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스트리트 드라마’ 연작에 나타난 연극적 파노라마의 양태들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스트리트 드라마’ 연작에 나타난 연극적 파노라마의 양태들
  • 윤진섭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4.11.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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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쉰스터의 사진 작업은 맨 먼저 장소 헌팅에서 비롯된다. 사진에서 보는 무대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 필수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대가 정해지면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길을 지나가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쉰스터가 작성한 작업노트를 보면 ‘조형적’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그가 조형성의 측면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사진작업을 ‘스트리트 드라마’라고 부른다.

 쉰스터가 자신의 사진작업을 가리켜 ‘스트리트 드라마’라고 부르는 까닭은 작품 제작의 성격이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건의 실제성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는 퍼포먼스처럼, 그의 작업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전개가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도시의 거리나 공원, 미술관, 육교, 고궁의 담장, 경찰서 등 특정한 장소를 배경 삼아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앞을 지나가는 평범한 행인들의 모습을 담는 작업은 그 자체로서는 특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관객이 그의 작품을 피상적으로 바라봤을 때 평범한 거리의 스냅 사진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사진 작업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을 알고 이에 접근한다면, 그의 작품이 기존의 연출된 사진작품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수천 명의 벌거벗은 남녀를 공공장소에 모아놓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스펜서 튜닉이나, 선정적으로 분장한 여자 모델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경우 작위적으로 연출된 느낌을 주나, 쉰스터의 작업은 매우 자연스럽고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쉰스터가 자신의 작업을 가리켜 스스로 ‘드라마’라고 부를 때 그것은 하나의 역설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왜 그는 구지 자신의 작업을 ‘스트리트 드라마’라고 부를까?

 <계급(The Class)>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준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의 웅장한 건물 앞에서 촬영한 쉰스터의 이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처럼 장대한 느낌을 준다. 그는 이 작품을 촬영할 때 제작과정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갖지 않고 시작했다. 단지 어떤 형식으로 가져갈 것인가 하는 점만 염두에 두며 구체적인 구상은 촬영이 끝난 후에 비롯되었다. 이 작품은 세 개의 층위로 구성돼 있는데 맨 위는 상류층, 중간은 중산층, 맨 아래는 하류층으로 설정돼 있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관객이 보는 사진 작품의 현 위치에서 한 순간에 찍힌 것이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지만 그 중에서 선별된 사람들만이 컴퓨터 합성 과정을 거쳐 남게 된 것이다. 그는 수많은 대상인물들 중에서 사진에 쓸 인물을 고르는 과정을 오디션과 캐스팅이란 용어로, 미쟝센에서 해당하는 무대 연출을 ‘구성’이란 말로 특수하게 부르길 즐겨한다. 그는 또한 “드라마는 단순히 사건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쉰스터 자신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연출자의 입장에 서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일상적 사건을 담은 자신의 작업이 단순한 선형적 배열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리좀적 배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는데, 일종의 포스트 모던적 관점을 보여준다. 

 쉰스터는 일련의 사진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명징한 리얼리티에 뿌리박고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진을 촬영하는 기간 동안 그 장소를 지나간 사람들이다. 이는 곧 다른 곳에서 촬영된 인물을 합성한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작가의 기민한 상상력을 통해 현실적인 인물들이 취사선택돼 합성을 거쳐 화면위에서 구성내지는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중년간지>는 경찰서 정문 앞을 서성이거나 지나가는 중, 노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중년남성의 묵직한 카리스마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쉰스터의 작품이 일상적 풍경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위성을 알아챌 수 있다. 가령, <Rush of Women>이란 작품은 현대식 고층건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육교를 무대로 한 것인데, 육교 아래로는 일단의 여성들이, 위로는 남성들이 앞을 향해 일제히 걸어가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활기차게 개성있게 달려오는 여자들과 무미건조하게 퇴장하는 남자들의 대비를 통해 이 시대의 문화적, 정서적, 심리적 주도권을 여자들이 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처럼 쉰스터의 ‘스트리트 드라마’는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며 연출력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스타일의 작업방식이다. 각 작품마다 1000여 점의 사진을 찍고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인물을 골라 작업의 컨셉트에 맞춰 배치한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쉰스터의 작품은 그만큼 공력이 많이 들며, 본인의 말처럼 “오디션은 민주적이되 캐스팅은 배타적인”, 자의식이 강한 작품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지닌 쉰스터의 독창성은 순식간에 그를 신예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제 사진 공모전인 ‘Fomat’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Troika Exposure Award’를 수상했고, 2011년에는 제33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말해주듯이 기존의 상투적인 연출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진의 형식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