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세력에 잘 보이려다 함정에 빠진 정부
보수 세력에 잘 보이려다 함정에 빠진 정부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12.30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반도 평화위한 ‘지혜로운 전환’을 촉구함

 

한 스승을 섬기는 두 제자가 있었다. 두 제자는 서로 경쟁심이 생겨 매일같이 스승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스승의 밥상을 서로 들고 가려 밀고 당기다 밥상을 엎기도 하고, 스승의 나들이옷을 서로 챙기려다 찢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낮잠을 자며 두 제자에게 다리를 하나씩 주무르라 했다.

처음에 두 제자는 자신이 맡은 다리를 정성껏 주물렀다. 그러다가 점점 경쟁심이 심해지며 적대감이 생겼다. 결국 이성을 잃은 한 제자가 다른 제자가 주무르던 스승의 다리를 몽둥이로 내리치고 말았다. 이에 다른 제자도 스승의 다른 한 쪽 다리를 목침으로 쳐서 부러뜨리고 말았다.

지나친 경쟁심이 화를 불러 옴을 말해주는 예화다. 가끔은 상대방 입장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가르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촉즉발 충돌위기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보며 답답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 4선언을 채택, 서해 5도 NLL지역에서의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를 합의할 때만 해도 명실공히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시대가 도래할 것을 기대했다. 군사적 완충지대가 없던 서해 5도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는 장치로서의 특별지대 설정은 당시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였다. 북측 또한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남측의 구상을 수용했었다. 인천~해주간 직항로 활성화, 남북어민 공동어로 수역 설치,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이 내용에 포함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곧이어 남한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보수층의 지지가 필요했던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 노무현 정부가 이어왔던 햇볕정책 자체를 부정했다. 보수 세력에 있어 햇볕정책은 단순한 '퍼주기'였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와 줄 뿐이라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서해지역 평화 특별지대 추진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만약 현 정부가 보다 유연한 자세로 전임정부의 대북정책을 부분이라도 계승해 운영했더라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등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권의 대북정책은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비핵 개방 3000'이란 구호아래 진행된 대북압박 강공정책은 오히려 북한의 개방보다 상호적대감만 키워왔다.

특히 11. 23 연평도 포격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초기에 내렸다는 "확전되지 않게 만전을 기하라"라고 했다는 지침과 관련한 우리사회의 논란은 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스스로를 함정에 빠트린 게 아닌가라는 느낌마저 준다. 북한이 공격했든, 남한에서 빌미를 줬든 급작스런 군사충돌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전면전 상황이 아닌 한,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해야 할 최우선적 조치는 당연히 '확전방지'여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초보고를 받고 그 같은 지침을 내렸다면,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나라를 보전해야 할 지도자로서 너무나 당연하며 적절한 조치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걸 놓고 대통령이 유약하다느니, 더 강한 대응을 지시해야 했다느니 나무라는가 하면 심지어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보수논객까지 있었다. 이에 청와대는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몇 배의 막대한 대응"이란 말이 와전됐다고  해명하는 등등은 오히려 현 정부가 스스로 키운 보수 세력에 의해 대통령이 압박을 당한 형국이었다. 마치 동네 골목길에서 형들이 철없는 아이에게 전의를 부추겨 싸움을 붙이는 꼴...

12월 20일 실시된 우리 군의 연평도 포사격 훈련을 둘러싼 긴장과 불안은 심각한 국면이다. 북측은 연일 2차 ․ 3차 타격을 공언하며 협박하고, 남한 정부와 군은 전투기 폭격을 동원한 강력 응징을 외치고 있다. 훈련을 하자니 한판 붙어야 할 것 같고, 취소하자니 북측 협박에 굴복하는 것 같은 모양새...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한 운신 폭을 좁게 하는 이 땅 보수 세력의 압박이며, 함정이다. 이런 식이라면 이 정부는 계속해서 북한을 압박하며 강공으로 나가는 것 외엔 길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정부 내내 국민은 북한의 공격 위협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는가?

중요한 건 대다수 민심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전쟁 전야 같은 긴장을 벗어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래야 경제도 살 것이며, 이 대통령이 말했던 '이념 대결보다 실용의 정치'가 구현될 것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게 대통령과 정부의 책무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잘못된 대북정책으로 인한 국가 위란사태를 막는 '지혜로운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거기에 북한을 변화시킬 정치역량이 있으며, 나라를 구하는 길도 있음을 성찰하길 바란다.

보수 세력에 잘 보이려다 온 겨레와 나라의 두 다리 ․  목숨까지 분지르는 사태가 없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2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현 정권의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