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닥터만의 커피로드』
[서평]『닥터만의 커피로드』
  • 김종규(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 승인 2012.01.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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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자료의 근원을 보다.
▲ 『닥터만의 커피로드』(문학동네)
박물관은 옛것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흔적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오늘을 살게 되며 내일을 준비하게 된다. 박물관은 단편적인 현재와 미래가 아닌 축적된 편린으로, 과거에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지혜의 삶으로 인도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것은 역사를 공부하고 선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에서 소장하며 보여주는 자료들은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들이 형성되고 지금까지 오게 된 보다 근원적인 역사와 과정 역시 매우 중요하며, 일반인들이 이것까지 추론해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볼 때, 연구 분위기가 체계화된 일부 박물관을 빼고는 소속 박물관이 갖고 있는 자료의 원류를 연구하고 찾아내기에는 여러 형편 상 쉽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박물관의 보다 근원적인 역할이며 기능인 것이다.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 박종만관장이 커피연구에 빠져 다년간 그 원류를 찾아 직접조사하고 답사한 결과가 응축된 『닥터만의 커피로드』(문학동네, 2011,11,28발행)는 이러한 측면에서 박물관인의 한사람인 필자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저자 박종만은 커피가 그 어느 기호식품보다 저변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커피를 보다 깊이 있고 감미롭게 해주는 매개자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스턴트의 대명사, 일회용, 다방커피 정도로 생각하며 하루에 대여섯 잔씩을 일상적으로 마셔왔던 필자에게 박종만은 커피의 역사와 숨어있는 깊이를 일깨워주어 필자에게 있어 커피라고 하는 극히 단편적인 일상의 콘텐츠를 보다 가치 있게 한다. 이 책은 하찮은 사물에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말해주고 있다.

저자 박종만은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커피를 연구하면서 오지의 커피 생산지와 커피문화가 발달한 도시를 체계적으로 탐방해 왔다. 크게 아랍 커피로드와 유럽의 커피로드로 구분하여 그 항로를 잡고 있는데, 먼저 아랍루트를 보면 커피의 본류를 구체적으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 카이로, 시리아 다마스쿠스·팔라마·알레포·보스라 그리고 지금은 내전에 따른 치안불안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예멘의 사나·하라즈·바니 마타르·사나, 다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이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R. Hattox,『Coffee and Coffeehouses』와 G. Sandys, 『A Relation of a Journey Begun An; Dom: 1610』을 보면 각각 “수피교도들은 월요일과 금요일 밤에는 매번 커피를 마셨다. -중략- 그리고 의식에 따라 ’오직 알라, 존재하시는 알라밖에 없나이다.‘를 소리 내어 읊었다.”, “1532년, 선동적인 맹 신도들에 의해 많은 커피하우스가 공격받았다. 카디는 ‘커피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몹쓸 것’이라 굳게 믿는 종교 지도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커피가 일반에 허용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중략- 이후 커피는 기도드릴 때 마실 수 있도록 되었다.”

당시, 커피는 마치 오늘날 조상들에게 바치는 제주(酒)와도 같은 성스러운 존재였을 뿐 만 아니라 1500년대 초 중동지방에서 커피가 갖는 의미와 위치 그리고 대중화의 기로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유럽루트는 스페인을 출발하여 프랑스까지 7개국 20여 도시를 탐사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각국별 커피의 가치와 문화상을 극명하면서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랍은 외국인의 농장방문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1616년 네덜란드는 커피나무를 훔치는 데 성공했지요. - 중략 -” 저자 박종만이 암스테르담에 들렀을 때, 우연히 보았던 레이덴(Leiden)대학 야콥스(Drs. Els M. Jacobs)교수의 영상자료로 네덜란드 커피의 역사에 대한 이와 같은 말은 커피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치 문익점선생이 목화를 들여온 과정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프롤로그에서 박종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문득 미치도록 커피 공부가 하고 싶은, 그래서 젊음을 불태울 용기를 지닌 청년의 편지 한 통을 받아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간절한 기대이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고......, 커피만큼이나 뜨겁고 깊은 열정의 소유자 박종만 앞에 그가 바라는 커피론(論)의 후계자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하며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