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뿐인 출판사 '눈물겹게 서럽네'
'무늬'뿐인 출판사 '눈물겹게 서럽네'
  • 이소리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2.02.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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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책 한 권 못낸 출판사 10곳 가운데 9곳... 출판불황 정부대책 없나?

우리나라 출판계 속내를 파헤치면 참 눈물겹게 서럽다. 지난 2011년에 책을 한 권도 내지 못한 출판사가 10곳 가운데 9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름표만 있고 책이 없는 가난한 출판사들이 출판가에 이처럼 수두룩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대한출판문화협회가 15일 발표한 ‘2011년도 출판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끝자락을 기준으로 출판사로 설립 신고한 3만8170개 업체 가운데 93.1%에 해당하는 3만555곳이 지난해 책을 한 권도 펴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지난 2010년 ‘개점휴업’ 출판사 92.9%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무실적 출판사 비율은 1988년 50.7%로 절반 수준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1인 출판사 등 영세한 출판사가 늘어나고 출판계 불황이 겹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출판사들은 왜 설립 신고만 하고 책을 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한 독자는 “책을 내지 않을 것 같으면 출판사 등록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라며 “일을 할 생각이 없으면서 괜스레 삽만 들고 들에 나가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하다.

지난해 책을 한 권도 내지 못한 한 출판사 대표 말을 들어보자. 그는 “어느 누가 책을 낼 계획도 없으면서 출판사 등록을 하겠느냐?”라며 “글쓴이 원고료와 제작비가 많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책을 펴냈을 때 과연 원고료와 제작비 등을 건질 수 있느냐가 더 큰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출판가 속내를 살펴보면 새 책을 펴내 서점가에 깔았을 때 아무리 적게 팔려도 초판 1쇄본 2,000부 이상은 팔려야 기초 제작비를 건질 수 있다. 문제는 수금이다. 책을 오랫동안 펴내지 않은 출판사나 첫 책을 펴낸 새내기 출판사는 초판 1쇄본이 다 팔려도 그 돈을 다 수금하기 어렵다. 서점가에서 잔고를 잡기 때문이다.

서점가에서 잔고를 잡는 까닭은 새내기 출판사나 한동안 책을 펴내지 못한 출판사가 문을 닫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서점가 한 관계자는 “출판가에는 워낙 부침이 심해 하루에 문을 닫는 출판사와 새롭게 태어나는 출판사가 부지기수”라며 “잔고를 잡지 않으면 책에 문제가 생겨도 반품할 곳도 없고 상의할 곳도 없기 때문에 그 몫은 모두 서점이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2011년도 출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새 책은 모두 4만436종에 이르러 2010년에 비해 오히려 9.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종류별로는 아동이 21.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문학 18.6%, 만화 14.6%, 사회과학 13.4% 순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신간 가운데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 들여와 번역 발간한 책이 26.5%에 달해 출판 콘텐츠의 자급 자족율이 여전히 저조하다”며 “책 한 종류에 대한 평균 발행부수도 2488부에 머물러 전년 대비 5.7%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으며, 책 한권 값은 평균 1만3010원으로 전년도보다 1.5%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가난한 출판사들이 안고 있는 허점은 출판 콘텐츠 자급 자족율이 낮다는 것이다. 여기에 제작비 등을 저울질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발행부수는 줄여야 하고 책값은 올려야 하기 때문에 가난한 출판사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판가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좋은 책을 펴내는 출판사를 지원하기 위해 ‘이달의 우수도서’ 등을 가려 뽑아 몇 천 권씩 사주는 등 여러 가지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큰 출판사들에서 펴낸 책들이 선정된다”라며 “정부에서 가난한 출판사들이 꾸준히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도록 특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