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 수학에 올인하는 사회는 망한다
영어 ․ 수학에 올인하는 사회는 망한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11.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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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학생이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수능거부' 1인 시위를 했다는 소식이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러지던 18일 아침 고3 학생 고모양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혼자 피켓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이날 수능 언어영역 시험시간인 오전 8시 50분께 정부 중앙청사 정문에서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인생을 점수로 매기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12년의 성적 경쟁을 끝내며...'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고 한다.

 

간간히 눈물을 흘리며 1시간여 동안 시위를 벌인 후 9시 50분께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진 이 학생은 어떤 각오와 결심으로 이 같은 시위를 벌였을까. 아마도 수십만 또래 친구들이 하나같이 시험장으로 들어가던 시간 혼자 그 같은 행동을 한 그 학생의 심경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함과 외로움, 처절함 같은 것이었을 게다. 그렇다고 그 학생의 행동을 혼자 특이한 돌출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피켓 문구에서 보듯,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인생을 단 한 차례의 점수로 매겨 줄을 세우고, 신분을 가른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다. 어찌 그 학생만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어쩌면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또는 사회인들이 문제점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침묵하고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문제에 대해 순수한 젊음을 가진 한 학생이 어렵사리 결단을 내려 행동에 옮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이 사건을 보며 평소부터 생각했던 우리나라 교육과목 및 입시제도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즉 고교 과정까지의  교과 과목과 입시 과목에서 영어와 수학과목의 비중을 확 줄이고, 영어와 수학 교과 수준을 훨씬 평이하게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국어 국문과 국사 사회 윤리 한문 고전 등 인문학 수업의 비중을 훨씬 높이고 강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과정은 지나치게 영어 수학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입시과목 비중 역시 그렇다고 본다.

영어와  수학에 중심을 둔 이런 교과구조와 입시제도는 월 수 백 만 원 짜리 고액 과외를 발생시키는 주범이다. 높은 사교육비를 추동하는 결정적 요인이며, 사회 양극화와 신분 대물림을 심화 시키고, 급기야 아이 낳기를 꺼리는 저출산 사회로 이어졌다.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중심에 영어와 수학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에 국가발전을 위해 영어와 수학교육이 제일 중요하다 하더라도 온 국민이 다 영어와 수학을 잘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국가발전을 위해 영어와 수학, 과학 기술이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면 그런 인재들을 어릴 때부터 소질과 적성을 검사해 꿈나무로 선발, 별도의 프로그램에 편입 ․ 육성하면 될 것이다. 괜히 고교시절까지 획일적이며 일방적 수준의 영어와 수학을 모든 학생들에게 강요해 스트레스를 주며, 획일적 입시에서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그런 교과과정과 입시제도는 수많은 학생들을 창의적 사고와 인문학적 소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 따뜻한 사회로의 이행은 물론 오히려 더 많은 인재들을 키워 낼 기회를 없애버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수많은 학생들이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영어와 수학에 투입했지만 과연 그만큼 영어와 수학이 사회생활에서 쓰임새가 있으며, 효용을 발휘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만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며, 영어는 외국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생활에 쫒기고 있는 형편 아닌가. 이럴 바에야 생활영어와 생활수학 정도로 조정해 가르치고, 이를 입시에도 반영하는 것이 실용적이며 합리적일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국민이 영어와 수학을 더 잘하게 하는 방법이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일 것이다. 비유한다면 영어 수학 중심의 교과와 현재의 입시제도는 아름다운 숲과 시내, 바위들을 파괴하고, 콘크리트 시멘트 길과 아파트와 빌딩만 열나게 올린 현대도시 건설과 같다고 하겠다.

그래봤자 획일적 아파트와 빌딩과 창의성도 정냄이도 없는 회색도시만 만들어 놓고 뒤늦게 후회하며 복원한다고 돈들이지 않는가. 빌딩과 콘크리트길로 둘러싸인 도시복판에 인위적 공원과 조형물을 창의니 디자인이랍시고 설치해 봤자 자연의 숲과 시내와 바위에 견주겠는가.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숲과 시내와 바위와 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는 '친화적 인간'을 도태시키고, 조형물과 아파트와 빌딩과 콘크리트와 더 가까운 '파괴적 경쟁적 인공적 인간'을 상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 중심에 영어 ․ 수학 지상주의 교과과정과 입시제도가 있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는 진정한 선진사회,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창의적 이상은 사라지고, 오직 현실을 쫒아 무자비한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정글 같은 사회, 정냄이 뚝 떨어지는 획일적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수능 당일 아침 정부 중앙청사에서 한 고3 여학생이 벌인 수능거부 시위는 이런 점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사건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