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정임 정동극장장]‘미소’, 전통문화 안 된다는 시장논리 뒤집어
[인터뷰-최정임 정동극장장]‘미소’, 전통문화 안 된다는 시장논리 뒤집어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4.24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콘텐츠 경쟁력, 라스베이거스 상설공연 충분히 가능성 있어

 

     젊은이들 못지않은 아이디어와 창의성과 열정을 지닌 최정임 정동극장 극장장. 그가 정동극장과 함께 한 지도 이제 4년째이다. 첫 1년은 예술 감독으로, 그리고 2010년 3월, 극장장으로 임명됐다. 최 극장장은 명품전통공연 ‘미소’의 상설 공연화에 앞장섰고, 지난해 7월부터는 경주에서 ‘미소2’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를 복원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갖고 1995년 설립된 정동극장은 공연예술의 근대 예술정신의 시발점이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진 문화 완충지이다. 지난 6일에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명동정동극장의 이사장에 임명되면서 정동극장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정임 정동극장장

◆턱없이 부족한 예산, ‘미소’ 세계화 위해 개선돼야할 것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이사장에게 앞으로의 기대 내비치기도…

▲박용만 명동정동극장 이사장과 최정임 정동극장장
-얼마 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명동정동극장 이사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박용만 이사장께 바라는 기대와 요구가 크실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지만, 대부분 ‘이런 작은 극장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말만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업에서 우리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사장직을 맡아주셨단 자체가 아주 따뜻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재정적인 면을 떠나 정신적으로 큰 후원이 됩니다. 어떠한 사안이 있을 때, 함께 목소리를 내준다면 힘이 될 것 같아요. 여러 세부적인 사항들은 토론과 회의를 거쳐 하나씩 이뤄져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무용 전공자가 극장장을 맡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예술 감독에서 극장장이 되니 괜히 막연한 두려움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주변에서 작은 살림이나 큰살림이나 똑같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작품도 만들면서 경영까지 해야 하니 어려운 점도 더러 있더군요. 경영과 관련해 주로 관광업계와 여행업체를 만나는데, 생소한 분야라 공부가 많이 필요했어요. 처음엔 전문용어에 치이면서 좀 허덕였죠.(웃음) 상품도 질이 좋아야 잘 팔리듯이, 저도 극장 운영과 공연의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했습니다”

▲'미소' 중 춘향과 몽룡의 이별 장면

-‘미소’는 1997년 시작돼, 15년간 4천 2백회의 공연과 72만 명이란 관람객 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시장 논리는 ‘전통공연은 안 된다’였지만,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없는 조사와 끊임없는 노력을 멈출 순 없었어요. 저는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평생 순수예술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를 몰랐다고나 할까… 처음엔 혼란스러웠죠. 그래서 전 관객들과 접촉하고, 관객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조사하며 깨달았어요. 높은 전문성과 예술성을 갖춘 작품보다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이어야 한다고요. 그렇다고 예술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탄탄한 연출력만 뒷받침된다면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잡을 수 있단 걸 깨닫기 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소’의 성공적인 흥행과 정동극장의 상설공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역대 극장장들께서 뿌려놓은 씨앗덕택이라고 그는 겸손해 한다. 하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버무릴 수 있는 그가 ‘미소’ 총연출을 맡았기에 지금의 ‘미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주변의 평가다.

-‘미소’에 대한 외국인 관람객의 호응이 엄청난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같습니다.

“사랑 이야기는 세계 어딜 가나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나봅니다. ‘미소’만이 지닌 애틋함을 많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미소’의 춘향전에서는 이방, 방자 등의 캐릭터가 전해주는 한국적인 풍자와 코믹함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보다도 무대와 관객이 체험을 통해 함께 소통하는 것에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작년 공연에는 무당춤 장면에 액막이천을 객석에서 걷어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올해 공연에선 버나 돌리기 체험을 준비해서 하고 있는데 관객들 반응이 또 좋습니다.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직접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요?”

-경주 정동극장에서 올리고 있는 ‘미소2’ 인기열풍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세계에서도 일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 중국 여행사의 ‘미소2’관람이 포함돼 있는 여행상품은 인기품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KBS 9시뉴스에 ‘미소’가 한류 중심에 서있다며 보도된 적이 있어요. 이제 한류의 방향은… 우리가 직접 세계무대로 나가는 것을 포함해,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를 즐기기 위해 국내로 오게끔 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죠.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문화를 더 내보이기 위해선 국가차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소’에 이어 ‘미소2-신국의 땅, 신라’까지 열렬한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경주의 경우 신라 선덕여왕과 화랑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셨는데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미소 시리즈’를 계속 기대해도 될까요?
“제주도에서 ‘미소3’을 준비 중입니다. 예산만 주어진다면 곧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연부지도 알아보고 있고, 도지사님도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다른 중장기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전국 광역권에 하나씩 다 만들고 싶은 거죠. 언급하신 경주처럼 전국 지역마다 그에 맞는 소재와 주제를 선정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경남권이라면 ‘가야’를, 충청권은 ‘백제’로 한다는 거지요. 부산, 강원도 등에서도 ‘미소 시리즈’를 공연하고 싶어요. 이북에 가서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연변도 생각 중이고요”

‘미소 시리즈’의 제목은 계속 ‘미소3, 4, 5…’의 형식으로 간다는 계획이다. 제목이 자꾸 바뀌면, 관광업계에서 인지도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뢰도마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소’라는 브랜드명으로 정체성을 확립시켜놓고,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가겠다는 생각이다. 

▲새롭운 버전의 '미소' 기자간담회가 지난 18일 정동극장에서 열렸다.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미소’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설공연을 하는 게 꿈’이라고 밝히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요?
“그렇지 않아도 지인을 통해 문을 두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 기업의 투자와 지원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미소’는 특히 외국인 관람객의 반응이 열렬하기 때문에 미국 기업 측에서도 굉장히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고요. 예컨대 중국 극 같은 경우, 무대세트의 현란함은 처음엔 관객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엔 감흥이 없어지고, 두 번, 세 번 보기엔 지루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정과 연기력은 처음 봤을 때나, 여러 번 봤을 때나 질리지 않아요. 우리 배우들은 혼신을 담아 연기합니다. 우린 지금 너무나도 큰 걸 갖고 있는데, 포장할 줄도 모르고, 포장하지도 않고 있어요. 숨어있는 작품의 가치, 예술의 가치, 콘텐츠의 가치를 꺼내 보여준다면, 북 하나만 갖고도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할 수도 있다고 확신해요”

-정동극장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입니다. 이와 관련해 경영의 어려움도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우리 경쟁업체들은 경제적 여건을 갖춘 사기업입니다. 하지만 저흰 공공기관이다 보니… 이번 예산에서 해외출장비가 깎여 해외마케팅도 못하는 실정이죠. 그런 면에서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네요. 특히 관광업계와 원활한 교류를 위해선 별도 예산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인센티브 문제죠. 아시다시피 저희는 그런 것에 관한 지원을 일체 받지 않기 때문에, 경쟁력이라고는 우리 직원들이 합심해 직접 발로 뛰는 것밖엔 없어요. 우리끼리는 일명 ‘정情 나누기 마케팅’이라고 해요. 여행업체들과 정으로 인간적 관계를 맺어 우릴 뿌리칠 수 없도록 하는 거죠.(웃음) 앞으로 ‘미소’전용관이 더 커나가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미소' 중 '학도의 연모'

-정동극장의 내부 극장구조와 관객을 수용하기엔 현저히 모자란 객석 수 등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입니다.
“위치적으론 참 좋은데, 불편함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공연극장이 지하에 위치해 있어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점, 사무실과 연습실이 따로 떨어져 있는 점 등 여러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문화부에 티켓박스를 지상으로 옮길 수 있도록 로비라도 넓혀달라며 조르고 있는 중이에요. 극장 설립 당시, 5층짜리 건물로 설계됐다가 미국 대사관저 때문에 설계가 자꾸 변경되면서 결국 무대가 지하로 내려가게 됐어요. 이 작은 객석수로 지금까지 버텨온 게 용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부지를 더 구입하자, 1층 전체를 공연장으로 만들자 등 여러 얘기들이 계속 되고 있어요. 얼마 전, 이사회에 박용만 이사장님도 참석하셨고 여러 이사님들이 힘을 모아주시겠다고 해서 든든해집니다.”

-지난 8일 한국명작무대제전에 직접 무대에 올라 '황혼'을 선보이셨어요. 요즘도 무용 연습에 매진하시는 지요?
“실은 할 시간이 별로 없죠. 하지만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놓아본 적은 없습니다. 주변에서 같이 공연하자고 많이들 말씀해주세요. 어찌됐든 저는 결국 춤추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끔씩은 무대에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올해 6월에 공연 하나 준비 중이에요. 워밍업으로 한국명작무대제전에 참가한 거고요. 아니면 매일 책상에만 앉아있을 것 같아서요.(웃음)

최 극장장은 기자와 인터뷰 중, 2010년에 늦깎이 결혼했다는 깜짝 소식을 털어놨다. 극장 업무로 신혼여행 다녀올 틈도 없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최 극장장은 이제 막 1년을 넘긴 신혼이지만 주말부부에, 공연 연출로 연습실에서 밤을 새기가 부지기수다. 결혼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가끔 잊을 때도 있단다. 그러면서도 마음만은 신혼에 듬뿍 빠져있다고. 부군에 대해 묻자 살짝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결혼이란 참 묘한 것 같아요. 이제와 새삼 운명이 존재한다고 믿게 됐다니까요.(웃음) 마치 다 정해져있었다는 듯이 모든 게 자연스러웠어요. 남편은 제 든든한 후원군이에요”라며 활짝 웃었다.

최 극장장은 ‘미소’ 3D·4D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의 턱에 걸려 뻔히 보이는 고지를 앞에 두고 다시 내려오기 일쑤이다. 검증된 작품을 갖고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미소’ 3D·4D화는 결국 우리나라 IT산업 홍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루빨리 ‘미소’가 진정 세계에서 미소 짓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최정임 △현재 제 5대 정동극장 극장장 △정동극장 예술감독 △동국대학교 국악과 한국무용 겸임교수 △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 공연 △북경 하계 유니버시아드 폐막식 한국 예술단공연 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