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 그 멋스럽고도 잔인한 단어
情, 그 멋스럽고도 잔인한 단어
  • 정순인 수필가
  • 승인 2010.10.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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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인 에세이

 

 윗집에서 또 소란이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여자의 찢어지는 목소리와 남자의 고함으로 시작해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로 천장이 들썩한다. 벌써 한 달째다.
 발음이 불분명한 악다구니 속에 언뜻 들리는 말을 조합해 보면 둘 중 한 명에게 일어난 치정 문제다.
 며칠 전에는 요란하다가 갑자기 모든 소리가 뚝 끊겨서 살상이 일어났나 싶어, 신고해야 하나 어쩌나 해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 적도 있다. 

 

 경비에게 말을 해 봤지만 방법이 없단다. 여러 곳에서 항의가 들어 와 몇 번이나 문제의 집에 갔다 왔는데 소용이 없다 한다. 그렇다고 경찰을 불러도 해결이 보장되는 일이 아니라서 진퇴양난이란다. 하긴 경비 아저씨 처지에서는 곤란할 만하다. 그들도 입주민이니 심하게 대할 수는 없겠지 싶다.
 윗집 부부에게 사랑은 깨진 항아리이고 딴 곳으로 훨훨 날아간 나비다. 아니, 아마 그러리라. 
 북한에 있는 작가 홍석중은 소설《황진이》에 ‘순간이 만들어내는 꽃이요 세월이 무르익게 만드는 열매’가 정(情)이라고 멋스럽게 표현했다. 10쌍 중의 4쌍이 이혼한다는 이 시대에 부부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 든 그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끔찍한 싸움만 하는 건가. 

요즘 드라마는 불륜이 감초처럼 들어 있다.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근년 들어 빈번하다. 배우자 외에 또 다른 사랑을 갖는 것이 유행인가 할 정도다. 잘못된 일이라 해도 자주 접하면 판단기준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바람기 있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 없이 혼외정사에 빠지는 데 일조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나이 불문, 지위고하를 떠나 어디에서든 자석처럼 끌리는 게 남녀 사이 아니던가. 게다가 뭐든 자유를 부르짖는 사회라서 사랑이라는 고운 단어가 덧붙으면 불륜도 이해해야 할 일로 변하니, 결혼의 언약이 쉽게 깨지는 것일 게다.

혼인의 순결을 강조하고 지키려 하는 자가 마음의 상처를 더 입는 법이다. 윗집 부부는 어느 쪽이 날아간 나비이고 상처로 아픈 영혼일까? 남편 혹은 아내는 가정을 흔든 죄로 이미 가족의 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제는 한 발자국 나아가 지독한 소란으로 이웃을 괴롭히는 공공의 적으로 존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