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헌에서 <산성무진도>를 감상하다
류가헌에서 <산성무진도>를 감상하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3.1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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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으뜸으로 삼는다’라는 뜻을 지닌 사진 전문 갤러리‘류가헌’(서울 종로구 통의동)이 기어이 기자를 유혹했다. 문자 그대로‘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3월 1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유현민 사진전 <산성무진도>를 통해서다.
 삐거덕 한옥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잔디마당과 단아한 지붕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류가헌’에서 <산성무진도>를 만났다. 평소 사진에 대해 잘 알지도 조예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 하나의 사진전을 통해 사진세계의 심오함과 위대함에 절로 압도당한다.

더불어 대상을 그리 잡아내어 표현한 작가의 정성과 안목에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작가 유현민은 돌과 바위 등 무생물의 표정을 전문으로 담아내는 이. 발품으로 온 몸으로 현장을 찾아 산이든 들이든 강이든 가리지 않는 그의 열정이 대전 지역 스물 다섯 개 산성들을 낱낱이 담아냈다. 흑석동 산성, 백골 산성, 고봉산성, 견두산성...국사 책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들이지만 대전 땅이 분명히 간직한 산성들이다.
작가는 이 산성들을 이루고 있는 저마다의 바위와 돌들과 무표정한 바위와 돌이 모여 이룬 오랜 산성의 이미지를 기막히게 표현했다. 그 바위 그 산성은 작가의 발품과 안목과 정성스런 작업을 통해 오랜 풍화 속에 묻혀질 뻔 했던 표정과 이미지를 다시 드러냈다. 그것은 결코 무생물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지키고, 향토를 지키기 위해 한 축 한 축 손으로 굴리고 밀고 낑낑대며 쌓은 숨결 손길들이 그대로 배어 있는 표정이었다. 잊혀질 뻔 했던 바위, 묻혀질 뻔 했던 산성들을 찾아 그 표정을 잡아내려 작가는 얼마나 애를 썼을까.
작가는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산성들을 찾아 주로 해질 무렵, 또는 해뜰 무렵에만 수풀을 헤치고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발견한 대상과의 거리를 최소화 한 채 실체를 그대로 포착했다. 그랬더니 오랜 산성들의 무너지고 스러진 풍화의 흔적들은 오히려 싱싱한 생명처럼 말을 하듯 관람자를 응시한다. 그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사물 자체가 지닌 생명력도 있겠지만 관람자는 작가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사진 속 사물과 대화하는 자신을 느낀다. 작가는 아침 저녁으로 고된 행군을 했을 터...이런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해설자의 표현도 멋있다.

만약 누군가 어둑한 속에서 산성의 밑 언저리 바위를 뒤져 깊이 응시하고 있는 그를 본다면, 마치‘어둠의 귀신’을 본 듯 놀랐음직 하다....그렇게 그는 누구도 눈여김 하지 않은 쓸쓸한 퇴적물 같은 산성 스물다섯 곳을 찾아가고 탐색하여, 그 바위들이 품고 있는 장구한 시간의 이미지들을 기어이 자신의 이미지로 옮아왔다

바위와 돌에 새겨진 시간의 이미지
 시인 장석남은 전시회를 소개하는 <산성무진도에 부쳐>란 글에서 작가의 작업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바위를 밀러 다녔다. 바위를 밀어보는 일처럼 신나는 일이 있던가. 그것은 기꺼운 노래를 부르는 일과 같다. 그 속에 나의 호적부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한 문자들이 바위에는 새겨져 있다. 흰 팔배꽃이라도 바위 위에 무더기로 떨어져 앉으면 그 안이 머룽머룽 들여다 보였다. 바위는 그러니까 꽃으로 두드려야 열리는 창인 것이다.
 바위에 앉아 노래하다가 바위 속으로 들어가는 한 사람을 알고 있다. 바위 속에서 나와 바위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의 노래는 끝내 푸른 이끼로 바위에 자라다가 져녁 볕과 추위를 맞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벗이다. 그의 입술이 부르는 노래는 나의 입술로도 옮겨온다. 나의 공책에도 옮겨 온다. 그 노래는 하늘로 가서도 빛난다.

흰 돌을 삶아먹고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의 길은 산정으로 가지 않고 산정 아래를 맴돌다 내려간다. 그의 어깨는 푸르고 그의 손은 차다. 그의 꿈은 그대로 바위가 되는 것이다.
 돌로 집을 짓고 그 돌 속에 들어가 불을 피우고 돌에 제 그림자를 새기다가 그 돌의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 곁에 내 이름을 나란히 놓고 살고 싶을 때가 있었다....이제 나는 돌을 가슴에 얹고 사는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돌은 따뜻하고 그 돌은 가쁜하다. 그 돌은 멀리 보는 눈이며, 가장 깊이 가라앉는 눈이다.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그 돌 위에 양귀비 꽃 한 송이 얹어서 눈을 만들고, 그 눈에 나의 사랑을 들켜보는 일은 어떤가”
조예가 없는 보통 사람은 역시 해설자나 시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보다. 작품을 대하는 해설자와 시인의 표현을 보고나니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해진다.


누군가 말했다.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을 쓴 사람이 누군지와 그의 정성과 노력까지 감상하라고....<산성무진도>를 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위해 애쓴 작가와 그의 정성 · 노력까지 함께 감상하다 보면 바위와 돌과 산성이 주는 긴 시간의 이미지가 온 몸을 사로잡는다. ㄷ자 구조와 ㄱ자 구조의 한옥 두 채를 연결해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진‘류가헌툇마루에 앉아 왼편 미닫이 문 사이로 슬쩍 보이는 사진들의 배치도 운치를 더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