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우리 술에 담긴 문화와 철학(3) - 추석차례에 어울리는 술,경주 교동법주
[기획연재] 우리 술에 담긴 문화와 철학(3) - 추석차례에 어울리는 술,경주 교동법주
  • 고무정 기자
  • 승인 2013.09.12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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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부잣집의 350년 전통, 품격있는 제주(祭酒),

 

한국인은 세계 상위를 다툴만큼 술 소비가 매우 높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술이 요사이는 남녀 구분없이 ‘희노애락’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기호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술을 마시는 데에 있어, 대부분 같은 주종(酒種)만을 반복해서 마신다는 것이다. 1909년 일제가 주세법을 발효해 우리 술의 제조와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한 이후로, 1927년 통합된 곡자제조회사를 통해 일정한 누룩만을 쓰도록 하거나, 1954년 발효된 양곡관리법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가양주 문화는 물론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주 역시 그 뿌리가 뽑히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우리 술의 빈자리에 현재는 외국의 술이 들어앉아 대신하고 있다.

그 덕에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이라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주정에 물을 섞은 희석식 소주나 아스파탐 등의 합성감미료를 첨가한 막걸리, 맥아가 없다시피 하는 국산 맥주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특별한 날에 와인이나 양주, 칵테일을 찾는 것도 안타깝다.

우리 조상들이 명절이나 특별한 날 집집마다 담아내던 가양주 중에 와인이나 양주 등 서양 술에 못지않게 상당한 가치가 높은 것이 많다. 좋은 곡식과 약재 등을 써서 기분을 돋우는 낙주(樂酒)로서 만이 아니라 기운을 북돋우는 약주(藥酒)로서의 기능도 높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우리의 술들이 전국 도처에 얼마든지 있지만, 대중의 관심과 흥미가 없는 이상 그 술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할 수가 없다. 하나의 전통을 잃는 것은 그 속에 깃든 철학과 사상을 함께 잃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술의 가치를 알리고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우리 술 기행'을 연재해 왔다. 이번 호는 그 마지막으로, 제주(祭酒)로서 350여년의 전통을 지닌 경주 최씨 집안의 가양주 '경주 교동법주'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청주는 관혼상제와 같은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우리의 술이다. 일본 술인 사케가 우리나라에 정종(正宗)으로 알려져, 청주라고 하면 일본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부산에 청주 공장을 세운 어느 일본인이 그 청주 브랜드를 ‘정종’이라 이름 지은 것이 지금까지 청주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재물은 똥거름과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고 골고루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와 같은 가르침으로 유명한 경주 최씨 부잣집은 청주로 제사를 지낸다. 제주로 청주를 사용하는 집안은 반가중의 반가라는 말이 있는데, ‘사방 1백리 내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라는 말이 가훈으로 전해져 올만큼 경주 최씨 부잣집은 양반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던 집안이다. 최씨 부잣집이 제주로 사용하는 청주는 350여 년 전부터 전수되어온 비법으로 빚는 전통찹쌀청주로, 이름은 ‘경주 교동법주’이다. 황금빛을 띄는 품위있는 술빛에 어울리는 달콤하고 감미로운 술맛과, 그에 따르는 술향기를 볼 때 얼마 남지 않은 추석, 350년 전통 최씨 부자집의 교동 법주로 우리의 조상께 인사드리는 것을 고려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경주 교동법주
경주 교동 최씨 집안의 제주, 교동법주

술도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술 빚는 비법과 그 맛을 굳건하게 지켜 내려온 집안이 있다. 경주 최씨 부잣집이 그렇다. 조선 숙종, 경주 최씨 가문의 최국선은 궁궐에서 임금의 수랏상을 관리하는 사옹원 참봉직에 벼슬을 한 후 낙향해 술을 빚었다. 그 술의 비법은 그의 둘째 아들에게 전수되어 최씨 집안의 며느리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왔는데, 그것이 지금의 교동법주가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주세령, 주세법과 1965년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한국의 가양주 문화가 대부분 뿌리 뽑히는 동안 교동법주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술이 바로 제주였기 때문이다. 제사를 받들고 조상님에게 인사 올릴 술을 직접 빚기 위해 경주 최씨 집안은 그러한 밀주 단속의 시간동안 끈질기게 술을 빚고 비법을 전수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경주 교동법주는 1986년 우리나라 3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향토술 담기)로 지정되었고, 현재 상품화되어 판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주서 교동법주를 못 마시면 경주를 안간 것과 같다‘

경주 최씨 부잣집의 가훈 중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는 항목이 있다. 종가의 주요 기능 두 가지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이 하나로 엮이는 것과 같이, 교동법주도 제주로서의 역할이 주(主)였지만 손님으로 집을 찾는 이를 대접하는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해냈다.

그래서일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경주 가서 교동법주 맛을 보지 못했다면 경주에 가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경주에서의 교동법주의 명성은 실로 대단했다.

교동법주가 나가는 주안상의 안주로는 북어포부림, 다식 등이다. 북어포부림은 북어를 아주 잘게 찢어 양념한 것이고 다식은 쌀, 송화, 깨 등을 갈아 만든 한과로 맑고 진한 향이 나는 교동법주와 조화를 이룬다.

경주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지 15분 만에 도착한 경주 교동에서, 기자는 교동법주 한 병을 구입했다.

재래식 방법으로 빚어 하루 2~30병밖에 만들지 못해

 교동법주의 원래 이름은 경주법주였다. 그러나 모 소주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하며 ‘경주법주’로 상표 등록하는 바람에 제조지의 지명을 따 ‘경주 교동법주’로 짓게 된다. 둘의 비슷한 이름 때문에 흔히들 경주법주와 경주 교동법주를 같은 술인 양, 혹은 비슷한 술인 양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재래식 방법으로 항아리에 술을 익히는 교동법주는 현대적인 기계식 설비를 갖추고서 술을 만드는 경주법주와 그 맛에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교동법주의 경우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만드는 데다 어떠한 화학 처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술, 즉 생주(生酒)라고 불리운다. 우리밀로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빚어진다.

찹쌀죽에 누룩을 섞어 발효해 밑술을 만든 뒤, 거기에 찹쌀 고두밥과 물을 첨가해 본술을 만든다. 그 뒤 용수를 박아 거른 술을 베보자기에 다시 걸러 여과한 뒤 한 달 여간 더 숙성시키는 등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시간이 지나야 교동법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술이 나오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100일이 넘기 때문에 교동법주는 백일주라고도 불리운다. 그래서 1인 구매량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만큼이나 앞으로도 술맛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또한 기능보유자 최경 씨의 아들 최홍석 씨는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아내와 함께 교동법주 제조법을 배우는 등 교동법주의 대를 잇고 있으니, 앞으로도 변함 없는 술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맑은 황금색이 감돌기 때문에, 유리잔에 마시면 그 색채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구입 문의:054-772-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