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현주소 파헤치다(上)
갈 곳 잃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현주소 파헤치다(上)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9.1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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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계의 대안(對案)있는 안티(Anti),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우리나라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그 속에 꽃피운 찬란한 문화는 우리가 대한민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파괴되어 가는 수많은 문화재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 역사를 남들에게 떳떳이 내세울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 와중에 정부나 기업의 도움 하나 없이 순수한 민간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이다. 주변의 그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논리 정연하게 문화재 보호를 주장하는 우리나라 역사의 파수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과 함께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 황평우 소장과의 인터뷰는 다음호까지 계속됩니다. 이는 우리문화·역사 지키기에 크나큰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이번호에서는 최근 논란이 된 국새(國璽) 관련 문제와 함께 ‘뜨거운 감자’인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내용을 개제합니다. 다음호에서는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를 비롯한 문화재 환수문제 등을 집중 조명합니다.

◈신비주의와 상업주의, 관료가 결탁한 코미디

요즘 민홍규 전 4대 국새제작단장의 국민을 우롱한 희대의 사기극으로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민홍규는 경찰 조사에서 600년 된 전통 방식의 주물기법으로 국새를 만드는 원천기술이 없다고 자백했으며, 국새 제작은 경남 산청의 전통 가마가 아닌 이천의 전기로에서 했다고 털어놨다. 국새를 만들고 남은 것을 포함해 금 1.2㎏을 빼돌린 것도 시인했다. 그동안 의혹에 휩싸였던 제4대 국새 제작은 이렇게 한편의 코미디로 막을 내렸다.

“처음에 ‘저 사람이 왜 국새장(國璽匠)을 하지’ 하는 의심은 했었죠.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희가 모를 리 없는데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보니까 문화계나 여타 연관된 계열에서 이른바 힘쓴다는 사람한테는 가서 전부 다 붙었더라고요”

도장이라는 것은 자기를 상징하는, 동북아권 사람들의 특수한 문화 중 하나다. 우리가 어릴 때 지우개에 자신의 이름을 파는 것은 손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상징하는 것에 민감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넓게 보면 교황이 반지를 이용해 찍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자기를 표현하는 인류공통의 문화다. 그렇기에 숨겨진 국새의 전통제작기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전통기법이 존재하는 것처럼 꾸민 이번 국새사건에 대해 황 소장은 ‘포장을 통한 상업주의와의 결탁’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고 하는데 이게 조금 이상하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신비주의로 포장을 해버려요. 국새에 관한 제대로 된 학사논문조차 하나 없는 이 시점에 민홍규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던 거죠. 극단적 신비주의로 포장해놓고는 아주 천박한 상업주의와 결합을 해버리죠. 이번에 모 백화점에 내놨다는 40억짜리 국새나 한국골프종합전시회에 나왔던 1억원짜리 퍼터같은 게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어요. 더불어 제대로 된 조사하나 못한 멍청한 행정관리들이 결합을 한 꼴이죠”

▲국새의혹과 관련해 사기 혐의와 금 횡령 혐의를 인정한 민홍규 전 4대 국세제작단장이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재소환되고 있는 모습

숭례문 사건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형태가 사라진 것이라면, 이번 국새 사건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신을 증발시킨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민홍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행정 관리들에게 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책임이라는 걸 질 줄 몰라요. 그냥 지나가면 그만인 거죠. 국새단장과 같은 직책은 원래 검증 추진단 같은 곳에서 추천을 해줘요. 그런데 거꾸로 행정안전부에서 이미 다 검증해놓고 앉혀놓은 거예요. 그러면 검증 추진단에서 ‘처음부터 다시하자’고 문화재청이나 이런 곳에 공문 한 번만 보내봤으면 다 아는 거 아니에요? 자기들한테 안 물어봤다고 관심을 가지지 않은, 철저한 보신주의(保身主義)로 일관한 문화재청도 문제라고 봐요”

◈문화의 보고(寶庫) 4대강, 부실행정에 죽어가다

강은 인류문명의 중요 발상지 지역 중 하나다. 그만큼 중요한 문화재들이 잠들어 있는 무한의 보고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8년 미군병사 그렉보웬이 한탄강 주변에서 아슐리안 계열의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전곡리 선사유적지나, 1925년 홍수로 인해 한강변 모래언덕 지대가 심하게 파여 수많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면서 중요한 유적지임이 알려진 암사동 선사유적지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아슐리안 계열의 구석기 주먹도끼는 인도 동북부쪽이나 중국본토에서도 나오지 않은, 세계 고고학으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외에도 2005년 창녕 비봉리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의 배 유적은 일본 도토리현의 그것보다 더 빠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강의 중요성은 삼국시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그들에게 강은 생명줄이자 국운이 걸려있는 문제였다.

이러한 강을 개발한다는 정부는 그 시작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약 5.8km에 이르는 청계천 복원공사 당시만 해도 하천을 막고 물을 빼내 5~6개월 동안 문화재 지표조사가 이뤄졌다. 이에 비해 2,000km가 넘는 4대강의 경우엔 45일 만에 끝이 났다. 그것도 현지조사는 보름동안 이어졌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법을 보면 문화재 조사는 지표조사, 시범발굴(시굴조사), 전면조사로 나뉘는데, 지표조사는 육상과 수중으로 구분돼있어 강과 같은 경우엔 수중조사를 하도록 명시돼있다. 그런데 24여개 기관에서 45일 동안 육상조사만 해놓고 ‘더 이상의 문화재는 없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설득이다. 

“작년 6월에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었죠. 문화재 보호법에 분명히 수중조사가 명시돼 있는데도 안했으니 문화재 지표조사는 무허가고 엉터리라고 계속 따졌죠. 할 말이 없는지 그해 9월에 수중조사를 하긴 하더군요. 근데 다이버 몇몇이 나루터에서 허우적거리고 나오고서는 조사를 다했대요. 나루터가 엄밀히 따져서 땅이지 수중입니까?”

나루터와 포구는 엄연히 다르다. 나루터는 강을 건너가기 위한 하나의 소통이지만, 포구는 무역이 이뤄지는 곳이다. 돈이 쌓이고, 음주가무가 생기고, 그것이 몇 번 반복이 되다보면 하나의 문화가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이면 행정기관이 들어오고 하나의 도시가 된다.

“포구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선조들의 삶을 4대강 사업을 통해 싹 다 밀어버리겠다는 의미인거죠. 물론 일제시대 때 신작로 등을 뚫고 하면서 많이 파괴는 됐어요. 근데 다 없어진 게 아니거든요. 매몰된 거예요. 밑에 파보면 싹 다 나오는 건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싹 다 밀어버리겠다는 거죠”

그는 “현재 우리나라 나루터가 2,000군데가 넘는데 스물 몇 개 정도 조사해놓고 ‘문제가 없다’고 일관하는 것도 크나큰 오류”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현재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살펴보면 매장 문화재 고고학의 경우 전체 100을 기준으로 시범조사한 곳이 1~2퍼센트 정도 수준으로 나온다”며 “우리의 몸에 전반적으로 병이 있는데 한두 군데 진찰하고는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돌팔이 병원과 같은 작태를 저지르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지금 금강 정비 사업한다고 파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중인 공주ㆍ부여 유적지구 쪽에 문제되고 있죠? 세계 문화유산인 경기 여주 영녕릉 같은 경우는 물 차오르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래서 제가 유네스코에다가 세계문화유산 파괴되니까 실사단 나오라고 편지까지 썼어요. 현재 정부에서 막은 것 같은데 실사단 나올 때까지 계속 보낼 거예요”

◈댐 건설이 강을 살리는 길?

여기서 잠시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4대강 ‘보(洑)’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보는 원래 강가나 개울물에 1미터 정도 돌과 같은 것으로 막아 놓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만든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의 일부를 보면 낙동강의 함안보가 높이 13m로 나온다. 다른 것들도 10m, 11m, 12m 정도다.

▲지난 8월 초, 이포보에서 4대상 사업 반대를 외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격려하는 시민들의 응원에 응답하고 있는 모습

한국 대형 댐(dam) 학회에서는 ‘대형댐’에 대해 ‘높이 10~15m 사이의 댐으로서, 다음 사항 중 한 개 이상의 특징을 포함하는 것도 대형댐으로 분류된다 : 댐 길이 50m 이상, 저수용량 100만톤 이상, 설계홍수량 초당 2,000톤 이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세계 대형 댐 학회의 정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보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저수용량의 경우를 봐도 함안보가 1억 2,700만톤으로 대형댐 기준의 127배이며, 강정보의 경우엔 1억700만톤으로 107배나 된다. 이외에 수문당 방류능력, 길이 등을 종합해보면 모두 규모가 큰 댐인 셈이다.

“지류(支流)만 살리면 되는 일에 대형 댐을 세우는 것은 결국에는 운하예요 운하. 한반도 운하는 문화재 파괴된다고 난리쳐서 막았더니 4대강 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꿨죠. 이후에 (MB가) 문화재 위원들 자기 마음대로 뽑았어요. 그리고는 말 잘들을 말한 사람을 문화재 청장으로 임명했죠. 그 사람(이건무 청장)이 청동기 전문가에요. 처음에 자기 입으로 ‘강에는 무수한 유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니, 청장 되고나서 ‘강에 무슨 유적이 있냐’고 말을 바꾸잖아요. 이게 우리나라 전문가 학자들이에요”

황 소장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게 지금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사람을 예로 들어보죠. 혈관을 통해서 발생하는 병이 많다고 정맥하고 동맥하고 연결해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죽어버리죠? 예를 들어서 낙동강하고 한강을 연결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의 기본적인 물줄기 맥(脈)이 다른 두 강이 엉키는 순간 한반도는 죽는 거죠”

일각에선 홍수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을 공부하기 전에 환경학을 전공했던 황 소장은 “홍수라는 것은 인간이 오만하게 자연을 마구잡이로 사용했기 때문에 한 번씩 역류하는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계속 무리해서 일하면 몸살이 나죠? 그렇게 몸살이 나야지 오히려 면역이 생겨요. 홍수나 태풍이 오는 것도 하나의 순리예요. 억지로 막기보다 오는 대로 막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해요. 정부는 차라리 홍수 다발 지역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주던가 해야 하는 거죠”

그는 문득 10여 년 전 모 유명 일간지에서 실시했던 ‘샛강 살리기 운동’에 대해 언급했다.

“샛강을 살리면 우리나라 강 모두 다 살아나요. 모든 홍수의 원인이자 공장, 양돈장, 염색공장, 가정생활하수 등으로 인해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거기에 정화시설만 하면 되요. 대체 멀쩡한 강을 왜 파대는 지 이해가 안가요”

◈“MB는 개념이 없는 사람”

황평우 소장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하며 “MB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탄했다. 그리고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숭례문 방화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당시 해냈던 청계천 복원은 업적으로 추대되며 큰 인기를 얻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복원공사 도중 문화재들이 나올 때마다 ‘선공사 후보존’을 약속했지만 조선왕조 역사가 담겨있는 문화재들이 나무상자에 넣어진 채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버려지듯 보관됐다.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600년 전 바닥 석재들이 발굴돼서 중지하라고 주장했더니 MB가  ‘웬 돌덩어리 갖고 난리냐’고 큰소리치기도 했어요. 결국 그 좋은 유물들 다 썩어서 유실됐잖아요? 따지고 보면 숭례문도 마찬가지에요. ‘숭례문의 고목, 그 부재들이 탄 것은 폐목(廢木)이 탄 것과 같은데 그거 가지고 왜 저 난리를 치느냐’는 얘기랑 같은 거죠”

숭례문이 방화 사건이 일어난 당시 여러 언론매체들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고 밝혀 많은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다는 그는 숭례문의 어설픈 관리에 대해 이어갔다.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에서 열리는 수문장 교대식 때 심사위원으로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예산이 5배로 늘어나 있길래 확인했더니 숭례문 앞까지 다녀오도록 확장됐더라고요. 그때 제가 ‘숭례문을 개방하면서 안전예방대책은 세워놓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도대체 뭐가 돼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들어놓은 보험이 얼마짜리인줄 아세요? 고작 8,000만원입니다. 안전대책 하나 없이 자기 과시적 행사만을 생각한 것이 잘못이 아니고 뭘까요?”

황평우 소장 프로필

고려대학교 환경보건학과 /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 석사과정

2004~2005 문화관광부 고구려사왜곡 대책 TF 위원
2004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ICOM)’ 조직위원회 상임위원
2004~2005 국무조정실 문화재청 정책평가위원
2005~2007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문화재 제도 분과)
2006~2007 MBC 느낌표 ‘위대한 유산 74434’ 공동 진행
2007~2009.4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문화경관 분야)
2007~2008 문화재청 풍납토성보존 TF 위원
2008~2009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
2009.07~2010.06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분석지원위원 외 다수

現 (사)한국박물관협회 정책자문위원/한반도운하 백지화 국민행동 집행위원/국회 문화재 제도개혁 특위 위원/문화재청 시민정책자문위원/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