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문화지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종로 문화지대, 서쪽으로 간 까닭은...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9.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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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임대료 고달픈 유랑...서촌(西村)에 걸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에 따르면 세계문명은 서쪽으로 전진하며 발전해 왔다.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을 건너 지중해안 그리스 로마문명으로 나아갔으며, 영국의 도서문명을 거쳐 미국문명으로 나아왔다. 미국문명은 다시 태평양을 건너 서진하니 오늘날의 중국문명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문명 서천설(文明西遷設)'이다. 물론 이는 세계사의 흐름을 서구중심으로 파악한 것으로 이견의 여지가 충분한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문명이 이동하며 발전한 근저에는 강 건너 또는 바다 건너 신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작용했다고 한다. 나일강 가에서 문명을 일으킨 이집트 사람들은 강 너머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동경이 있었을 터이며, 지중해 바다에서 문명을 일으킨 그리스 로마인들은 바다 너머에 대한 호기심이 끝없이 작동했다. 1492년 대항해 끝에 미 대륙을 만난 콜럼부스의 항해 배경에도 황금(富)에 대한 갈구와 함께 신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있었다. 오늘날 우주로 향한 도전 역시 인간의 호기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호기심은 문명발전을 추동하며 문명의 확산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오늘날 서울문화의 핵심부인 '종로문화'(종로구 지역문화)의 흐름을 살펴보니 바로 이 세계문명 서천설이 오버랩된다는 사실이다. 처음 인사동일대에서 시작된 골동품과 미술관, 갤러리 문화는 서북쪽으로 이동해 창덕궁 앞 돈화문 거리와 북촌(가회 삼청 사간동)문화지대를 형성했다. 매 주말 수만명이 찾는다는 삼청동 거리와 가회동 한옥마을로 대표되는 북촌문화지대는 다시 청와대 옆 창성동과 통의동으로 서진, 이른바 서촌(西村) 시대를 여는 관문이 되고 있다.

때마침 서울시에서도 이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 인왕산 기슭 사직동 옥인동까지 이르는 서촌지대를 묶는 한옥보존과 문화거리 조성에 정성을 쏟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인왕산 수성동 계곡의 복원도 그 일환이다. 유의할 점은 종로지역 내의 이런 문화흐름 근저엔 세계문명을 서진하게 했던 '저 너머에 대한 호기심'보다 슬픈 이유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임대료 문제다. 종로지역 문화지대의 서진은 상승하는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쫒겨 이동하는 유목민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유목민들이 풀이 있는 초원을 찾아 이동하듯, 종로 서촌으로 몰린 문화사업가들은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다닌다는 것이다.

처음 인사동에 있던 이들은 인사동이 시끌벅적한 상업지구가 되며 임대료가 상승하자 북촌 사간동과 삼청동, 가회동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의 임대료가 다시 오르자 청와대 옆 창성동과 통의동을 선택해 서진해 온 것이다. 인사동의 대표화랑 중 하나였던 '아트 사이드'도 이런 식으로 통의동까지 와 자리 잡으려는 중이다.

물론 이들 문화 사업가들의 안목에 한옥과 맞닿은 고풍스런 서촌 이미지와 자연과 조화이룬 운치 등이 매리트로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임대료 상승이란 경제적 압박이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자는 전부터 하고 싶었던 한마디 말을 던지고 싶다. 만약 지금의 서촌에서 다시 임대료가 오르고, 시끌벅적한 상업바람이 분다면 그 다음은 어디냐 하는 것이다. 다음엔 어디로 찾아 갈 것인가 이 말이다. 한 사업가는 이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다음엔 지방으로 가야지요. 임대료가 싼 지방을 찾을 겁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서울의 고급문화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호기심'이 아닌 '임대료'문제로 그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문화의 확산이라기 보다 자본과 탐욕의 확산을 더 부추길 것이다. 결국 서울문화의 중심부인 종로지역 문화도 정체성 잃은 상업문화로 전락할 것이며, 서울문화의 황폐화와 함께 한국 문화사업의 죽음을 초래할 지도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당국자와 관련 지역주민(토지주 & 임대사업자)들의 발상전환을 촉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