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지진속보1]이수경 교수가 겪은 일본지진 도쿄 상황 생생한 현장기
[도쿄지진속보1]이수경 교수가 겪은 일본지진 도쿄 상황 생생한 현장기
  • 이수경 교수(도쿄가쿠게이대학)
  • 승인 2011.03.13 1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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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 관동 대지진, 39층의 공포에서 회생, 사람의 情을 느낀 순간


이 글은 현재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도쿄가쿠게이대학 이수경 교수가 지진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현장기를 감동적인 사연과 함께 보내온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애를 이 교수는 국적을 떠나 국가를 떠나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크나큰  감명을 받고, 우리 국민에게도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주-


필자는 지금 동북 관동 대지진의 많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과, 이 순간 나를 살게 해 주고 나를 걱정하여 같이 눈물을 흘리고 아파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이 인류 최악의 시련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3월11일 12시, 필자는 지난 달에 일본에서 나온 책 출판의 회합도 겸하여 점심 식사를 하자는 고마츠 산업의 고마츠 회장 연락으로 도서신문사 다치하라 국장과 함께 도쿄 하마마츠쵸에 있는 국제 무역센터 39층의 레인보우 레스토랑에 갔다. 평소엔 학교와 집 밖에 모르는 필자건만 이 날은 학기 시작 전에 오랜만에 지인들도 만나고 싶어서 외출을 한 것이다.
39층에서 본 지진 중의 오다이바의 불

날씨도 화창했고, 39층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탁 트인 공간 유리창 너머로 동경만의 전경과 더불어 젊은 층에 인기있는 오다이바나 후지 TV등이 한 눈에 들어와서 하늘의 뭉게구름과 잔잔한 바다와 현대식 건축물이 참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2년만에 만나는 고마츠 회장과 다치하라 국장과 식사를 하며 출판물 내용의 향후 방향을 논한 뒤, 일어 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거대한 건물이 둔하지만 아래 위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다테유레)이 들었다.

지진의 움직임인 것 같아서 [어? 지진이 오네요]하면서 웃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요코유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일단 테이블의 끝과 끝을 붙잡았다. 하지만 쉬이 멈추지 않았고, 레스토랑 요리실 쪽에서 접시들이 떨어져서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리 테이블에서도 접시와 컵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일행은 일단 모두 테이블 밑으로 숨었다. 옆의 테이블에서도 사람들이 테이블 밑으로 숨기 시작하였지만 사람들이 점점 레스토랑 전망을 뒤로 한 채, 건물 안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도 60대를 넘은 분들이었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렇게 큰 움직임은 처음이다]며 테이블에서 일어나서 건물 안 쪽으로 가자고 하였다.

건물 자체가 휘청거리며 큰 움직임이 오기에 필자는 비틀거리며 도망가야 할 방향을 찾았건만 내 의지와는 달리 유리창 쪽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밖으로 보이는 오다이바의 명물인 후지TV 뒤쪽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뭔가 터졌구나…]그 불안과 더불어 넓디 넓은 레스토랑 전체가 휘청거리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을 잃고 있었다. 그 순간, 종업원 아가씨가 [창문으로 가시면 지금 위험하니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나를 붙잡아서 안 쪽으로 이끈다. 그렇다. 탁 트인 전망을 보여주는 이 유리창이야 말로 최악의 흉기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39층의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이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더더구나 필자는 1923년 9월1일의 관동대진재의 혼란을 연구해 왔고, 1995년의 관서지방 고베 한신 대지진을 현지에서 체험했기에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거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공중 속의 공간, 건물이 조금 더 흔들리면서 유리창이 깨지면 모든게 붕괴된다는 강박 관념과 불안의 극치, 한숨을 크게 쉬며 손님 대기용 의자에 쓰러지는 여성, 멈춰진 엘리베이터….필자 역시 떨림이 전신으로 왔다. 여기서 이 건물이 파괴되면 나 역시 끝이라고 생각하자 빈혈이 일었다. 일어설 수 없어서 털썩 주저앉자 종업원 아가씨가 와서는 나를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너무 염려마세요. 여기는 39층 높은 곳이라서 낮은 층보다 더 심하게 흔들릴 뿐이니 곧 멈출거에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이 젊은 아가씨도 속으로 무척 겁이 날텐데 이렇게 직업 의식 속에서 필자를 걱정하며 내 곁에서 떠나지 않다니…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는 그녀의 배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람의 정을 느끼며 잠시 안도를 했지만, 건물이 점점 크게 흔들리자 9.11 사건 때 사라진 뉴욕의 국제무역센터 건물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9.11이 아닌 3.11이지만 이 건물도 [국제무역센터]라는 이름이었기에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걸 보면서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는 일단 비상 계단을 찾아서 지상으로 내려가자고 일치를 봤다. 나는 일행에게 부축을 받으며 원망스러울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비상계단을 휘청거리며 내려갔다. 도중에 벽을 보니 벽면이 떨어져 있고, 건물의 많은 부분이 금이 가 있었다. 아래 층에서 응급 박스를 가지고 뛰어 올라가는 구조원도 보였다.

 [아! 단순히 악몽이 아니구나]는 생각과 더불어 나선형의 39층 계단을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지상으로 나왔지만, 일행들은 나를 끌고 건물들이 즐비한 곳을 건너서 구급차와 경찰차가 달리고, 다른 차들로 정체되어 있는 넓은 도로 한 가운데 분기점으로 데려 갔다. 큰 진동으로 도시의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무너질 경우, 건물 유리창 파편이 모두가 흉기가 되기에 도시의 거리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를 여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잠시 후, 많은 경험을 가진 필자의 일행은 건물이 파괴될 경우의 파편 걱정으로 필자를 유리창 파편이 닿지 않을 평지의 공간으로 안내 해 줬다.

신사 공터로 몰린 사람들

시바(芝)대신궁의 마당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휴대 전화에 들어오는 긴급 지진 정보를 보고 있었다. 1923년의 관동대진재때는 정보가 없는 비상 사태에서 가십이나 루머가 민족 차별과 조선인 6천 여명의 학살, 비열한 각종 범죄를 자아냈다. 이번 지진에서는 모두가 휴대 전화 등으로 지진 속보와 적절한 정보를 얻으면서 비교적 혼란이 없는 질서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배타적인 태도도 거의 없었다.

계속 되는 강한 여진으로 빌딩과 가로수들이 흔들거렸지만 여진 발생의 횟수가 점차 줄어들자 갑자기 추위가 엄습하였다. 다리를 절면서 추위에 떨고 있는 필자를 걱정한 일행들은 근처의 안전한 건물처럼 보이는 호프 집으로 나를 이끌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힌 뒤, 물을 마시게 하고 안정을 찾으라고 격려를 하였다. 이런 불안한 사태에서는 사람들의 배려가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며 약을 먹고서 TV뉴스를 접한 순간, 그제서야 현실 파악이 되었다. M.8.8(13일, 마그네튜드 9.0으로 변경)의 거대한 지진이 도쿄와 동북지방에 발생한 것이다. 심원지는 필자의 동생이 있는 미야기 센다이, 도쿄 윗쪽 지방이었다.

급히 동생 걱정으로 전화를 했지만 모든 전화는 불통이었다. 다행히도 도쿄시내의 공중 전화(NTT)는 유선 전화를 상대로 무료 사용이 가능하도록 배려하였지만, 휴대 전화에는 일체 통화가 되지 않았다. 통신 두절, 빌딩 사이로 울려 퍼지는 헬리곱터와 구급차/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어마어마한 쓰나미(일본 발음으로는 쯔나미)로 폐허가 되어가는 삶의 터전들…그야말로 생지옥 그 자체였다. 수마트라 대지진, 아이티, 뉴질랜드…계속되는 지구촌의 천재지변 속에 희생을 치루는 수 많은 생명들…,결국 한 나라의 힘 만으로는 해결 하기 힘든 지구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이젠 국가를 초월한 지구촌 전체의 결속과 협력으로 자연에 대처해야 하는 시대임을 절실히 느꼈다.

구급 물자를 배급하는 미나토구의 구청 직원들

곧 쓰나미가 밀려온다는 뉴스에 고마츠 회장과 그 직원은 근처의 회사로 가서 같이 쓰나미를 피하자고 했지만, 39층의 건물 비상계단을 내려오면서 밀폐된 빌딩 건물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작용하던 터라 필자는 하마마츠쵸를 떠나서 지형이 높은 오픈된 공간으로 가겠다고 했다.

다치하라 국장도 필자를 걱정하여 안심할 수 있는 상황까지 자신이 안내를 하겠다고 하였다. 도쿄의 지리를 잘 아는 분이라서 그렇게 해 달라고 하였다.

어차피 모든 전차 기차 등의 교통 수단은 스톱 상태였고,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50키로미터 정도를 걷는 수 밖에 없었지만, 필자의 다리는 이미 부어 있었고, 장거리를 걸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잠시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쉬면서 TV뉴스를 보다가 저녁 어둠과 더불어 점점 추워오기에 일단 근처의 역으로 갔다. 혹시 택시라도 잡히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역 앞의 각종 식당이나 술집에는 근처 관청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택시 같은 것은 구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2편에 계속]

 2011년3월13일 아침 이 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