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들이 떠나간 자리
개똥벌레들이 떠나간 자리
  • 김우종 문학평론가
  • 승인 2010.11.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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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원이 부르는 <개똥벌레>에는 사회적 약자의 서글픔이 담겨져 있다.  개똥무덤이 자기 집이라면 전셋집 사글세집도 못된다.  똥구덩이가 자기 집이니  냄새가 고약해서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고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갔다는 노래다.
 가난하면 추위와 배고픔도 서럽지만  친구도 새들도 다 곁을 떠나버린 뒤의 외로움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대중가요 가사가 때로는 기성문단의  보통 시들보다 더 우리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때가 있다. 
 

언젠가 서정주와 박재삼 그리고 내가 박명성 시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박재삼이 대중가요 한 곡을 부르고 나더니 가사를 극찬하며 다른 시들은 “모두 저리가라”라고 했다. 무슨 노래였는지 잊었지만 이 말이 끝나자  서정주가 “내 시보다 좋은가”라고 묻자 박재삼은 한 손을 상다리 밑으로 깊숙이 뻗으며 “선생님 시는 저어 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서정주는 벌떡 일어나서 문을 차고 나가 버렸다.  . 
 

그 후 이와 비슷한 일이 또 KBS TV 대담 녹화 중에 나와의 사이에서 일어났다.
 “요즘 사람들은 정서가 메말라서 시를 읽지 않습니다”
 서정주가 이렇게 말하자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시만 안 읽습니다. 선생님의 시에는 우리들 모두의 아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게 고함을 지르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한 참 뒤에야 뒤따라간 PD의 사과를 받으며 되돌아 와 녹화가 다시 진행되었다. 이것은 서정주가 광주 학살 직후 전두환을 찬양하고 생일 축시를 써 보내던 8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서정주의 글재주를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교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기초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잘 써봤자  100점짜리 작문 점수다.
친일문제 따위는 아예 논외로 치더라도 개똥 무덤의 서글픈 약자를 생각하는 시와 이런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문학의 차이는 박재삼의 제스처대로 “책상다리 밑 저어쪽”과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개똥 벌레>가 무조건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개똥벌레는 청정지역의 곤충이니까 더러워 못 살겠다고 떠나버린 것은 그런 벌레들이 아니라 그 뒤에 남은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실수는 다음에 잘 쓰면 되지만  찬란한 금잔은 아무리 우리를 매혹시키더라도 그 속에 독이 담겨 있다면 사람을 죽인다. 
 오늘의 우리 예술문화도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한다.  모두들  재주도 많지만  소비적 놀이문화보다는 그것이 우리 가슴 속을 청정지역으로 바꾸고 떠나버린 개똥벌레들을 다시  불러 들이는 문화의 비중이 더 커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