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호 위원장님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김 동 호 위원장님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 최진용 의정부 예술의전당 사장
  • 승인 2010.10.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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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용의 문화읽기

영원한 영화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 위원장의 은퇴소식을 접하면서 이렇게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왠 일일까?

세찬 파도와 어둠을 이겨낸 1등 항해사 김동호위원장의 은퇴는 정말 아쉽지만 그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요즘은 웬만하면 신화라는 용어는 흔히 쓰지만 그는 살아있는 우리문화계의 신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10대 영화제로 이끌어 올린 우리 문화계의 소중한 어른이다. 김동호 위원장 같은 훌륭한 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복이요. 기쁨이다.

그는 워크홀릭이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고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늘 겸손하고 합리적이며 모든 일을 순리적으로 해결한다. 그는 분명 지장이지만 또 한 덕장에 더 가깝다. 그의 덕은 불도저 보다 더 힘이 세고 강력하다.

30여 년간의 문화공보부 재직,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예술의전당 사장시절의 업적은 논외를 하고라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키운 것만으로도 그는 정말 우리시대의 가장 빛나는, 가장 존경스러운 문화계의 사제와도 같은 분이다. 그는 15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대과없이 이끌어온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빛나는 삶이었다.

몇 년전 영화제가 막 끝난 시점에 부산에 볼 일이 있어 갔던 차에 자료도 구할 겸 집행위원회 사무국을 들렀다가 대학 교수로 있는 프로그래머 등 몇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필자는 그들에게 그간 부산국제영화제가 눈부시게 성장한 것을 치하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프래그래머들은 “아니예요. 우리가 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김동호위원장님이 사실 다 하신거예요”. 하면서 겸손하게 말 하는 것을 보고 사실 그것은 그들의 겸손 일수도 있지만 사실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때 Y사장, C사장 시절 예술의전당은 가장 극열한 노조활동으로 오랫동안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 후 김동호위원장이 사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얼마 안 돼 노조는 잠잠해지고 예술의 전당은 다시 제 위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뭘까? 그는 감언이설이나 일시적인 임기응변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요령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노조는 김동호사장의 능력과 진정성 훌륭함을 잘 알고 그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 평상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일에서 뿐만 아니라 상사가, 동료가, 부하가 늘 믿고 의지하고 함께 일하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의 몸에 밴 겸손과 남에 대한 배려, 그리고 공ㆍ사에 있어서 깨끗함이다. 깨끗함은 정말 어려운 것 중에 어려운 것이다. 총리, 장관 등의 국회청문회를 볼 때마다 필자는 김동호 위원장 같은 분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1년에 수십 차례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이나 한국대표로 초청받아 세계를 누빈다.장관급 예우를 받아도 충분하고 넘치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이코노믹클라스를 즐겨 타는 사람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부산국제영화제얘기를 좀 더 해보면 그의 면모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제영화제의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나 전문가들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공한 것이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처음 시작할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개최가 무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에 뛰어들 때 많은 사람들은 실패가 불을 보듯 뻔한데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 우려하거나 비웃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1994년 문화부가 서울국제영화제 개최를 발표하고 추진하려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 포기한 후 다시 서울시(당시 조순 시장, 이해찬 부시장 시절)에서 시장 지시로 의욕적으로 재시동을 추진했지만 이 역시 성공에 대한 자신이 없는데다가 전문가들의 반대, 정치권과의 묘한 갈등 등으로 접은 바 있었다.

그러면 왜 포기 했을까, 왜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더 많다고 판단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국제영화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동경국제영화제가 죽을 쑤고(?) 있는데 하물며 한국에서 국제영화제, 그것도 세계적 수준의 국제영화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베니스, 베를린, 칸, 모스크바 등 세계 4대 국제영화제마저 허리우드 파워에 밀려 고전을 겪고 있거나 국제영화제가 이제는 사양산업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계는 차라리 그 돈을 영화인 복지나 영화제작지원에 쓰는데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러면 경쟁영화제로 할 것이냐, 비경쟁 영화제로 할 것이냐, 비경쟁영화제로 하되 아시아 영화 부분 등 특정분야를 경쟁부분으로 하여 차별화 할 것이냐 등 고민이 많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추진하든 현실적으로는 성공이 어렵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동경 국제영화제의 재판이나 그 것 보다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절대 다수였다.

김동호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러한 예측은 맞았을 것이 분명하다.김동호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영화제 실패에 대한 예측은 맞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을,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국제영화제로 키운 것은 여러 사람의 숨은 노력과 공도 있었겠지만 정말 그 큰 몫은 김동호위원장일 것이다.

김동호위원장에게 경의와 찬사를 표현하고 싶다.

▲필자소개:전 국립극장장/전 서울시문예회관연합회 회장/여수엑스포문화분과위원장/본지(서울문화투데이) 논설위원/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경기도문예회관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