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리하르트 슈트라우스,철학을 노래하다.
[음악칼럼]리하르트 슈트라우스,철학을 노래하다.
  • 정현구
  • 승인 2014.06.0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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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뮌헨 궁정 오페라 극장의 호른 주자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 Josef Strauss, 1822~1905)의 아들로 4세 때부터 정규 음악 교육을 받고, 6세 무렵부터 궁정 악장 마이어(Friedrich Wilhelm Meyer)에게 작곡과 이론을 배웠다.

1881년 17세에 <교향곡 제1번>을 초연하고 이듬해에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표하면서 작곡가로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양친의 의향에 따라 이 해부터 뮌헨 대학에 들어가 철학·미학·문학사를 청강했다. 그 후 대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인정받고, 그 관현악단을 위해 <13 취주 악기를 위한 모음곡 Suite f?r 13 Bl?serinstrumente>(1884)을 쓰고 스스로 연주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는 평생 지휘 활동을 계속해 간다. 각지의 궁정 극장에 근무한 뒤, 1889년(25세)부터는 바이마르 궁정 극장의 제1악장이 되고 1895년까지 재임했다.

이 무렵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의 약 20년간은 그에게 있어 가장 수확이 많은 활동기로서 <살로메 Salome>(1905)와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1910)를 비롯한 중요한 악극,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189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1896), <영웅의 생애 Ein Heldenleben>(1898) 등의 교향시와 <가정교향곡 Sinfonia domestica>(1903), 그리고 실내악곡과 많은 가곡을 써냈다.

또한 이 동안에는 연주 여행도 활발해서 그 범위는 독일이나 유럽의 각지는 물론, 러시아·미국에까지 달하고 있었다. 제1차 대전 후는 독일의 정치 정세도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1932년(68세) 나치스가 정권을 잡은 무렵에는 빈 오페라 극장 지휘자의 지위에 있었으며, 정부로부터 우대를 받아 후에 음악국 총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나치스의 유태인 배척 운동에 비협조적인 데다가 유태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대본에 의해 희극 <말없는 여자 Die schweigsame Frau>(1935)를 쓰기도 해서 당국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되고 그 때문에 총재를 그만두고 산장에 은둔하는 생활을 했지만 자작의 지휘 활동은 계속했다.

1945년(81세) 독일은 패배하고 이 당시 슈트라우스는 스위스에 이주했으나, 나치스 협력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고 결국은 무죄로 석방된 바 있다. 이후는 약간의 지휘 활동은 제외하고 조용한 여생을 보내다가 1949년 85세의 생애를 마쳤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극히 정력적인 활동가였으며, 그 음악도 또한 다면적인 작풍을 보였는데, 특정한 주의나 주장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예술가라기보다는 장인(匠人)이라고 평가된 적도 있을 정도로 새로운 기법은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노력한 음악가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많은 음악가의 영향을 받았는데 바그너의 악극과 관현악법을 계승하는 한편, 리스트풍의 교향시를 확충해서 낭만주의 음악에 최후의 꽃을 피우게 한 점이 슈트라우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200곡 이상의 가곡의 창작으로 인해 근대 독일 가곡사에서의 그의 공적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19세기 독일에서는 표제음악의 대표적인 장르인 ‘교향시(symphonic poem)’가 나타났는데, 이는 교향곡(symphony)과 시(poem)의 합성어로 일종의 ‘시적인 교향곡’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악장으로 되어있지 않고 단악장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교향곡과 조금 다른 점이다. 교향시에선 시뿐만 아니라 어떤 철학이나 사상, 전설 등 다양한 소재가 관련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경우 니체의 철학을 음악에 담아낸 교향시이다. 이 곡의 서주는 어둠을 상징하는 오르간의 저음과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로 시작해서 마치 해가 떠오르는 듯한 트럼펫 연주로 이어진다.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음악을 들어보면 별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일출’이나 ‘문명의 탄생’과 같은 이미지가 절로 떠오른다.

아마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그의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서 원시 인류가 도구를 발명하는 장면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를 사용한 것도 이 음악이 전해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오르간의 어두운 지속음 위로 떠오르듯 조용히 시작했다가 반복될수록 더 크고 강력하게 울리는 금관과 팀파니의 난타, 그리고 그 절정에서 뻗어 나가는 찬란한 화음 속에 포효하는 인간. 이 인상적인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부이다.

슈트라우스는 조숙한 천재였다. 그보다 네 살 많았던 말러가 오랫동안 그의 작품에 대한 몰이해와 맞서 싸워야 했던 것과는 달리, 슈트라우스는 처음부터 눈부신 속도로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고 있었던 1896년 당시 그의 명성과 창작력은 이미 정점에 달해 있었다.

1895~98년 사이에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돈 키호테>, <영웅의 생애>가 잇달아 나왔다. 이들은 모두 교향시였으며, 이 가운데서도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웅대하고도 풍부한 악상과 치밀한 묘사력, 탁월한 관현악 기법으로 이 장르의 최대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장대한 철학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뒤로 이 작품에 기초한 교향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곡은 1896년 2월에 착수되어 8월에 완성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이 곡은 처음에 찬사만큼이나 비난도 많이 받았다. 당시까지는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철학의 음악화’를 시도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대해 슈트라우스는 “나는 철학적인 음악을 쓰려 한 것이 아니며,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가는 모습을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자유롭게 확대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교향시에는 여덟 개의 작은 표제가 붙어 있으며, 이들 각각은 니체의 철학시에 대응하지만 굳이 해당 대목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책 자체를 읽지 않았더라도 곡을 감상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물론 알면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만 이 곡에서는 자연을 나타내는 C장조 및 C단조와, 조성 체계상으로는 여기서 가장 멀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음으로 가까이 있는 B장조 및 B단조가 서로 대립하며 발전해 간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두는 것은 좋을 것이다.

이 곡은 C장조 4/4박자로 시작한다. 서주 부분에는 표제가 달려 있지 않지만 니체 작품과 관련하여 ‘일출’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이 곡에서는 첫머리지만 니체 철학시에서는 맨 마지막 장면에 해당한다. 오르간의 지속음 위로 트럼펫이 ‘자연의 주제’를 연주하고, TV에서도 많이 들어보았을 이 주제가 힘찬 팡파르로 이어졌다가 잠잠해진 뒤 ‘후세 사람들에 대하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저음현이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상징하는 ‘동경의 주제’를 노래한다.

이외에도 신앙심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선율을 비롯해 다양한 동기가 등장하면서 일단 클라이맥스를 형성한 뒤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로 넘어간다. 화사한 느낌으로 시작했다가 다른 동기들이 가세하면서 복잡하게 발전해가며, 템포가 급류를 타듯 빨라지면서 무겁고 밀도 높은 악상과 더불어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현 위주의 새로운 주제가 중간에 등장해 관능적이고 애절한 노래를 들려준 뒤, ‘매장의 노래’로 넘어가 ‘동경의 주제’가 목관을 중심으로 한층 더 애수 띤 형태로 제시된다.

악상이 가라앉아 ‘과학에 대하여’로 넘어가면, 어둡고 불길한 선율로 시작해 다양한 악상이 얽히는 가운데 까다로운 조성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기교적인 푸가가 전개된다. 갑자기 악상이 일변해 템포가 급박해지면서 ‘병이 치유되는 자’가 시작되는데, 장대하고 입체적인 짜임새를 지닌 이 대목이야말로 전곡 가운데 가장 큰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관현악 총주가 ‘자연의 주제’를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포르티시모로 연주한 뒤 침묵에 빠지고는 다시 어둠 속에서 꾸물거리며 일어나듯 악상이 이어진다. 그러나 곧 명랑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로 바뀌며, 트럼펫이 ‘자연의 동기’를 조용히 되풀이하면서 ‘춤의 노래’가 시작된다.

이전에 제시된 여러 동기가 왈츠 리듬에 맞춰 변형된 채 재등장하며, 그 가운데서도 호른의 은은한 독주 ‘밤의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이 주제가 기존의 여러 주제와 맞물려 발전한 뒤 악상이 갑자기 힘을 얻어 가파르게 고조된 뒤 종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바로 이 클라이맥스가 마지막 대목인 ‘밤의 나그네의 노래’로, 이제 음악은 길고 완만한 하강을 거쳐 B장조와 C장조가 엇갈리면서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대립을 암시한 뒤 C장조의 저음으로 무겁게 끝난다.

“이것은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이 시작된다. 솟아올라라, 솟아올라라, 너, 위대한 정오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그의 동굴을 떠났다. 컴컴한 산 뒤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불타는 모습으로 늠름하게.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얽어매고 있던 마지막 굴레인 ‘연민’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나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