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디자인의 마에스트로, 심재진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서울 디자인의 마에스트로, 심재진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10.2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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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한마당’으로 높아진 디자인 수준, ‘DDP’로 세계 최고 만든다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인터뷰를 위해 서울디자인재단이 자리한 건물로 이동할 때만 해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전문적인 지식과 카리스마로 무장한, 약간은 중후한 CEO와의 대담을 상상했다. 그러나 대표실로 들어선 순간, 디자이너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옷차림을 한 채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는 심재진 대표가 앉아있었다.
한 세대에 걸쳐 디자인의 전성기를 일궈내고, 또 다른 제2의 전성기를 준비 중인 그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우리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비전을 한 보따리 풀어내고 있었다.

◈외국서 인정하는 우리의 디자인 DNA

2010년 디자인 수도는 서울이다. 이는 각종 매체들의 홍보 덕에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걸까?’, ‘정치적인 로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디자인 수도라는 사실 자체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아직도 여럿 있다.

이에 심재진 대표는 ‘디자인 수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말을 꺼냈다.

“디자인 수도가 곧 넘버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50개국 140여개 디자인 단체가 가입한 국제민간기구 익시드(ICSID·International Council of Societies of Industrial Design, 국제디자인단체협의회)가 디자인 성과가 뛰어나거나 디자인을 통해서 발전을 이루려는 도시를 대상으로 국제경쟁을 거쳐 2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디자인 축제입니다. 전혀 정치와는 관련이 없죠”

2008년 이탈리아 토리노가 시범도시로 선정된 후,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엔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 핀란드 헬싱키 등과 경합을 벌인 끝에 대한민국 서울이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우리의 경우 ‘서울에 디자인박물관을 짓겠다’, ‘시민들의 디자인 축제를 만들어주겠다’, ‘완전히 일반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참여디자인공모전을 하겠다’ ‘디자인 자산전을 통해 어떻게 해서 우리 안에 디자인의 우수 유전인자가 있는지 보여주겠다’ 등의 8가지 프로젝트를 제출했고,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것이죠”

현재 2012년 디자인 수도로는 헬싱키가 선정됐고 베이징, 케이프타운, 싱가포르, 상파울루,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가 2014년 수도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서울이 첫 번째로 선정되고 나서 너무 열심히 하고, 또 전서계적으로 흥행이 잘되고 하니까 이어서 할 도시들이 지금 난리가 났죠(웃음). 헬싱키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역사가 있는 곳인데 한국에 시찰 와 보니까 대단하다고 극찬했어요.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이번 ‘2010 서울디자인한마당’에서 선보였던 ‘서울디자인자산전’을 보면서 깜짝 놀라했습니다.

특히, 신응수 대목장이 만든 숭례문 미니어처를 보고는 ‘어떻게 못 하나 없이 짜 맞추기만 해서 건물을 짓느냐’면서 한국에 와서 처음 알았다고 하더군요. 이밖에 도자기나 한글 등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이미 디자인의 DNA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인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디자인은 곧 우리 삶

심재진 대표이사는 ‘2010 서울디자인한마당’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갑자기 ‘자신은 길치’라고 답하며 2008년에 진행됐던 ‘2008 서울디자인올림픽’ 행사 장소에서 길을 읽고 헤맨 경험에 대해 말을 꺼냈다.

“제가 그 현장을 여섯 번 갈 때마다 길을 잃었어요. 근데 나중에 보니깐 저만 길을 헤맨 게 아니더군요(웃음). 그래서 지난 2009년에 제일 먼저 ‘서울디자인올림픽’ 업무를 맡고 해결하려고 노력한 게 ‘길을 잘 알게 해줘야 한다’는 거였죠. 뭐든 동선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올해 같은 경우는 내부에서 찾아들어가는 길을 6개(숨어있는 것 까지 8개)를 만들어서 바로 행사장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그리고 질러 갈 수 있게 해 동선거리를 짧게 만들었어요. 금년에는 제가 되려 손님들에게 길을 알려줬죠(웃음)”

동시에 지난 해 열렸던 ‘2009서울디자인올림픽’ 때 비해 예산을 삭감하면서 더 알차게 프로그램을 꾸미기 위해 노력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 욕심만 앞세워 프로그램을 만들기만 하는 것은 단순 보여주기일 뿐, 진정한 시민들을 위한 축제가 될 수 없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2008년과 2009년, 그리고 올해 행사를 치루면서 자연히 무엇이 더 필요한지 습득하게 됐다는 심 대표는 일각에서 말하는 “별 볼일 없는 전시회”라는 평에 대해 반박했다.

“‘서울디자인한마당’은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는 디자인 행사지, 디자인 전시회가 아닙니다. 축제의 의미를 갖고 있는 거죠. 그런데 소위 전문가라는 디자이너 분들의 70퍼센트 이상은 와보지도 않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시민들의 축제’라는 타이틀만 보고는 수준도 낮게 보더군요. 그런데 디자인을 할 때 싼 제품을 디자인 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원가나 재료도도 알아야하고 기타 모든 조건들을 알아야하니까요.

이에 반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누군가가 비싼 돈을 들여서 디자인을 했다, 이건 아주 쉬운 거죠. 조건들이 얼마나 편한데요. 그런데 개막식 한 번 와보곤 지레짐작으로 판단하죠. 저같은 경우 실제로 운영을 하면서 매일 가서 보면 또 새로운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보이는데 말이죠. 디자인이라는 것은 옆에서 설명해주면 또 다르게 보인다니까요?”

사람은 어떤 물건이든 ‘내 것’이 아니면 그저 스쳐 지나가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것’이 되는 순간부터는 관심을 갖고 집중하게 된다. 이처럼 무엇이든 체험을 통해 ‘내 것’이 될수록 계속 살펴보고 파헤치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이것이 디자인을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가고자 노력하는 ‘서울디자인한마당’의 주안점이다.

“일반 디자인 전시는 그냥 보는 거거든요. ‘앉지 마세요’, ‘만지지 마세요’, ‘사진찍지 마세요’ 라고 하면 디자인 이해 못합니다. 지금 ‘서울디자인한마당’은 디자인을 일반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죠. 이런식으로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면 디자인을 제공하는 사람들도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수준을 높여가야 되겠죠? 결국 질이 높아지거든요. 디자인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은 결국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죠. 이러한 연결고리를 물고 가는 것이 바로 ‘서울디자인한마당’입니다”

‘서울디자인한마당’은 궁극적으로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 이외에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지적재산권과 같은 세미나를 통해 미래 디자인 꿈나무들의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서울디자인한마당’에선 대학생들도 작품 전시를 많이 하죠.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오픈하면 그 다음에 출원하더라도 효과가 없어요. 남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디자인 출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출원을 하고 온 단체가 한 군데도 없어요, 특히 대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잘 못 받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특허청 사무원들 불러서 회의나 세미나 등을 통해 특허권, 디자인보호등록, 출원, 저작권 문제 등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조심해야하는 지를 일깨워줬죠”

심 대표는 벌써부터 바쁘다. 올해 이후부터 2년에 한 번 치러지게 될 ‘서울디자인한마당’의 질적 성장을 위해 ‘2010서울디자인한마당’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벌써부터 프로그램 구성 등과 같은 계획 자료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나라 디자인의 앞으로 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열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 디자인 발전에 초석이 되는 시민들의 눈높이를 높여주는 방법인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요”

◈역사문화공원 안에 디자인 센터가?

한 때 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복원 및 보존의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결국 서울시(시장 오세훈)가 동대문운동장 터 유적을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통해 보존하기는 것으로 결정 나게 된다. 그래서일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가 들어선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12년 완공 예정인 DDP 조감도

“이게 원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 파크(Dongdaemun Design Park & Plaza)’ 였어요. 근데 한창 유물이 발견됐을 때 10개월 정도 작업을 못하면서 공개가 늦어졌죠. 나중엔 역사문화공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됐죠. 하지만 쉽게 말해 역사문화공원 안에 디자인플라자가(디자인센터가)들어왔다 보시면 됩니다. 따지고 보면 ‘역사문화디자인공원’으로 해야 맞을 수도 있는데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디자인이란 말을 빼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거죠”

현재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2012년 7월경에 준공을 앞두고 있다. 준공하자마자 2개월 뒤에 올해 열렸던 ‘서울디자인한마당’의 바톤을 이어받아 ‘2012서울디자인한마당’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DDP인 만큼 심재진 대표가 꿈꾸는 비전은 분명하다.

“DDP를 통해 서울이 세계디자인의 중심이자 거점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고 봐요. 저희는 현재 ‘The First and Best’라는 모토를 가지고 계속해서 컨텐츠를 채워나가고 있죠. 즉, 다른 곳에 없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딴 데 가도 다 볼 수 있는 것을 보려고 누가 비싼 비행기타고 오고 그러겠습니까?”

흔히 ‘상설전시관’이라고 하면 어떤 이익단체와의 이해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말하는 ‘상설전시관’은 ‘상설박물관’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 디자인 박물관이 없어요. 예를 들어 일반 박물관에서는 물품을 연도별로 나눠서 전시하죠. 하지만 디자인 박물관은 재료나 그 모양 등 디자인을 가지고 풀어나갈 겁니다”

DDP 안에는 디자인 역사관(디자인 박물관), 디자인 일반 전시관, 디자인 미래관, 교육관, 도서관 등 11개의 기능이 집약되게 된다. 쉽게 말해 복합 디자인 박물관이자 복합 디자인 센터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심 대표는 이처럼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능이 깔려있는 DDP에 대해 잘못 이해를 한 지인에게 ‘24시간 동안 오픈하니 영화관 하나 만들라’는 말을 듣고는 따끔하게 충고한 일화를 얘기했다.

“제가 그랬죠. ‘찜질방도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고’. 이곳은 오락시설이 아닙니다. 하지만 디자인과 관련한 영상자료는 보도록 할 예정입니다”

◈“수집을 통한 창의교육이 취미”

심재진 대표는 산업디자인 분야의 1세대다. 우리나라가 패션 디자인의 걸음마를 겨우 시작할 무렵 산업디자인을 시작했고, 30년 가까이 LG전자에서 제품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의 손끝에서 수백 수천 종류의 가전제품들이 새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2007년 12월, 반평생을 같이 해 온 LG전자를 홀연히 떠나게 된다.

“너무 오래 있어서 나왔다고 할 수 있죠. 전자제품을 너무 오래하면 사람이 깡말라지더라고요. 사람이 날카로워지죠. 코에서 이상한 플라스틱 냄새도 느껴지고요. 그러곤 사무용 가구 전문 기업 코아스웰의 CDO(Chief Design Officer)로 잠깐 있었죠.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나와 2009년에 서울디자인재단에 둥지를 틀게 됐어요. 임기가 3년이라 오래는 못 있겠지만 많은 걸 구상하고 실천하려고 생각중입니다”

현재 심 대표의 사무실엔 TV를 비롯해 컴퓨터, 모니터 등 직접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들로 가득했다. 그가 처음으로 디자인 한 제품은 ‘RKD314’라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LG가 금성이었을 시절에 만들어서 14년 정도 롱런했던 제품이었죠. 처음엔 구로 공장에서 생산하다가 중국으로, 나중엔 필리핀까지 가서 생산했었어요. 싱가포르에선 장수(長壽) 상까지 받게 됐죠.”

“지금까지도 작동되는 제품을 3개나 가지고 있다”며 웃음 짓는 그의 취미는 수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모아놨다가 남들에게 주는 것이란다.

“수집인데 돈 되는 것들은 하나도 안하죠(웃음). 근데 이러면서 자꾸 훈련을 하는 거죠. 어떤 물건 안에 담긴 의미를 만들어내고 알아내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이자 창의교육이랄까요?”

이어 자신이 모아놓은 디자인 제품들을 보여주던 심 대표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병들을 꺼내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는 며칠 전에 받은 브라질 술입니다. 보시면 유리병 위에 대나무 같은 걸로 짜놨죠? 이걸 감히 버릴 수 있겠습니까?(웃음) 그리고 이건 일본 소주병입니다. 사탕수수 소주인데 한 10여 년 전만 해도 독하다고 안 먹은 것들을 위스키 수준으로 가격을 올렸어요. 게다가 이건 현재 우리나라 시중에서 팔리는 생수인데요. 병 보시면 얼음 같죠? 이러한 것들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죠. 그냥 갖고만 있어도 이야기 거리가 돼요”

그는 문득 우리의 디자인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췄다.

“우리도 요새 디자인을 조금 잘 하고 있긴 하지만 특징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선 지금 전통주나 술병 디자인을 하고 있나요? 계속 약병 같은데다가 소주를 마셔야하고 농약병 같은 거에 막걸리를 마셔야하나요? 우리도 하루 빨리 이런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재진 대표 프로필

1955년 경상남도 마산 출생

홍익대학교 공업디자인학 학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산업디자인학 석사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입사(1978)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상무
LG전자 유럽디자인센터 법인장
LG전자 디자인연구소(DDM) 소장

코아스웰 부사장(Chief Design Officer)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부회장

現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20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