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동호회를 찾아서-‘40년 역사’의 민학회(上)
문화예술동호회를 찾아서-‘40년 역사’의 민학회(上)
  • 최홍순 민학회장
  • 승인 2010.11.29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답사·축제·한옥 등 민족문화에 모태를 찾는 ‘보통(?)사람들’

알고 싶어도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선생이 없었다. 학교도 없었고, 역사책이나 미술책은 많아도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그것은 별 볼일 없이 다뤄졌다. 우리의 생활주변에 흔하게 널려있는 보잘 것 없는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 역사의 원동력인데, 소홀히 취급되고 있었다.
그것은 민(民)자 돌림으로 불리는 민음학·민미술·민속·민예·민화(民話) 등 기층문학을 다루는 민학(民學) 전반을 가리킨다. 그들은 함께 ‘무엇이 그것인가’를 알아내기로 했고, ‘얼마나 그런 것이 있는가’를 찾기로 했다.
한국의 기층문화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동호인들의 모임 민학회(民學會)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민학회 창립과정
민학회 창립 첫머리에는 조자용(趙子庸, 1926~2000)이 등장해야 한다.
1970년 여름, 국제 펜(PEN)클럽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주제는 ‘해학(諧謔)’이었다. 세계의 문필인들에게 한국의 ‘멋’과 ‘흥’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회장인 조선호텔은 철저하게 관리돼 회원 이외에는 외국대표와 접촉할 방법이 없었다.
용케 프랑스 대표 존 메이어(John Meyer)와 접선이 된다. 조자용은 그를 모시고 자신이 거처하는 화곡동 창고(현 에밀레박물관)로 향했다. 오이조각에 막걸리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까치호랑이’ 그림을 있는 데로 죄다 보여준다. 메이어는 그림을 보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한국인의 해학은 그 그림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다음날 미국 대표 보니 크라운(Bonnie Crown)여사가 자기발로 어제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녀는 ‘담배 피는 호랑이’ 책을 읽고는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던 차에 메이어의 얘길 듣고 공식행사 중에 살짝 빠져나왔던 것이다.
그 후 크라운 여사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굿판이나 민속놀이판을 부지런히 찾아다녔고, ‘아시아 학회지(Asiatic Society)’ 표지에 산신 탱화를 싣게 만든 이도 크라운 여사였다.
이처럼 조자용은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기층문화에 대한 소개를 6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해왔다. 다시 말해 ‘민학운동’은 60년대부터 활발하게 싹터왔던 것이다.
1971년 11월 25일 경남 진주에 있는 ‘서울집’이란 허름한 식당에서 몇 몇 뜻이 같은 사람들이 만났다. 박종환(당시 진주지역 고교 교장), 조자용이 주관한 모임이었다. 여기서 공동모임을 가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민학회(民學會)’는 탄생했으나 회칙이 없었다. 하지만 회칙이 없어도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졌다. 물론 회장도 임명하지 않았다. 참가한 사람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서 민학회를 지켜갔다.
1971년 12월 1일부터 ‘민학 제1집’의 편집위원(조자용, 이우형, 신영훈, 김병은, 고인숙, 칼 스트롬, 제니퍼 스트롬)들은 그 원칙에 따라 무보수로 매일같이 민학회 사무실로 출근했다. 당시 서울의 유일한 사설 민예관이던 에밀레미술관(현 에밀레박물관, 충북 보은 소재)이 민학회 창립 사무실이었다. 이 미술관의 주인이 조자용이다.
1972년 4월28일 마침내 ‘민학 제1집’이 출간됐다.

민학회가 해온 일
1973년 5월 31일에 ‘민학 제2집’이 예정대로 출간됐다. 당시로서는 호화판 미술도서로 인정받았고, 영문이 동시에 실린 학회지의 성격도 강하게 내포하고 있어 국내외의 시선을 모았다. 그 차례를 참고로 살펴본다. (사료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돼 목차를 넣어 줌)
 
<‘민학 제1집’ 목차>


-------------------------------------
떡쌀                       주동준(朱東焌)
壽匙(수시)                  홍석무(洪錫武)
표주박                      예용해(芮傭海)
香爐(향로)                   김경(金卿)
淳昌五色紙(순창오색지)       이종석(李宗碩)


---------------------------------------
木活字(목활자)               김상조(金相朝)
封印(봉인)                   임동빈(任東彬)
고비                         정정담(鄭正潭)
文房四友(문방사우)           이겸로(李謙魯)
벼루                         이해원(李海元)


----------------------------------------
알터                         이세준(李世埈)
알바위                       석태륜(石太輪)
알몸                         국유원(鞫裕元)
호랑바위                     김병은(金秉殷)


------------------------------------------
固城․統營 地圖(고성․통영지도)     신영훈(申榮勳)
龜船夢(구선몽)                   낭원식(浪元植)
龜船圖(구선도)                   조자용(趙子庸)

흥-------------------------------------------
십이지(十二支)탈춤               도로시 후로스트
무당성주기도도(祈禱圖)           최길성(崔吉城)
꼰                               강우방(姜友邦)
鷄龍九曲(계룡구곡)               김두식(金斗植)
가락지                           김술식(金述植)

바탕---------------------------------------------
삼베바탕                           김비함(金毘含)
반진문                               박종한(朴鐘漢)
色調(색조)와무늬                      최옥자(崔玉子)

<민학 제2집>

男根(남근)의 美術(미술)--------------------------------------------
토우(土偶)                         김위상(金渭祥)
新羅土偶(신라토우)                 김대벽(金大壁)
노르웨이                           암각 문수인
白瓷(백자)가이                     정기용(鄭基鎔)
木獅子鼓臺(목사자고대)             전영래(全榮來)
돌하르방                           진성기(秦聖麒)
祈子岩(기자암)                      편집위원
수탉(民畵,민화)                      강덕인(姜德仁)
梨大(이대)뒷산 선돌                 편집위원
阮堂(원당)의 ‘性(성)’ 字              편집위원
까치호랑이의 꼬리                   강덕인(姜德仁)
남근(男根의 意味)                    허만하(許萬夏)

잠-----------------------------------------
벼개의 哲學                      석태륜
벼갯모                            배선미(裵宣美)
두통벼개                            편집위원
墓誌(묘지)                          김상조
墓誌(묘지)                          박순호(朴巡浩)

바위文化-------------------------------------ㅡㅡㅡㅡㅡ
虎岩圖(호암도)                     정해석(정해석)
장수바위                           김병은
淳昌(순창)미륵바위                  김두식
살아있는 알터                       편집위원
年代가 확실한 알터                  편집위원
民族自我(민족자아)                   박종한

韓畵(한화)---------------------------------------------------
韓畵 金剛山圖                       조자용
金剛山圖(금강산도)                  김위상
海上郡仙圖(해상군선도)              주영하/최옥자
陽柳觀音(양유관음)                   김경
多鳥海 地圖(다조해 지도)              최낙선(崔落璇)

民藝(민예)----------------------------------------
크리스찬이티의 歸化(귀화)                      김정현(김정현)
절간의 再建                                    언더힐
한국의 符籍(부적)                              정도화(鄭道和)
장독굴을 찾아서                                편집위원
제주도 민속박물관                              편집위원
먹통                                           이세준
잠을쇠                                         김창문(金昌文)
菱花板(능화판)                                  이겸로

이렇게 2년 연속 ‘민학’지를 펴낸 것은 민학회의 최초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후 1976년 4월까지 민학회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당시 그 어떤 학회나 출판사에서도 기획해 내지 못한 우리의 기층문화 전반에 걸친 내용과 풍부한 사진자료로 구성된 ‘민학’지의 출간 중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출간비용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제3집 원고는 모아졌으나 실질적인 제작비가 없었으며, 무보수로 2년 내내 수고한 편집위원들의 현실문제도 컸다.
그러나 ‘민학’지의 발간이 한국 출판계에 던진 메시지는 컸다. 우리 문화의 다양한 소재들이 출판기획의 콘텐츠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줬기 때문이다.

 

▲1993년 속리산 에밀레박물관에서 벌어진 마을축제 때 도깨비로 분장한 조자용 선생

 

민학회의 성격
민학회 창립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격은 다양했다. 하나의 특정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관심분야도 달랐고, 민예자료 수집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주축이었고, 개인적으로 민예·민속 분야의 전시관을 가진 사람도 다수였다.
여기에 직업적인 학자나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일반인들까지 함께 했으니 학회라기보다는 동호인 모임으로 평범하게 출발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보자들의 모임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민학회의 회장이 누구냐에 따라 민학회의 대외활동은 그 성격을 크게 달리했다.

<민학회 역대 회장>
초대회장(1976~1988) 이겸로(통문관대표, 2006년 작고)
2대회장(1989~1990)  신영훈(고 건축가)
3대회장(1991~1992)  백승길(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획실장, 작고)
4대회장(1993~1994)  조자용(에밀레박물관 관장)
5대회장(1995~1996)  심우성(민속학자, 한국민속극연구소 소장)
6대회장(1997~1998)  김종규(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7대회장(1999~2000)  임영주(전 공예전시관 관장)
8대회장(2001~2004)  윤열수(가회박물관 관장)
9대회장(2005~2008)  최용우(궁중음식연구원 이사)
10대회장(2009~2009) 강예근(산부인과 전문의)
※현재는 출판기획자 겸 수필가인 최홍순이 그 자리를 맡고 있다.

민학회의 활동영역 확대
1976년 4월까지 ‘민학 제3집’을 자금이 없어 펴내지 못하고 있던 민학회원들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형태의 학회지를 펴내기로 결정한다. 아울러 회칙도 만들고 회장도 선출하고 회원수도 늘리자는 것이 그들의 합의점이었다.
1976년 6월 12일 경주지역 공동답사 때 1박하는 숙소에서 총회(40여 명 참석)를 열고 초대 회장으로 당시 서울 인사동에 자리 잡은 고서점계의 산 증인이던 이겸로 통문관 대표를 선출했다. 그리고 1년에 몇 차례씩이라도 현장을 찾는 답사도 시작했다. 또한 ‘민학강좌’라는 타이틀로 회원들 중 전문학자 중심으로 각 분야의 민예강좌도 시작했다.
1986년부터 민학답사는 1년에 9~10차례씩 진행해 2010년 11월 답사가 243차 정기답사였다. 민학강좌의 강사로 동원되던 회원들은 대학 강단으로, 관청의 수장으로, 또는 자신의 박물관으로 터를 잡으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다시 말해 민학회가 처음 시작한 공동답사는 현재 전국 각계각층에서 실시하고 있는 역사문화답사의 효시가 된 셈이며, 각종 문화단체나 대학에서 실시하는 역사문화강좌도 ‘민학강좌’가 그 효시였던 셈이다.
오늘의 인사동축제가 이때부터 출발했다. 경기도 김포 대명포구의 풍어제 재현도 민학회가 주관해 오늘날에는 ‘서해안풍어제’로 뿌리내린 것이다. 전북 부안의 ‘내요리 짐대할머니’ 축제, 보은의 ‘도깨비 축제’도 모두 민학회가 뿌린 씨앗의 열매다.

 

▲1993년 제1회 인사동 축제를 주관한 민학회.(왼쪽은 민속학자 심우성 오른쪽 송규태화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