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백지’ 열정 속 뜨거운 눈물로 겨레를 논하다
고은, ‘백지’ 열정 속 뜨거운 눈물로 겨레를 논하다
  • 이은영 편집국장/박기훈 기자
  • 승인 2010.11.2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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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큰사전’ 하나 만들어 놓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서울문화투데이=이은영 편집국장/박기훈 기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자 소설가인 고은(高銀, 77, 본명 고은태(高銀泰)) 선생에게 붙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초점은 온통 ‘노벨문학상’과 ‘만인보’에만 맞춰져 있다. 그래서 일까?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52년이라는 반세기가 넘는 집필을 해오며 산재된 그만의 진정한 철학들, 즉 고은이라는 사람 자체를 더 느껴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나 가득 담은 채, 고은 선생을 만나기 위해 상쾌한 관악산 내음이 코를 어루만지는 서울대학교로 향했다.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상상의 장 펼치고파

고은 선생은 가끔 매체 등을 통해 호메로스의 서사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내고자 ‘만인보’의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의 콤플렉스가 아닌, 오늘날 그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사실 아시아의 서사에 대한 행위는 고대에서부터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서는  너무 서정적인 세계로 변화하면서 서사적 요소가 결핍이 됐죠. 특히 근대에 와서 보면 우리나라에 서사시가 많지 않아요. 물론 몇 개의 서사시가 보이긴 하지만 기념할만한 업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역적인 것에 머무르는 수준이에요. 이럴 때는 호메로스에 대한 콤플렉스가 필요하죠”

선생은 ‘이백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도 얘기해나갔다.

“전 고대나 중세, 혹은 또 미래와 같은 것들을 어떤 시간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현재에서 나와 같이 관악산에 이백이 같이 살고 있다고 여기죠. 그런데 그 사람은 술에 많이 취하고도 좋은 시가 나오는데 전 술 취해서 나오는 시들을 나중에 보면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백 콤플렉스가 있다고 하긴 하는데 그래도 요샌 술 취해서도 잘 나오고 있어요(웃음). 즐거운 콤플렉스인 거죠”

그는 이어 “우리는 너무 부르주아 시대 이후의 소설 형식만 추구하고 있다”며 “서사와 서정이 서로 아우러지는 문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자신은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문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인간이 모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조상이 있고 자손이 분명이 있어야 할 존재인 한 서사는 영원히 인간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의 표현형식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서사 못 지 않는 서정에 대한 강한 애착과 함께 서정 못 지 않는 서사에 대한 지향도 우리는 끝없이 촉발시켜야겠다고 여깁니다. 그 두 가지를 하나의 큰 가마솥에다 집어넣어 끓여내고 싶은 거죠.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문학은 시다, 소설이다, 비평이다, 드라마다, 서정시다, 서사시다, 묘사다, 서술이다, 강한의식의 산물이기도하고 무의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등을 아우르는 문학을 하고 싶어요. 일종의 거대한 상상의 장을 만들어서 모든 장르와 형식들이 아우러지는, 자기를 포기하기도 하고 자기 일을 다른 것으로 전이시키기도 하는 그런 맘껏 노는 문학의 크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즘 생각하고 있어요”

◈시의 고향은 폐허요, 현주소는 미완의 역사현장

고은 선생의 주옥같은 시의 행방은 전쟁, 특히 6·25전쟁과 관련이 깊다. 다시 말해, 모든 운명의 기점이었다.

물론, 전쟁이 아니었다하더라도 그와 유사한 또 다른 것에서 시인이라는 하나의 천직을 가지고 글을 써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 혼이 담기기 시작한 기점이 이때부터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치하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그 날은 곧  ‘내 어머니로부터 익힌 언어’를 찾았다는 것이라 했다. 즉, ‘언어의 해방’ 이었다. 남몰래 혼자 읽었던 한글을 되찾으면서부터 그의 운명은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이 발발한다. 전선에서의 전투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처절한 갈등에 의한 많은 죽음을 경험하게 된 그는 ‘살아남고 나니 모든 것이 다 전쟁의 흔적이요, 폐허’라며 말을 이어갔다.

“고향을 비롯해 한반도 전역이 폭격당해 폐허상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3년 동안에 300~500여 만 명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비극이죠.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되니, 우리 인간 내면 자체도 폐허가 될 수밖에 없죠. 전통이라든가 과거의 가치는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의미한 게 돼버리죠. 사느냐 죽느냐, 살아남은 자도 밥 한 끼를 해결하느냐 혹은 구호물자를 얻어 누더기 옷이라도 챙겨 입을 수 있느냐 등의 아주 1차원적인 고민만 하게 되니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아무 쌓아놓은 거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 시입니다. 그렇기에 내 시의 고향은 폐허이고, 시의 현주소는 폐허의 기억을 가진 미완의 역사현장이라고 하는 거죠”

◈‘백지’의 미학

지난 18일은 우리나라 1년 중 가장 중대한 날이라고까지 표현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이중 언어영역 현대시 부문에 고은 선생의 ‘선제리 아낙네들’이 문제로 출제됐었다. 이 작품은 선생의 대표적 시집인 ‘만인보’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서 군산의 선제리 마을에 사는 가난한 아낙네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된 만큼 ‘선제리 아낙네들’이 갖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 질문을 하자 “모르겠다.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통 대부분의 시인들이 자신의 시들을 외우며 그 특징과 배경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전의 고대시를 비롯해 시인 자신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들을 천 여 편씩 외우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전 그런 것들을 부러워 한 적이 별로 없어요. 전 바보예요. 기억의 능력이 없어요. 제게 있어 가장 뜨거운 것은 아무것도 작성돼있지 않은 ‘백지’입니다. 거기에다 뭘 쓸지, 혹은 안 쓸지는 모르지만 현재로는 백지예요. 어제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 ‘당신이 쓴 시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좋은 시가 뭡니까’하고 물어보면 전 ‘오늘 막 쓴 시’라고 대답합니다”

이번에 선생의 시가 출제된 것을 기념해 대입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한 말씀 부탁드린다며 웃음 섞인 질문을 드리자, 그는 “아직 누구의 선배나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솔직한 답변을 줬다.

“전 그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할 따름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된다는 것이죠. 아직 살지 않는 삶에 대한 대답을 그들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심스럽기 때문이에요.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독특한 삶이 있는데 제가 감히 어떻게 결론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시인이라는 것은 그저 다른 이들과 가까스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이지 교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저 ‘수고 많았다’는 위로 한 마디 건네고 싶네요”
 
◈웃음에 가려진 울음의 철학

우리는 ‘웃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매체 어떤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춤추고 노래하고 깔깔거리고 웃을 뿐이다. 물론, 연속극처럼 아직도 눈물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인간의 침통한 그늘이나 우수(憂囚), 침묵 등은 보기가 어렵다.

 

 

이는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생활문화에도 대부분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정 가치에 대해 희화화는 소중한 것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제 대중들은 개그(Gag)로 삶을 다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울음이 끼어들 여지는 어디에도 없어졌다. 옛날에는 모든 것에 울음을 팔아먹었다면, 지금은 정반대로 웃음만 팔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고은 선생은 예전에 한 강연을 통해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울음이 속 깊게 들어 있어야 한다’며 울음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울음은 영혼의 정화능력이 있는데, 점점 이러한 것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돼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인류 전체가 앞으로 100년 정도 후에는 슬픔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까 이런 걱정까지 하죠. 고대 호메로스나 기타 다른 것들을 보면 커다란 문명의 진행을 통한 비극성, 또 이런 슬픔을 토대로 한 삶의 장엄함, 이런 것들이 있는데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는 쪽이죠”

보름달에서 쏟아지는 달빛 자체에 대한 황홀감만으로 하루 밤을 울어보기도 했다는 그는 울음을 통해 우리 인간이 정화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의 신체 안에는 피만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울음도 순환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자신 안에서 순환하며 쌓여있던 울음이 폭포나 홍수가 돼서 밖으로 나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고 생각합니다”

◈‘겨레말큰사전’은 운명이자 숙원

우리 ‘겨레말’이라 하면 단순히 우리나라 안에서 사용되는 국어로만 한정지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100여 년 동안 우리 언어는 그 사용자에 의해 많이 흩어져왔다. 조선 말기부터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 국경 밖 북쪽의 중국이나 러시아를 비롯해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분포돼 갔다.

 

 

그렇게 그들은 기억 속에 숨 쉬는 우리 국어를 가져간 것이다.

“이주자들끼리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면서 새로운 말도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걸 한번 모아보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즉, 우리의 근대사를 전부 한 번 모은다는 차원에서 언어를 결집 시켜보자는 것이죠. ‘겨레말큰사전’은 하루 빨리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외국에 가 있는 동포들은 1세대에서 2세대를 거쳐 3세대에 이르러서는 우리 국어를 잊어버리기 때문이죠”

이와 함께 현재 우리말에서 가장 심각한 부분은 분단에 의해 한반도가 두 개로 갈라졌다는 점이다. 자연환경에 의해 분리된 지역에서도 언어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체제에 의해 갈려지다 보니 오죽하겠는가. 자신이 속한 체제에 의해 언어는 지금도 많이 변질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지역이나 오지의 언어를 배제하고 평양 중심의 표준어만 쓰는 게 지금 북한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서울 중산층의 언어라고 해서 쓰는 게 표준어죠. 표준어라는 것이 강점도 있지만 다른 모든 지역어 및 방언을 배제하고 약화시킵니다. 여기에다 양 체제에 따른 강제 체제어도 많이 생겼어요. 이렇게 되면 우린 또 하나의 외국어를 가진, 두 개의 언어를 지닌 민족이 되는 것이죠.
이게 지금은 몰라도 몇 십 년 후에는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될지도 모르는 일이예요. 하지만 언어의 원전인 ‘겨레말큰사전’이 편찬되면 편하게 통일 사회를 만들어 가지 않겠어요?”

선생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마지막 이유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강력한 언어 문명에 의해서 왜소화 돼가고 있는 우리 언어의 현주소를 꼽았다.

“앞으로는 심하게 얘기하면 국어 시간보다 영어시간이 더 많아질 겁니다. ‘한국에선 다른 종교는 없다. 영어가 종교다’라는 말들을 들을 때면 우리가 참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자괴감, 자책감이 들죠. 또한 앞으로 백년 안에 지구상에 남아있는 언어들 중 절반 이상은 없어져 버리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커다란 흐름만 남아있는 채 순식간에 멸종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 겨레말이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혼의 보고로 자리매김하게 될 ‘겨레말큰사전’은 그가 국회에 제안했을 때 여야 할 것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러나 통일부가 2005년부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에 매년 30억원 안팎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해오다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올해 들어 사업이 지연됐고, 지원금도 13억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에 고은 선생은 지난 10월 4일 “남은 생애를 걸고 추진해온 남북통합 국어사전 사업이 작년 국회 의결을 거쳐  배정된 기금 중 편찬사업비가 지원되지 않아 큰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일부가 지난 25일 추가로 2억 9천만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일각에선 2013년 발간 예정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었다.

“모국어로 시 쓰는 사람으로서 이거(‘겨레말큰사전’) 하나 만들어놓는 것은 참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하나 만들어 놓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제 마지막 숙원입니다”

◈책은 음식이요, 태평양이다

고은 선생은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분야에도 관련이 깊다. 지난 2008년 9월 4일엔 시인 등단 50주년을 기념한 그림전 <동사를 그리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중앙일보 측에서 ‘등단 50주년 전시회를 해보자’고 해서 단순히 한 것일 뿐, 어떤 특별한 의미나 그런 건 없었다. 잠깐 외도한 셈”이라고 하지만, 당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지난 20일엔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사)전북오페라단에 의해 공연된 ‘만인보’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집필 작업 등으로 바빠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얼마 없다지만, 가까운 지인들이 초청하는 몇몇 공연 정도는 챙겨본다고 하니, 결국 문화 다방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은 선생이 주로 읽는 책은 무엇일까 사뭇 궁금해져 물으니, 세계적인 문학가라는 명성에 걸맞는 현답(賢答)을 기자의 가슴에 새겨준다.

“어제는 몇 천 년 전의 것을 읽고, 오늘은 아주 최신 책을 읽습니다. 오늘 아시아 지역에서 나온 책을 읽었다면, 내일은 다른 지역에서 나온 책을 읽습니다. 오고 가는 것이죠. 어느 한 군데만 뿌리내리는 나무가 아니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새처럼 문화를 읽습니다.
책이라는 것은 음식과 같아서 맛있어야 합니다. 거의 여러 분야에 있는 책을 다 읽죠. 다만 화학책이라든지 그런 아주 저 깊숙이 가 있는 전공서적은 접촉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책은 태평양입니다. 별의별 고기가 다 있죠. 오늘도 전 이 고기도 만나고 저 고기도 만나며 살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 최근 주요 프로필

1933년 8월 1일 전북 군산 출생

2000년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고문
2001년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장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2007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2008년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2008년 스페인 말라가시에 시비 제막
2008년 이탈리아 포르미아시 명예시민증 수여
2010년 4월9일 '만인보' 30권  완간

2002년 은관문화훈장
2004년 단재상
2005년 통일상
2005년 본슨 문학훈장(노르웨이)
2006년 시카다 문학상/스웨덴 문학상
2007년 영랑문학상
2008년 유심상/특별상
2008년 그리핀 트러스트 문학상, 평생공로상(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