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미술관이여! 다시 시작하라.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미술관이여! 다시 시작하라.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3.02.2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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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문화학 박사
  2004년도는 사립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에 외부 지원금이 공식적으로 투입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로또복권은 삶이 팍팍한 서민들이 궁여지책으로 찾는 탈출구이다. 이 수익금 중 36억 원이 최초로 사립 박물관으로 지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필자는 모 지방대학에 출강한 적이 있다. 강의에 늦어 택시를 이용하기 일쑤였던 필자에게 들려준 어느 택시기사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기사는 “일주일을 사는 유일한 낙(樂)은 로또복권을 사서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설레임이다.”고 했다. 로또복권의 1등 당첨이 번개 두 번 맞을 확률보다 낮음을 볼 때 그 택시기사는 지금도 복권을 사는 낙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로또복권을 사지 않을 확률이 크다. 따라서 이 기금은 사회적 약자에 의해 조성될 확률과 비중 또한 높다. 세금보다도 더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 돈으로 우리 박물관들은 전시와 교육프로그램도 기획할 수 있었고, 도록과 홈페이지 등 홍보물도 만들었으며, 수장고도 고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로또로 로또를 맞은 샘이다.

  이후, 2007년부터 역시 사립에 학예사 인건비가 지원되었으며, 해설사, 인턴, 에듀케이터,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 비정기적 단순 근로자도 지원되기에 이르렀다. 중앙정부를 필두로, 경기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서울, 광주, 인천 등 지방자치단체 등도 박물관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어 사립 박물관 직원들과 박물관 활동도 전문화 활성화하도록 돕고 있다. 로또복권기금 이후에 시작된 지원은 국고나 지방비로 다름 아닌 국민의 세금이다. 한편, 정부는 2008년 5월부터 국립박물관 입장료를 무료화해 사립에 대한 국고지원의 당위성을 보다 확고히 해주었다.

  사립에 대한 지원은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인류문화유산을 관리하고 보존한다는 박물관의 고유기능은 국립과 공립, 사립과 대학이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사립의 그것도 숭고한 활동임에 분명하다. 지원의 명분이 분명한 이유다.

  박물관의 이용자는 박물관이 국공립이든 사립과 대학이든 관심이 없다. 오직 무엇을 전시하고 있는지? 거기에 가면 어떤 것을 즐길 수 있는지? 가 박물관을 찾는 이유가 된다. 이것은 사립이 활발한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원이 지속 될수록 많은 숙제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그 역량 강화가 전반적인 것인가에는 의문이 든다. 국고는 가장 숭고한 자금으로 지원에는 그 목적에 맞는 쓰임과 회계, 결산이라고 하는 책무가 수반된다. 국고를 직접 집행하는 정부기관이나 공무원과는 달리 사립 박물관은 회계 관리와 결산에 있어 전문성과 노하우가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원을 받은 사립 박물관에서 지난 몇 년간 이와 관련해 간헐적으로 붉어진 문제는 이를 대변하고 있다.

  국고집행과 관련된 사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무지에서 오는 경우이다. 이는 지원주체를 통한 교육과 회계의 합리적 기술을 습득하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자구책이 강구되어 회계의 투명화와 전문화를 축적해 나아가야 한다.

  두 번째 원인은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사례이다. 우리는 언론지상을 통해 굵직굵직 한 국고횡령과 세금탈루 사건을 접하곤 한다. 그것도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층인사나 공직자를 통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국민들의 허탈감 또한 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오비이락 격으로 맞아 떨어져 사건의 결론 역시 불공정하게 유야무야 되고 마니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눈먼 돈’, ‘국고는 주인이 없어 쓰는 사람이 임자다.’, 또 ‘쪽지 예산’이라는 말까지 통용될까? 이러한 인식은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이 부조리한 풍조가 박물관에까지 번지지나 않을까 큰 우려를 갖게 되는 대목이다. 도덕적 해이의 확대와 양심을 거스르는 부도덕한 행위가 박물관에 대한 국고의 부당수급 또는 횡령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박물관의 가장 기본을 거스르는 행위로 단호하게 배척되어야 한다. 국고나 외부지원을 받기위한 목적으로 박물관을 설립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지원에 대해서는 받으면 고맙고 안 받아도 아쉬울 게 없어야 한다. 남은 받는데 나만 못 받았다는 허탈감도 가져서는 안 된다. 어떤 관장은 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을 ‘독립운동’이라고 말한다. 외부의 지원을 전제로 독립운동을 한 운동가는 없다. 따라서 박물관을 설립할 때 가졌던 초심을 생각해야 할 때다.

  끝으로, 국고나 외부지원은 반드시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외부지원에 의지하고 의존하다보면, 박물관의 고유활동과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외부 지원비 신청과 정산이 박물관의 일과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해 학예사로서 전문성을 발현할 기회가 점점사라지고 있다. 또 외부지원을 많이 받아 오는 것이 인사고가의 가장 큰 지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박물관의 학예사라는 자긍심이 점점사라지고 있다.” 는 어느 지방박물관 학예사의 말은 큰 시사점을 준다.

  박물관의 고유기능과 방향에 맞는 활동이 정말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