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에서 만난‘여성국극단’
다카라즈카에서 만난‘여성국극단’
  • 임연철 / 국립중앙극장장
  • 승인 2011.02.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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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극은 물론, 영화로도, 오페라 · 발레로도, 지난해에는 심지어 국립창극단의 창극으로까지 봤지만 최근 일본에서 본 다카라즈카(?塚)의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화려하고 이색적인 무대는 처음이었다.

▲로미오 역의 오토즈키(音月 桂 · 왼쪽)와 줄리엣 역의 마이하네(舞羽美海).
다카라즈카에서는 남성역의 여성배우가 훨씬 인기가 높다.

화려함이란 호화 뮤지컬 쇼를 능가할 만큼 무대나 의상이 화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색적이라 함은 남자 주인공 로미오가 이제까지 관람했던 어떤 장르의 공연에서 나온 로미오 보다‘예뻤기’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1m80cm에 가까운 미모의 여성이 로미오를 하고 있으니 예뻐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다카라즈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색적이지 않을 수 없다.

아시는 독자도 있겠지만 다카라즈카는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大阪)에서 전철로 다닐 수 있는 위성도시의 하나다. 20세기 초 오사카 근교를 개발하기 위해 고바야시(小林一三) 한큐(阪急)전철의 창업자는 다카라즈카시까지 전철을 놓았으나 교외에까지 나와서 살려는 사람이 없자 전철승객을 개발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오늘 날 일본을 대표하는 이색 장르의 공연단 다카라즈카가극단이 탄생된 배경이다.

지난 구정연휴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초청을 받아 몇 군데 방문한 공연장 중 가장 인상이 깊으면서도 현대 일본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었던 곳이 다카라즈카 가극단이었다. 극장 주변에 다다르자 우선 9대 1 정도로 여성이 많은 흰 방한복 차림의 무리가 눈에 띈다.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날이라 로미오로 나오는 최고의 인기배우 오토즈키(音月)의 팬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모여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팬 층이 다양한 탓에 그룹을 지어 모이고 그룹마다 팬들도 위계질서가 엄격하다고 한다. 극장로비에는 출연배우별로 축하카드와 선물을 받는 데스크 앞에 20여 명씩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성팬(주로 주부)들이 남성역 여자배우들을 너무 좋아해 따라다니기 때문에 스캔들은 생기지 않지만 남편들의 불만을 사 가정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메조소프라노나 알토쯤으로 들리는 남자 주인공의 가창이나 연기실력도 세련돼 보였다.  그러나 로미오가 여자라고 생각하니 가부키에 나오는 여성역 배우가 남자인 것처럼 공연에 몰입하려 해도 ‘뭔가 2%’ 이상한 느낌이 들어 몰입을 방해한다. 공연 후 관계자에게 이런 느낌을 말하자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관객은 비극적 결말에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설조(雪組)의 공연 이었는데 이 가극단에는 각각 80명으로 구성된 화(花), 월(月), 성(星), 주(宙)의 5개 조가 있어 일본 전통 스토리는 물론, 서양고전, 뮤지컬을 ‘다카라즈카’ 스타일로 바꿔 공연한다고 한다. 도쿄(東京)에도 같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이 있어 연중 공연을 한다니 놀라웠다.
 이런 가극단(1914년 창단)이 만들어지기까지 1세기 가까이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개성 있는 장르를 끝까지 밀고나간 전철회사의 문화마인드에 고개가 숙여진다. 몇 번인가 해체의 위기가 있었고 동경 다카라즈카는 문을 닫기도 했지만 다시 열어 운영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다카라즈카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40년대, 50년대 한 때 인기를 모았던 여성국극단이 그것이다. 현대인의 취향에 발을 못 맞추고 고답적인 방식을 고수하다보니 자연도태 된 것이 일차적 원인이겠지만 성업중인 다카라즈카를 보니 이런 장르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우리는 문화를 하나 잃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립극장은 창극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전 판소리를 대본으로 한 창극도 물론 중요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극으로 만든 이유는 창극의 현대화, 다양화를 통해 관객 여러분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이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국립창극단은 올 연말 역시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무대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