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우리 술에 담긴 문화와 철학(2) - 만강에 비친달과 동몽, 단호박 넣은 생탁주와 청주
[기획연재] 우리 술에 담긴 문화와 철학(2) - 만강에 비친달과 동몽, 단호박 넣은 생탁주와 청주
  • 고무정 대학생 기자(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 승인 2013.08.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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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찾은 술, 품격으로 승부한다

한국인은 세계 상위를 다툴만큼 술 소비가 매우 높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술이 요사이는 남녀 구분없이 ‘희노애락’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기호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술을 마시는 데에 있어, 대부분 같은 주종(酒種)만을 반복해서 마신다는 것이다. 1909년 일제가 주세법을 발효해 우리 술의 제조와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한 이후로, 1927년 통합된 곡자제조회사를 통해 일정한 누룩만을 쓰도록 하거나, 1954년 발효된 양곡관리법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가양주 문화는 물론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주 역시 그 뿌리가 뽑히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우리 술의 빈자리에 현재는 외국의 술이 들어앉아 대신하고 있다.
그 덕에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이라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주정에 물을 섞은 희석식 소주나 아스파탐 등의 합성감미료를 첨가한 막걸리, 맥아가 없다시피 하는 국산 맥주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특별한 날에 와인이나 양주, 칵테일을 찾는 것도 안타깝다.
우리 조상들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 집집마다 담아내던 가양주 중에 와인이나 양주 등 서양 술에 못지않게 상당한 가치가 높은 것이 많다. 좋은 곡식과 약재 등을 써서 기분을 돋우는 낙주(樂酒)로서 만이 아니라 기운을 북돋우는 약주(藥酒)로서의 기능도 높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우리의 술들이 전국 도처에 얼마든지 있지만, 대중의 관심과 흥미가 없는 이상 그 술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할 수가 없다. 하나의 전통을 잃는 것은 그 속에 깃든 철학과 사상을 함께 잃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술의 가치를 알리고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우리 술 기행'을 연재한다. 이번호는 그 두번째로 전통탁주를 재현한 전통주조 '예술'을 찾았다. -편집자 주-


술도 문화이자 예술이다. 어떤 술을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행동양식이 문화로, 예술로 자리매김한다. 
“화학조미료로 가미를 한 소주를 마시면 감정이 격양되면서 화나는 과거가 생각나지만, 우리 술은 야트막한 우리의 땅을 닮아 조금 과하게 마시더라도 숙취 없이 차분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이 생긴다“ 고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 대표는 말한다. 이번에 찾은 우리전통주 도가는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전통주조 예술이다.  단호박으로 만든 생탁주 '만강에 비친 달'과 동몽(청주)를 생산하고 있는 ‘예술’ 양온소(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던 술을 만드는 기관을 칭함.양조장은 일본인이 이를 폄하하기 위해 붙인 명칭)에서 ‘만강’과 동몽을 앞에 두고 정회철 대표와 마주했다. 8월 초순의 몹시도 무더운 날씨였지만 ‘예술’이 자리한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의 어스름은 바람이 풍경을 흔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술을 빚은 날짜와 때에 따라 해야할 내용을 적은 메모지를 장독 뚜껑에  붙여놓고 세심하게 술맛을 관리한다.

만강에 비친 달과 동몽(同夢)전통주조 예술은 옛날 술이라는 의미와 말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중의성을 지닌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작명 센스만큼이나 술의 이름들도 범상치 않다. 현재 예술은 탁주와 청주, 단 두 가지만을 시중에 유통하고 있다. 탁주는 이름이 만개의 강에 달이 비친다는 의미인 ‘만강에 비친 달‘(이하 만강)이고, 청주는 같은 꿈을 꾼다는 의미인 ‘동몽’ 이다. 만강은 사랑과 자비가 온 누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개념을 형상화한 것인데, 우리의 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만강은 홍천의 특산물인 단호박이 들어가 노란 빛깔이 감도는 막걸리이다. 지나치지 않게, 그러나 서운하지 않게 단 맛이 감도는 만강은 술잔이 비는 것이 아까울 만큼 맛이 좋다. 동몽(同夢)은 같은 꿈, 즉 하나가 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데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소통을 이끌고 연결하는 술의 특성을 살펴 만든 이름이다. 찹쌀을 원료로 한 청주다운 특유의 맑은 향기와 달콤함이 입속에 감돌았다.

정 대표는 전통이기 때문에 우리 술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맛있는 술을 찾다보니 우리 술을 하게 되었다. 더 좋고 더 맛있는 술이 있었더라면 그것을 하겠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숙취도 없고 맛도 이만한 술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의 정종이 더 나았으면 정종을 만들겠는데, 우리 술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이것을 하게 되었다고. 워낙 훌륭해서 단지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우리 술이 전체 술 시장에서 양주나 와인, 사케 등에 밀리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며 넌지시 술을 건네는 정 대표의 말에서 모종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주조-‘예술’ 정회철 대표가 우리 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술 빚는 일과의 인연

7년 전, 사실 그때의 그는 술을 빚을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서 홍천 땅으로 내려왔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 악화된 건강 문제로 요양 온 것이었기 때문에 조용하고 한적한 땅을 구했다. 그러나 집을 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집 뒤쪽으로 고속도로가 났다. 다른 쪽으로 고속도로가 나는 줄 알고 집을 샀던 정 대표는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빚게 된 지금, 술 빚는 체험하러 오는 이들에게나 술을 유통시키러 나갈 때 바로 뒤에 고속도로가 위치한 것이 훨씬 이득이 됐다. 정 대표는 이게 다 술과의 인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신기한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술맛은 물맛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에 걸맞게 홍천은 물이 맑고, 맛도 좋고 수량도 풍부한 곳이다. 집 안에 있는 지하수의 풍부한 수량과 물맛도 그가 술을 빚도록 부추김질 한 것 같다. 또, 공지에다 무심코 심어둔 백합나무 숲이 오히려 양온소 앞에 짓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쉼터로 작용할 것이라거나, 건축 양식 문제가 우연히 알게 된 김개천 국민대 교수 덕분에 해결되었다거나 하는 점은 술 빚을 인연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장 적합하겠다.

전통주조 예술의 술이 고급주인 이유

현재 만강에 비친 달의 경우 소비자가가 12000원이다. 다른 시중 막걸리에 비해 열배 가량 비싸다. 그래서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막걸리의 어원이 ‘마구 거르다‘에서 나온 만큼 막걸리는 서민들의 술이기 때문에 이를 고급화하는 것은 막걸리에 걸맞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그러자 막걸리의 ’막‘은 ’이제 막, 방금’의 시간적 개념이지 절대 ‘막, 마구, 대충의’ 방법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날은 쌀이 귀했던 만큼 술을 정성껏 빚을 수밖에 없었는데, 청주를 제외한 나머지에 가수하여 만드는 술이 막걸리였다. 청주를 제외하고 남은 것을 술독에 보관하다가, 손님이 오면 이제 막 물을 부어 상에 낸다 하여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

지금의 막걸리는 일본식 입국을 사용해 알콜을 만들고 나니 없는 맛을 내려 탄산과 아스파탐 등을 첨가해 싸게 마실 수 있지만, 옛날 막걸리의 경우 쌀 도정기술이 좋지 않아 술을 만들어도 도수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많이 부을 수가 없어 술을 많이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걸리의 개념과 전통 막걸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막걸리 80병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쌀 2말(16kg)이 필요한데, 이는 옛날에 한 달 동안 식량으로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들의 술은 취하려 많이 마시는 술이라기 보다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법주나, 밥상에서 밥맛을 돋구기 위해 한잔씩 곁들이는 하나의 찬과 같은 반주의 형식을 취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이 아닌 양온소에서, 술탱크가 아닌 술독에 직접 손으로 빚는 만강과 동몽은 가격대는 조금 있더라도 오히려 가장 전통적인 술이라 할 수 있겠다.

술의 발효상태 등을 체크기를 이용해 수시로 점검 한다.


멥쌀로 두 번 빚은 이양주를 마시면서

현재 상품화되고 있는 두 가지 술 만강과 동몽은 찹쌀과 단호박을 사용해 두 번 빚은 이양주다. 도수도 높지 않고 맛도 부드러워 많이 마셔도 그리 취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러나 웬만큼 마시고 나니 술을 잘 못하는 동행한 후배는 이미 홍익인간이 되어 있었고, 동몽을 데워 마실 워머는 샀으나 겁이 나서 아직 시도는 못해 보았다는 정 대표를 회유해 같이 술을 데워 마신 나도 조금은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그래서 공식적인 취재는 거기서 마치기로 하니 정 대표가 다른 술을 가지고 온다. 이번 10월 무렵에 시중에 출시할 술로, 멥쌀 100%로 만든 막걸리였다. 시중에 출시되기 전까지 술의 이름은 비밀이다. 찹쌀로 빚은 술이 여성적인 성향을 띈다면 멥쌀로 만든 술은 보다 쓰고 독해 남성적이다. 송명섭 막걸리와 비슷한 맛을 예상했으나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잔향이 강하며 목넘김이 좋았다.

이유를 묻자 단양주인 ‘송명섭 막걸리’와 달리 이 술은 두 번 빚어 그렇다는 것이다. 남성적인 술 답게 취기가 금방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후배는 바닥에 누워버렸다. 나는 황태포를 안주로 새벽까지 그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술이 많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술 뿐만이 아니라 술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가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하고 정 대표는 말했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닌, 맛있기 때문에 마시는 술이 되어야 한다.

예로부터 통음(通飮)이라 하여, 밤새 취했다 깼다 하며 마시는 술을 그렇게 일컬었다. 많이 마셔도 과하게 취하지 않고 금방 깨는 우리 술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것이 다시 가능하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세대의 교체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만강’과 ‘동몽’은 생산되는 양이 많지 않아 서울에서는 홍대, 합정동, 이태원, 이수사거리 등 4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