 측은 어쩔 수 없이 지난 해 첫 신설됐던 경쟁부문인 ‘충무로오퍼스’를 없애고 축소된 예산에 맞춰 각종 부대행사와 게스트, 심사위원 초청 등을 취소하고, 조직을 개편하는 등 급하게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누구를 위한 영화제인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지자체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예산 중 대부분은 서울시와 중구의 지원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제가 지자체의 입김을 피해가며 독립성을 유지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대부분의 영화제는 태생적으로 그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 지자체들의 부체가 늘어나면서 폐지되는 영화제가 비일비재하다. 지자체의 살림이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홍보비기 때문이다. 실례로 2007년, 고양시 주최로 개최되던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가 3억 원 예산 삭감으로 폐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존폐가 갈리기도 한다. 지차제의 수장이 바뀌게 되면 이전의 정책이나 관련 조직은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다. 정동일 전 중구청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지난 6.2지방선거 이후 중구의 구청장과 구의원들이 대폭 교체되면서, “전 구청장의 전시성 행사”라는 논란 아래 중구의회 예산 집행 과정에서 진통을 겪기도 했다.

현재 영화제측은 올해 충무로국제영화제 사단 법인을 출범시키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제의 조직위원회가 여전히 중구청 내에 위치있다.  어떠한 역할을 해낼 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상황이다.

▲사단법인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올해 공식 출범했다.
적절한 규모인가? 

두 번째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규모에 관한 문제이다. 60년의 역사를 맞이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독일 베를린 영화제의 예산 규모가 40억 원 정도이다. 아직 4회 밖에 되지 않은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지난해 60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올해 그보다 줄어들었다지만 45억 원의 예산 규모로 영화제를 계획하는 등 과도한 예산을 집행해왔다.

사실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양적인 성장에 집착해 물량으로 밀어 붙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올해 6월까지 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정동일 전 중구청장은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를 칸 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제와 견줄 수 있는 영화제로 키울 것”이라는 야심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영화제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서울시와 공동 개최를 논의하다 실패해 큰 혼란을 가져와 영화제 본 행사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인들의 호응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9일간의 영화제를 위해 40억 원을 쓴다는 것은 예산낭비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를 상영하는데 드는 1년 예산이 20억 원 남짓인데 그 예산이면 어려운 여건에서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을 지원하는 일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구의회에서도 지난해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관련 특별위원회를 통해 영화제가 3회째를 개최하면서 시행 과정상 문제점과 국제 행사로서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질타와 함께 특히, 예산 낭비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다. 올해 4월에는 영화제사무국이 홍보비만 약 10억 원을 사용하는 등 방만한 운영을 해왔다며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서울시에서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영화제측 내에서 자정의 목소리도 있었다. 지난 8월 27일 개최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갑의 부조직위원장은 “영화제에서 예산을 지나치게 높게 잡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다. 15억 정도면 충분히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영화제의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공식기자회견 모습
정체성을 살려라!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 가장 걸림돌은 뚜렷한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단편과 장편을 비롯해 고전까지 모두 섞여있어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 충무로 영화제는 어떤 영화제라고 단정 짓기 어려우며 국내에서 개최되는 여타 다른 국제영화제들과의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1996년 첫 발걸음을 내딪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을 거두면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제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때문에 국내에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영화제들이 생겨났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제의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성격의 영화제들이 많이 존재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4년 전부터 첫 걸음을 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나아갈 방향으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 전통의 발견, 한국 영화 역사의 복원, 그리고 21세기의 급변하는 매체 환경의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영화 문화의 창조를 지향하는 영화 축제’라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매년 프로그래머가 교체돼 개최될 때마다 성격이 조금씩 변해가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만의 특성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충무로와 함께해온 영화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고전영화 상영도 대폭 축소됐고 국제영화제라는 명분을 위해 초청국과 작품의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제4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예산 규모가 축소되면서 충무로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대한극장에서의 상영마저 제외돼, 우리 영화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상영 공간을 영화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공간마저 생략되는 영화제라면 충무로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계의 원로들이 아닌 스타들로 가득 채워진 영화제 개막식은 과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우리 영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영화제가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프로그램에 포함된 영화들은 ‘충무로’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 충무로만의 개성을 살렸다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서 많은 기자들이 정체성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영화제 관계자들은 예산 문제만 거론하며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영화제의 특색이나 정체성을 살려나가기 위한 고민이 부족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큰 위기가 있었지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올해도 무사히 개막했다.

‘충무로’라는 이름에 걸맞는 영화제를 위해서

영화의 메카로서 그 나라의 영화산업을 대표하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지명은 미국의 할리우드와 함께 우리의 충무로뿐이다. ‘충무로’는 하나의 브랜드로서 우리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것이다. 비록 충무로에 영화계의 많은 배우와 감독들을 비롯해 영화제작사들이 운집해 있던 것은 지난 일이 돼 버렸지만, 여전히 충무로에 대한 향수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 되는 것’을 지향하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아직까지 ‘충무로’라는 타이틀에 맞는 대표성과 그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방만한 예산 운용과 양적인 성장만을 지향한다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영화제가 운영돼 진정한 관객은 찾아 볼 수 없다면 영화제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영화팬들이 등을 져 찾지 않는 영화제를 공무원들로 채우거나 단체 관람을 유도하고 공짜표를 남발하는 등 지금까지의 모습을 지속한다면, 오히려 ‘충무로’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공인 영화팬들을 뒤로한 ‘그들만의 축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개선해야할 점들이 많다. 사단 법인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의 확보와 함께 지자체로부터의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화제의 정체성을 살려 팬들의 관심을 얻어 낼 수 있는 영화제로 발전해 나가야한다는 점이다.

칸 영화제도 1948년부터 3년간 예산 문제로 개최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현재까지 발전을 거듭해 세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제 4살이 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 나가야할 시점이다. 위기가 있었지만 올해도 영화제가 열렸다. 그간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5회가 아닌 향후 50회, 100회를 보고 천천히 나아가 진정한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충무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충무로국제영화제가 되길 기대해본다.

성열한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