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한국인이 되지 않으려면...
돌팔이 한국인이 되지 않으려면...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2.10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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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고 뭐고 때려 치고 돈 벌러 가자

 

글쓰는 사람은 배고프다. 예술가는 배고프다...돈을 벌려면 문화계로 발을 들여놓지 말라. 문화인이 잘사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세상살며 자주 듣던 말이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며 글 쓰고, 작곡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시인·소설가·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익히 들었다. 그들 중에는 죽어서야 가치를 평가받고 유명해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간혹 운이 좋아 고생 끝에 빛을 이들도 있다.

성공한 대중가수들도 있다. 가수들이야 워낙 대중성을 추구하다 보니 노래하나 히트시키면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 대중가수의 경우이고  오페라·국악인·가곡가수들의 경우는 또 그렇지 않다. 평생 빛을 못 봐 사라지는 이들이 부지기 수다. 얼마 전 TV뉴스에서 중국집 자장면 배달하는 34세의 젊은이가 음악적 실력과 소질을 갖추었음에도 집안 사연으로 학업을 중단한 이야기가 소개 된 것을 본 적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등록금 마련을 위해 절도하다 잡혀 든 대학생 이야기도 있었다. 세상에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들이 참 많다. 그게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못 사는 사람도 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그런데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차가운 겨울 방에서 아무도 몰래 죽어간 무명 영화작가 이야기는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세상엔 별 일이 다 있지’‘그게 세상이야’라며 넘겨 버릴 수 없는 가슴 아픔이 두고두고 서린다. 가족도 없나, 친구들은...지가 무능해서 그렇지...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무명 영화작가의 죽음은 그렇게 말할 게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들 관계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을 것이고, 중요한 건 그녀가 절대로 무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6년 '격정 소나타'로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평단의 극찬과 재능을 인정받았던 인재였다.

이른바 전도유망한 예비 영화작가이자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차기작이 불발되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32세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한창 꽃필 나이만큼이나 안타까운 소식이다.“창피하지만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그녀가 남긴 마지막 메모는 차마 읽기조차 민망하다.

메모는 병마와 굶주림, 추위에 시달리던 그녀가 마지막까지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창작에의 희망을 놓지 않았음을 반증해 준다. 창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옆집에 도움 청할 생각을 했다는 건 그녀의 의지가 남아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아마도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힘든 몸을 일으켜 글씨를 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옆 집 문 앞에 도착했을 것이다. 순간 그녀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독기(?)같은 의지마저 품었을 법하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수치심 무릅쓰고 도움을 청했건만 불운은 끝까지 그녀를 덮치고 말았다. 발견이 너무 늦었던 것이다. 
 

문화의 세기 무색케 한 작가의 죽음
 흔히 말하길 21C를 문화의 세기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21C 문화강국, 문화대국을 지향한다고 한다. 벌써 60여 년 전 백범 김구선생도“문화가 강해야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1C 문화세기 論'을 기회 있을 때마다 설파했다. 그런데 그런 것은 구호로만 있을 뿐 현실에는 없는 모양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 G20 정상회담을 개최할 정도로 국격이 있다는 나라에서 그것도 '문화의 세기'를 설파하는 나라에서 전도가 유망했던 영화 작가가 굶어 죽었다. 이는 어찌됐건 우리들의 수치다. 우리나라 문화마인드와 정책의 결함을 넘어 우리사회 복지제도의 문제가 그렇게 드러났다는 말이다.

복권 팔고, 공연 표 팔아 문예진흥기금 만들고 그 돈으로 가난한 예술가 지원한다더니 그게 다 어디로 갔나. 평생을 행상으로 모은 돈 수십억, 수백억원을 어려운 이들 위해 쓰라고 내놓은 할머니들의 기부금은 또 어디로 갔기에 대학 등록금 만들려 절도하는 학생이 생기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돈 있으면 차라리 그런 식으로 기부하지 말고 주위에 이웃에 불우한 이들을 찾아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도와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더 은혜가 되지 않겠는가. 가난한 예술가 밥 한 끼 해결하지 못한 문예진흥기금 앞에, 아직도 많은 영화인들이 연평균 소득 600여 만원(월급 50여 만원)으로 조사됐다는‘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자료를 보며,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며 어디선가 글쓰고 있을 무명의 글쟁이들을 생각하며, 우리나라는 절대로 문화강국이 아닌 현실을 직시한다. 우리나라는 문화빈국인 현실을 직시한다. 책읽지 않는 국민, 그러면서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사회, 학력 ·학벌 차별, 교묘한 강자의 논리로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구조, 악질들이 사회곳곳에  판치는 형세...그들의 목표는 하나같이 돈이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 그러니 너도 나도 돈을 밝힌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 온갖 부조리도 서슴치 않는다.
이른바‘사악한 자본주의’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문화는 없다.
문화인은 배고프다. 문화는 상류층의 사치일 뿐 가난한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문화인들이여. 가난은 싫다. 문화고 뭐고 다 때려 치고 돈 벌러 가자. 그래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