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함께 춤을 추는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신창호
관객과 함께 춤을 추는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신창호
  • 최재영 인턴기자
  • 승인 2011.01.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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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난해한 공연보다 관객에게 다가가는 무용 만들어야…"

[서울문화투데이= 최재영 인턴기자] 현대 무용에는 국가가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한 번 날아오른 새는 다시 그 둥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시아는 물론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안무가와 무용가를 배출하고 있는 지금, 세계를 향해 힘찬 도약을 준비하는 젊은 예술가가 있다. 새해를 맞은 1월 어느 춥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예술혼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가득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 LDP 무용단 신창호 대표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 상을 수상했다. 소감이 어떤가?

솔직히 말해 아직도 얼떨떨하다. 수상하게 될 거라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고 지금도 과연 내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함께 수상하신 신금호 성악가나 박애리 명창 같은 분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대가라고 할 만한 분들이다. 내가 그 분들과 함께 상을 받았다는 게 사실 조금 겸연쩍다. 무엇보다 이번 상은 작품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기록들에 주신 상이라서 오히려 기쁘다기보다 나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대가들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다.

3월에 ‘화이트 버드 댄스 페스티벌’ 7월에는 ‘제이콥스 필로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해외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긴장되지는 않는가?

사실 LDP무용단은 2000년 창단할 때부터 해외 공연을 해왔다. 공연하는 것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화이트 버드 댄스 페스티벌은 재팬 소사이어티에서 한 공연이 첫 단추가 됐다. 작년 1월에 APAP 컨퍼런스에 참가하면서 재팬 소사이어티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때 화이트 버드 댄스 페스티벌 기획자 콜킹이 우리 공연을 보고 페스티벌 초청 의사를 보내왔다. 제이콥스 필로 댄스 페스티벌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연관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는데 우리 측 매니저와 콜킹이 연계해서 미국 공연 기획사들에 프레젠테이션을 해준 모양이다. 그래서 제이콥스 필로 댄스 페스티벌과 우리 측 미국 매니저가 공동 기획으로 공연에 참가하게 됐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노코멘트>는 처음에 무척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관객과 소통하면서 점차 분위기가 밝아졌다. 본래 의도가 희석된 점은 없나?

어떤 작품이든 창작의도와 상관없이 의외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노코멘트> 역시 다르지 않다. <노코멘트>는 이라크 전쟁 중에 한 남자가 스스로 얼굴을 때리면서 울고 있는 리얼 영상을 보고 소재를 얻은 작품이다. 전쟁에서 가져온 소재인 만큼 분위기가 어두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전쟁이 주는 참혹한 실상이나 인간의 상실을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킬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가장 사실적인 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니멀리즘 기법으로 동작을 최대한 단순화시켰고, 반복을 통해 있는 그대로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또한 드라마틱한 구조를 띠게 되면 무대가 폐쇄성을 띠게 된다. 가장 단순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무대는 열린 공간이 된다. 그 속에서 배우와 관객이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오는 27일부터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전미숙의 <반갑습니까>에 출연한다. 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무용가와 안무가는 각각 어떤 매력이 있나.

안무가는 작품 전체의 방향을 정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한 모든 장치를 구상하고 배치한다. 하지만 무용은 아무래도 집단공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최초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무용가는 인형이 아니기 때문에 안무가가 만든 작품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안무가가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방향이 예상 밖의 루트로 빠져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건 필연적이다. 물론 무용 공연이란 건 안무가와 무용가의 협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의 조율을 필요로 한다. 안무가가 원하는 방향을 그대로 표현하기란 어렵지만 적어도 전달하려는 의도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틀을 설정하고, 무용가는 그 속에서 자신의 해석이 가미된 안무를 조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안무가와 무용가 중에서 굳이 꼽으라면 어느 쪽을 더 즐기는 편인가.

이건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굳이 한 쪽을 정하라면 안무가 쪽이다. 아무래도 안무가는 작품 전체를 구상하고 만들어나가는 디렉터이기 때문에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의도를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무용가는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안무가가 지정한 틀 속에서 작품을 재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나만의 해석을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는 제한이 따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무가와 무용가 사이에 차등을 둔다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역시 모든 무용인이 그렇듯 자신이 직접 짠 안무로 무대에 오르는 일이 가장 즐겁다.

▲ 공연 <뉴웨이브> 중에서

같은 공연예술이지만 연극과 달리 무용에는 언어가 없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부분도 그 지점이라고 생각되는데, 무용의 표현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있다면.

언어는 발화가 직접적이라는 점에서 사실적이다. 의도 전달의 효율성을 떠나 관객이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목적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틀을 설정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된다. 무용은 그런 점에서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은유적인 방식으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작품이 명확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작품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무용가는 너무 추상적이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사실적이지도 않은 동작을 통해 관객의 상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나치게 추상적일 경우 말 그대로 알 수 없는 공연이 되어버리고, 사실적인 면에만 치중하면 마임이나 수화가 된다. 적절한 선을 잡아 틀이 없는 공간 속에서 관객의 상상을 유도하는 것이 무용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에 의해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남자 무용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였는데 적성에 맞았나?

처음부터 무용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활동적인 건 좋아했다. 무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권유였다. 어머니가 전에 발레를 하셨는데 집안에 예술가 한 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마 본인이 무용가로 살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펼쳐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무용 자료를 많이 보게 됐는데 그 중에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백야>라는 영화가 있었다. 무용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인데 그 전까지 남자 무용가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타이즈를 입는다거나 남성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백야>를 통해 오히려 남자 무용수가 (다른 직업보다)남성적이고 파워풀한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그 전까지 생각해 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성균관대 무용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하고 있는 활동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2008년과 2009년에는 창작을 많이 했다. 그러다 문득 휴식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작을 하게 되면 어쩌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심도 깊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0년에는 창작을 1번 밖에 안 했다. 무용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얻은 경험은 많지만 이론적인 지식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무용의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싶어서 진학을 결심했다. 활동에 큰 지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주시긴 하지만 잠을 줄이고 좀 더 바쁘게 생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적은 데서 공연한 적은 없나.

물론 있다. 출연 무용수가 14명인데 무용수보다 더 적은 관객도 있었다. 2002년 양평구민회관에서 한 노코멘트 공연인데 서울권 문화를 지방에 있는 문화소외계층에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에 기획된 공연이었다. 비록 소수의 관객이지만 즐거워해주셔서 만족스러웠다.

무용 공연이 매체를 넘나들며 복합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순수무용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동작이 중시됐다. 그러나 지금은 세트, 영상, 조명, 음악,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치가 종합적으로 구성된다. 무용에서 안무가는 연출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러 장치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동작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동작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 동작을 안무가의 의도대로 보여줄 수 있느냐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나 조명 등 동작을 보완하는 장치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음악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작품의 의도에 부합된다고 여기는 곡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조명은 관객에게 동작을 보여주는 빛이다. 같은 동작이라도 조명에 따라 보여지는 부분이 천차만별이 된다. 구상했던 작품 그대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조명에 대한 지식 역시 필요하다.

최근 서로 다른 장르가 융합된 대중적인 퓨전 장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인기 있는 공연도 많은데 이에 대한 견해는?

관객이 원하는 입맛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중의 숫자로 작품의 완성도를 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대중이 즐긴다는 것은 그들의 감성과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단지 오락적인 부분에만 한정된다면 좋은 공연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관람 후에 여운을 남기고 다시 찾게 되는 감동적인 공연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가장 좋아하는 무용가가 있다면?

해외에서 꼽자면 로이드 뉴슨이다. 아마 대다수의 젊은 무용가들이 로이드 뉴슨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로이드 뉴슨의 장점은 역시 장면 연출이다. 술집이나 해변 같은 일상적인 공간을 아름답고 인상 깊게 표현하면서 단순한 안무 배열이 아닌 무용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그를 높이 평가하는 건 아니다. 로이드 뉴슨의 작품을 보면 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단지 사회적인 이슈를 무용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낸다. 평면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저 재미있는 공연이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 관객은 각각의 장면이 지닌 의미를 인식하고 깊은 여운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코스트 오브 리빙(Cost Of Living)이란 작품을 보면 장애인이 등장한다. 하반신을 아예 쓸 수 없는 인간이지만 꿈이 있고 늘 긍정적이다. 반면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체는 자유롭지만 늘 뭔가에 속박당해 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신체의 자유가 곧 인간의 모든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인데 그걸 보면서 이 안무가는 확실한 자기철학이 있다고 느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적어도 하나쯤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한 번 즐기고 마는 작품이 아니라 세기를 반복해도 잊히지 않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고전 발레 같은 경우 현대에서도 끊임없이 원작과 재해석이 가미된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있지 않나. 그것처럼 앞으로 어떤 시간과 공간을 맞아도 관객들이 기억하고 즐기는 작품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목표가 있다면 역시 관객과의 소통이다.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비록 무대에 올라오고 하지 않더라도 공연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내 공연이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고 관람 후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는 전미숙의 <반갑습니까> 공연 연습 때문에 즉시 연습실로 달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많은 학생들이 그를 반겼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당장 해야 할 연습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젊은 나이에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용 밖에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천생 무용인. 지하에 있는 연습실에서 또 한 번 무대 위로 날아오를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