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켓 잡지 발행인과 함께 모호한 현대미술 잡기
파켓 잡지 발행인과 함께 모호한 현대미술 잡기
  • 이은진 기자
  • 승인 2010.12.20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미술의 기폭제가 될,‘World stars in contemporary art’展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진 기자] ‘동시대의, 현대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예술, contemporary art는 뭘 의미하는 걸까? 컨템퍼러리 아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까지 현시점의 예술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마디로 현대미술이라고 불리지만, 그 개념은 모호하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예술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그 실체에 회의를 갖기 쉽다.

▲‘World stars in contemporary art’展 입구

그런 현 시대의 미술을 지난 25년간 지켜온 사람이 있다. 바로 잡지<Parkett>을 발행한 ‘디터 폰 그라펜리드(Dieter von Graffenried)’이다. 파켓은 1984년에 창간되어 동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대 미술 작가들과 함께 잡지 편집에서 작품제작까지 공동 작업을 하는 독특한 프로세스를 고수한다.

이로써 탄생한 수많은 세계 최고의 작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앤디 워홀, 루이즈 부르주아부터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게오르그 바젤리츠, 신디 셔먼, 로버트 로젠버그, 댄 그레이엄, 길버트와 조지, 토마스 슈트루드…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작가들의 역사가 파켓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파켓의 현 역사, 디터 폰 그라펜리드의 ‘현대 미술의 작은 도서관’이 전시된 예술의 전당에서,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 덮인 눈길을 걸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으로 향했다. 2010년을 보내는 게 아쉽기라도 한 걸까, 예술의 전당을 대표하는 큰 건물 외벽에는 굵직굵직한 전시를 자랑하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이를 뒤로 하고 들어간 간담회 장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언론 관계자들과 가운데에 외국인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기자 간담회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디터 폰 그라펜리드(Dieter von raffenried)’ 

“…이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다양성과 작품, 아이디어입니다. 작가와 협업을 통해서 이를 보여줌으로 3~4개 작가의 텍스트도 함께 싣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나게 해 주지요. 처음엔 뉴욕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매년 8~9개 하는 프로젝트들이 더해져서 현재 200개 프로젝트가 만들어 졌어요. 로마에서 시작해서 최근에는 일본까지 진행돼 왔어요.”

그는 파켓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해 주고, 현재 아시아 투어를 하게 된 경위까지 들려줬다. 끊어질 줄 모르는 긴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 열심인 통역과 함께 기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놓칠 세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잘 알려진 작가로 앤디워홀의 사진이 전시돼 있는데, 사람의 뼈로 돼 있는 사진들은 앤디워홀이 죽기 바로 직전에 받았어요. 그는 죽기 직전에 말했어요. ‘인생은 둥그런 원과 같아서 계속 돌아가고 작품을 통해서 인생도 돌아간다.’고 말이죠.”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장의 문구, '컨템퍼러리 아트는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

둥그런 원처럼 돌아가는 인생이라. 소비되는 작품을 지향하는 앤디워홀도 불교의 ‘윤회사상’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의 작품 <파켓을 위한 사진>이 ‘우리의 삶이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돌아가며 거듭한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하게 4장이 반복되는 X 레이에 남겨진 해골 뼈들. 이것은 일렬로 선 해골 뼈의 운명이 누구나에게 반복된다는 섬뜩함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운명, 그리고 돌아가는 인생.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억겁의 세월이 걸린다는 삶의 법칙을, 앤디워홀은 죽기 전에 한 마디 말과 함께 파켓에 기증한 작품으로 남겨 놓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디터 폰 그라펜리드(Dieter von Graffenried)’는 말을 이어갔다.

“이번 쇼에서는 도록이 정말 중요해요. 465작 중에서 풀 컬러로 된 200명의 작가와 작품이 들어있습니다. 이 많은 수가 들어간 첫 번째 도록이라 생각하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예술의 전당에 감사하고, 한국의 관객들이 쇼를 즐기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시장에 놓여진 파켓 잡지들

간단한 파켓 전시에 대한 소개를 마치자, 박수소리와 함께 그는 더 질문할 사항에 대해 물어보았다.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의 이력을 볼 때 외국에서 시작해 이제 아시아 투어를 막 시작한 때였다. 아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하자, 그는 '한국미술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다'며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하며 말을 비켜 나갔다.

사람들에게 컨템퍼러리 아트를 열심히 이해시키려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현대미술을 조금 더 정립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아직까지 근대 이전의 예술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에선 특히나 더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술하면 특정 작가, 특정 작품이라는 고정화 된 대상이 미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컨템퍼러리로 정의되는 현대미술은 일상 소비생활에서의 이미지 등이 미술의 대상이다. 누구나 이미지 속에서 살고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술전체가 확 바뀌어가는 시대적 흐름, 이걸 찾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유명 미술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거기서 이미지를 창출하고 시행해야 해요. 이걸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지칭했을 때,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이런 미술의 흐름이 실현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겁니다.”라는 전시 기획을 총괄한 채홍기 큐레이터의 친절한 설명이 전시 관람을 부추겼다.

질의 시간이 끝나고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업실에서>, <놀이터에서>, <야외에서>, <옷장에서>, <도시에서> 등 소 주제별로 연결되는 방들이 감각적인 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척 클로즈, <자화상>, 2000, 다게레오타입 사진을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크레인 뮤제오 종이

입구를 들어가자, 포토리얼리즘의 창시자 척 클로즈의 <자화상>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채홍기 큐레이터는 핵심적인 작품들을 몇몇 개 골라서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내 나쁜 귀>는 사람들에게 실물 크기의 청동 귀를 보게 해줬다.

▲크리스찬 마클레이, <내 나쁜귀>, 2004, 실물크기청동주조

의아하면서도 또 이해되는 바로 이런 게 현대미술의 실체인 것이다. 그 외에도 햇사과 같은 새파란 사과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카타리나 프릿슈의 <사과>. 그 옆에 거대한 노란 풍선은 제프쿤스의 <부풀어 오른 풍선 꽃>이다. 옷장에서와 도시에서의 방을 지나 마지막 방에는 파켓의 역사가 기록된 공간이었다.

   
▲카타리나 프릿슈, <사과>, 2010, 레진 캐스트/손으로마무리

파켓 잡지가 1권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실물이 놓여 있었다. 파켓 잡지는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였지만, 알찬 겉표지에서부터 파켓의 역사가 녹아 있는 듯 보였다. 보는 내내 큐레이터는 ‘흐름을 느끼세요.’를 간간히 외쳤다. 잡혀지지 않는 실체, 그 자체를 인정한다면 더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것이다. 허기진 배를 쥐고 식당으로 내려가며 현대미술이란 그 연기 같은 것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