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사회
독서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사회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10.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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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과목 위주 공부 강제는 고통...책 읽을 여유 안 줘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서 새삼 들먹거리기가 민망할 정도다. 반딧불(개똥벌레)의 불빛과 달빛에 반사된 눈빛으로 공부를 하여 성공한다는 중국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명나라 때 출판된 소림(笑林)이란 책에 이 형설지공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두 선비 차윤(車胤)과 손강(孫康)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너무 가난해서 호롱불을 켤 기름 살 돈이 없었다. 낮에는 일을 해야 했고, 밤을 다투어 책을 읽는데, 호롱불이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이들이 생각해 낸 게 반딧불과 달빛, 그리고 달빛에 반사된 겨울철 눈이었다. 차윤은 반딧불을 잡아 주머니에 담아 걸고 그들이 내는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손강은 흰 눈에 반사된 달빛으로 책을 읽었다. 이렇게 악전고투한 결과 두 사람은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차윤은 이부상서가 되었고, 손강도 명성있는 학자로서 일생을 보냈다. 이들은 결국 형설지공이란 말이 나타내듯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꿋꿋함의 표상으로, 또는 독서를 논할 때 마다 그 고사가 인용되는 주인공들로 오늘날까지 이름을 전하고 있다.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도 있다. 장자(莊子) 천하편에서 장자의 친구 혜시(惠施)가 워낙 박학다식해 오거서(五車書)를 읽었기 때문이라는 데서 유래해 두보(杜甫)가 시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힌다'는 글씨를 남겼지만,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으려면 사람 일생 75세 기준으로 매일 책을 읽어 한 달 평균 8~11권을 읽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누가 이 정도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최근 서울시내 모 대학에서 강제 책 읽기를 못하겠다며, 학생회장이 단식을 한다는 소식은 옛 사람들이 행한 대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원론적 가르침과 책을 읽고 싶어도 맘껏 읽을 수 없는 현대인의 생활패턴 간의 충돌로 보인다.

에피스테메는 이 대학 정경대가 학생들의 인문학 소양을 기르기 위해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 학과별 필독서와 추천도서, 학생이 결정한 도서 등 12권을 읽고 독후감을 내게 한 프로그램이다. 또 이를 이수하지 못하면 장학금 신청이나 해외 연수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없는 제한 규정을 뒀다고 한다. 이에 학생들은 책을 읽기 싫다는 게 아니라 부담을 주면서까지 독서를 강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의 반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말하는 부담이란 여러 과목의 교과강의와 각 교과마다 쏟아지는 과제물(레포트 작성 등), 그리고 취직시험 준비 등일 것이다.  그렇다고 책읽기를 권유해 강제 규정까지 둔 학교 측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책 읽지 않기로 유명한 우리 국민성향에 경종을 울리는 측면에서도 독서열풍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이나 정책은 필요한 실정이다.

 문제는 어린 초교시절부터 건전한 책읽기 습관보다 영어나 수학 공부에 더 매달려 오직 남을 이기고 돈을 벌거나 출세 지향적 생활에 내몰려야 하는 우리 사회 패러다임이다. 교과정책만 해도 그렇다. 학창시절 그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입해 수학공부에 메달려 봤자, 막상 사회에 나오면 일반시민 생활에서 고차원의 수학은 별로 쓰이지 않는다.

차라리 수학 공부할 시간에 우리나라 역사공부나 한문공부를 했더라면 생활에 훨씬 보탬이 되고,  소양도 높아질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와 수학공부에 매달려 인문교양서적 접할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구조에서 대학생이 됐다고 하여 갑자기 책읽기를 강제하려니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공할 것도 아니며 분야도 아니며 적성도 아닌데, 획일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특정과목 공부를 강제하는 교육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이며, 오히려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와 권리,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