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의 토론
해와 달의 토론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10.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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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역(통도사)’ 논쟁에 부쳐...

 

해와 달이 각각 세상에 대해 토론했다. 먼저 해가 바다는 파랗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달이 바다는 은빛이라고 우기며 사람들은 언제나 잠만 잔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해가 우겼다. 사람들은 매일 바쁘게 돌아다니며 한 숨도 자지 않는다. 달이 또 말했다. 사람들은 늘 잠만 자기 때문에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해가 반박했다. 사람들은 항상 일에 빠져 있어. 서로 만나고 떠들며 물건을 사고 파느라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어. 달이 해에게 물었다. 세상은 어두워서 사람들은 늘 등불을 켜고 있다. 등불을 본 적이 있느냐. 해가 대답했다. 내가 떠 있는 동안은 언제나 밝다. 나는 등불을 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둘의 논쟁은 끝이 없었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바람에게 판결을 부탁했다. 바람이 말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바다가 파란색이야. 그러다 밤이 되어 달이 뜨면 바다는 은빛이 돼. 낮에는 사람들이 일하느라 세상이 시끌벅적하지만 밤엔 쉬느라 조용하게 돼. 해가 밝은 낮에는 등불이 필요 없지만 밤엔 어두워서 등불을 켜야 돼. 너희는 둘 다 자기가 본 것만 진리라고 하는데 그건 틀렸어. 독단적인 어리석음일 뿐이야...

 최근 영남 지방에서 발생한 개신교와 불교 간의 분쟁을 보며 생각나는 이야기다. 특히 불교와 관련된 사업이나 일에 대해 종종 분쟁을 일으키는 개신교 행태에 어울리는 비유 같다. 개신교는 올 들어 영남에서 두 건의 종교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는 대구의 ‘불교 테마공원 백지화’이고, 다른 하나는 KTX 울산역에서 ‘통도사’를 빼기로 한 것이다. 둘 다 개신교의 강력한 요구에 대구시와 코레일이 밀리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대구시는 지난 7월 15일 김범일 시장이 대구 CBS와의 인터뷰에서 개신교의 ‘불교 테마공원’지원 반대에 대해 “종교문제와 팔공산 자연훼손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리 있다고 판단 한다”며 당초 대구시와 정부가 1천 200억 원을 지원하려던 팔공산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을 백지화 했다. 대구 기독교계와 한국 기독교 지도자협의회 등 개신교 단체들의 집요한 요구가 받아들여진 결과다. 이어 최근에는 11월 중 개통 예정인 KTX 울산역에서 ‘통도사’란 이름을 빼기로 한 것이 또 알려졌다. KTX 울산역 명칭에 ‘통도사’를 병기하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전자관보>공시가 뒤집어진 것이다. 코레일은 ‘통도사’ 명칭을 ‘울산역’ 글자 크기의 절반으로 표시하겠다는 절충안을 냈으나 울산지역 개신교계의 강력한 압력에 부딪혀 포기했다고 한다. 정부는 불교계 반발을 의식, 울산역 내부엔 통도사란 명칭을 병기할 것을 밝혔으나 이 역시 불교계의 수용불가 입장과 개신교의 1인 시위 반대에 부딪혔다는 소식이다. 개신교 측은 이외에 교과서에 불교보다 기독교 관련 내용이 적게 기술돼 있다며 교과서를 다시 쓰라는 요구도 하는 모양이다.
 
 개신교의 이 같은 행태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 전역 수 천 군데나 될 법한 불교 사찰관련 지명, 예컨대 서울의 인사동(仁寺洞) 같은 동네 명칭도 다 바꿔야 한다. 불광동(佛光洞)이란 지명도 쓰면 안 된다. 수없이 많은 미션계 학교들에서 실시한 종교 교육도 다 문제 삼아야 한다. 교과서에선 단군 이야기의 비중만큼 여호와 신의 섭리역사를 압축한 이스라엘 유대역사도 다루어져야 한다. 대구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이와 관련 “영남에서 벌어지는 종교 갈등은 해묵은 것이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개신교 측의 공세적 태도가 확산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감히 주장하건대, 21세기 대명천지에 가장 못 난 사람들이 종교와 사상과 이념의 굴레에 얽매여 싸우는 사람들이다. 다른 종교, 다른 사상, 다른 이념, 다른 문화와도 어울리며 화통해야 하는 것이 신세기 문명의 과제다. 한국 개신교는 좀 더 그릇이 큰 면모를 갖춰야 할 것이다. 본래 대도는 무문(大道無門)이라 하지 않았는가. 진실로 큰 진리는 사소한 일로 남과 다투지 않는 법이다. 다투지 않고도 이길 줄 알아야 사람들이 손가락 질 하지 않는다. 깊은 물 큰 물은 소리 없이 도도히 흐르지만, 얕은 물 좁은 물은 조그만 비에도 요란스럽다. 해와 달의 토론처럼 자기가 아는 것만이 진리라고 믿는 것은 독단과 편견의 어리석음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