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라나 고갱 (안녕하세요 고갱씨)
요라나 고갱 (안녕하세요 고갱씨)
  • 최진용/의정부예술의전당사장
  • 승인 2010.11.2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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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 약 일주일간 남태평양의 작은 섬 타이티 여행을 다녀왔다.
남태평양의 동남쪽에 위치한 타이티는 우리나라에서 10,000Km, 호주(시드니)에서 6,100Km, 하와이에서 남쪽으로 4,500Km, LA에서 6,400Km, 파나마에서 8,280Km, 칠레(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8,000Km 떨어진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거리를 얘기하는 것은 그만큼 대륙의 외떨어진 외로운 섬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항공 노선도 타이티-도쿄, 타이티-오클랜드(뉴질랜드)-시드니(오스트레일리아), 타이티-LA-파리 노선 등 3개뿐이다.
타이티의 수도는 파페에테는 인구 24만이며 타이티의 수도 일 뿐 아니라 남태평양의 소시에테제도, 마르키스 제도 등의 115개 섬의 중심도시로 서구 문명을 향한 교통로이자 문명의 창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 목적은 유네스코인 비영리 문화 기구의 하나인 CIOFF(국제민속예술축제조직위원회)의 제40차 총회가 이곳에서 열려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총회의 주요 안건은 2012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민속예술축제 ‘월드포클로리아다 안성’의 개최 일시 변경과 참가 유치, 신규 회원국가 가입문제, 2011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 회의, 2012년 제41차 브라질 세계총회 등이었다.

총회는 쟁점 사항이 없어 순조롭게 끝났고 총회를 마친 후에는 주최 측에서 타이티 본섬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무레아 등 인근 섬을 살펴 볼 수 있도록 관광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타이티는 열대의 낙원으로 가장 매력적인 남태평양의 환상의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섬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야만의 화가 폴 고갱 때문일 것이다. 그는 타이티에 살면서 타이티 사람의 삶을 그린 많은 작품을 남겼고 또한 이곳에 묻혔다. 그는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폭력적인 프랑스 식민 정부에 맞서 싸웠다. 고갱은 프랑스 폴리네시아 식민정부의 눈에 가시였고 말썽꾸러기로 그 역시 탄압을 받았다.
타이티의 수도 파페에테에서 동쪽으로 10여Km 해안 도로를 따라가면 도로에 면한 바닷가에 고갱 미술관이 있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단층 건물로 전시물 역시 고갱의 그림을 복제한 사진과 연대기를 적은 판넬 도판이 있는 그야말로 유화는 고사하고 스케치 한 점도 없는 미술관 아닌 미술관이다. 다만 타이티에서 작업했던 화구와 각종 조각도구 등 유품이 그나마 눈길을 끌고있다.

고갱의 대표적인 원화 한 점이라도 있었으면 이 미술관은 그것만으로도 빛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미술관을 떠났다.
그러나 나에게는 온 섬이 고갱의 영혼이 떠도는 듯 한 인상을 받았다. 더구나 서울을 떠나기 바로 전 날과 서울에서 타이티로 가는 20여 시간의 비행시간동안 고갱에 관한 2권의 책을 읽고 난 후여서 고갱의 절규, 고갱의 영혼은 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타이티는 꽃의 섬이다. 온통 섬이 꽃으로 피어났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손님들에게는 공항이나 호텔 등, 가는 곳 마다 꽃을 선물로 받는다. 또 커다란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타이티에 체류하는 동안 10여 차례나 커다란 꽃목걸이로 환대를 받았다.

타이티의 국화는 티아레타이티라는 하얀 꽃으로 타이티 어디에나 지천으로 피어있다. 티아레타이티는 “티아레의 한나절” 이라는 행사가 있을 정도로 국가적 상징물이며 일년내내 지속적으로 꽃이 핀다. 타이티를 찾는 모든 손님들에게 공항에서부터 이 꽃을 선물로 주며 모든 폴리네시아인들은 남녀구분 없이 귀에 꽂는 등 데코레이션으로 쓰인다.
타이티가 속한 소시에테 제도는 10여개 섬으로 구성 되어있고 그 중 6개 섬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소시에테 제도, 그리고 같은 폴리네시아 프랑스령인 마르키즈 제도는 고갱 뿐 아니라 많은 유명한 문인들을 매혹시켰다.

그 중 대표적인 작가로 ‘모빌딕(백경)’, ‘타이피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허먼 멜빌(1819-1891년), ‘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년), ‘바다의 이리’ ‘존 발리콘’ ‘조선사람 엿보기’ 등의 명저를 남긴 작가이자 종군기자인 잭 런던(1876-1916년), 뮤지컬 남태평양의 원작으로 알려진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 ‘아시아의 목소리’ 등을 쓴 플리처상 수상작가 제임스 미처너(1907-1997년)등이 있다.
미처너는 “보라보라섬을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섬이고 남태평양의 잊혀지지 않은 최고의 것”이라고 감탄하였으며 제임스 룩 선장이나 허만 멜빌 등도 이곳 섬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또 고갱과 타이티를 모델로 “달과 6펜스”를 쓴 서머싯 몸도 이곳을 찾은 대표적인 작가이다.
어떤 작가는 아름다움에 숨을 죽였고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꼈다고 할 만큼 이곳 섬들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 풍광만으로는 인간을 영원히 사로잡기에는 뭔가 2%가 부족하다. 이 결정적인 2%가 고갱이라는 위대한 야만인이자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화가인 것이다.
필자는 고갱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타이티의 비너스 포인트 비치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불리우는 무레아의 쿠크만에서도 고갱의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고갱을 찾아 타이티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다음 여행에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115개 섬 전체가 참여하는 대축제인 파페이테의 헤이바이 타이티 페스티벌에 맞추어 다시 찾고 싶다.
폴리네시아의 전통적인 엉덩이춤과 노래의 대제전이 펼쳐지는 뜨거운 열기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