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
아메리칸 뷰티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1.01.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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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샘 멘더스 감독,미국

‘아메리칸 뷰티’가 평단의 화려한 찬사를 등에 업고 2000년,2월 우리나라에 개봉 되었을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콩가루 집안 같은 영화인가 하고 말이다.

IMF를 겪고 있었고 미국과의 문화, 정서적 차이가 존재하던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미국의 중산층 가정들의 해체 이야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미국이 이뤄놓은 사회적 부는 가족들간의 유대감과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 자유를 존중하는 이상적인 결합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즐겨보는 우리들은 ‘아메리칸 뷰티’가 너무 가족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10여년만에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더 빠르고 다양한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고 일부 사회학자들은 일부 일처제의 가혹함을 문제삼고 있기까지 하다(평균 수명의 증가와 관련). ‘사랑과 전쟁’같은 TV 드라마는 부부와 그 가족 구성원들의 문제들을 다양하고 생생하게 공개적으로 짚어보고 이혼을 하느냐,참고 사느냐의 투표까지 하는 사회적 합의마저 도출해냈다.

‘아메리칸 뷰티’는 제인과 친구 안젤라, 제인의 부모, 옆집 게이 부부, 전직 해군대령 출신이며 권위적인 아버지이지만 평생 성정체성에 시달리는 이사 온 가족 구성원들이 어떤 식으로 해체되는지, 그들이 겪는 심리적 아노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되돌아 보는 이야기였다.

사실 필자도 개봉 당시 이 영화가 갖는 메시지와 구성의 탁월함에 감탄했을뿐 내용적으로는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오히려 10년의 세월이 지난후 ,제인과 같은 나이의 자녀들을 키웠고 주인공 레스터 버넴의 나이를 지나다보니 너무나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This is my life .. 총을 맞고 죽어가며 털어놓는 버넴의 가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지금 40대 중반의 남자들이 고백하고 싶은 혼잣말이다.

착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그냥 너무나 평범한 버넴(케빈 스페이스)은 직장에서 해고 위기에 몰리자 직장 상사의 약점을 빌미삼아 엄청난 퇴직금을 뜯어낸다. 어린시절 가난을 경험한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은 부동산 중개인으로 자신의 성공을 꿈꾼다. 돈이 인생의 목적으로 여기며 한때는 사랑했겠지만 현재는 남편을 무기력한 남자로만 봐주고 외동딸에게마저 정을 주지 않는 바람난 캐롤린의 모습은 타락한 여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여자가 보면 측은하고 이해되는 면이 많다. 사람들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만 요구하지 그들이 어떤 욕구 불만을 갖고 사는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를 넘보는 아버지가 증오스러운 제인과 친구 안젤라의 심리적 묘사도 미국 청소년들의 처지와 외로움을 잘 말해주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 영화에 엄청난 공감을 얻었다. 그 이후 미국인들은 가족의 위기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놓으며 그것에 대한 해법과 소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뷰티'에는 몇가지 뜻이 있다. '가장 고급스런 장미의 이름',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 미인', 그리고 '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그것이며, 이것은 영화에 모두 표현되어 있다. 미국 사회 내에서 팽배해 있는 물질에 대한 숭배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추구, 오늘날 중산층 가정이 얼마나 속물화 되어가는가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래서 2000년 아카데미는 ‘아메리칸 뷰티’에게 작품상,남우주연상,감독상,각본,촬영상을 주었다. 감독 샘 멘더스는 신인 데뷔작으로 감독상의 영예를 누렸고 거장으로 발돋음을 한 셈이다. 최근엔 부인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이었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아메리칸 뷰티’보다 질이 약간 떨어진다.

왜냐하면 결국 가족간의 문제는 사회공동체간 최소 단위로서 가족이 존재하며 그들속의 인간관계도 사회가 변할수록 다양한 프리즘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너무 문제만 들추다보면 식상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단위로 보존 유지되어야 할 제도일뿐 그 모습이 정형화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