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아직도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
[테마기획]아직도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 승인 2015.02.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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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새해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본지는 설날을 맞아 민속학자인 심우성 선생의 세시풍속에 관한 글을 준비했다. 설의 유래와 설 풍속, 민속놀이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이 글을 쓰신 심우성 선생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칼럼니스트로서 ▲1954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1960 민속극회 남사당 설립, 대표 ▲1963 국립영화제작소 대한뉴스 아나운서 ▲1966 한국민속극연구소 설립 ▲1970 서라벌예대ㆍ서울예전ㆍ덕성여대ㆍ중앙대ㆍ한양대 등 민속학, 연극사, 인형극 강의 ▲1980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위원 ▲1985년 아시아1인극협회 창립, 대표 ▲1988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지도위원 ▲1993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고문 ▲1994 민학회 회장 ▲1996 공주민속극박물관 관장 ▲2000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2002 문화재청 무형문화재분과 위원장 ▲2003 중국 연변대학교 민족학연구원 객좌교수를 역임, 현재 한국민속극연구소장이자 문화재청 감정위원을 맡고있다.

1979년 서울특별시 문화상과  2003년 대통령 보관문화 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저서로는 ▲통일아리랑 ▲무형문화재총람 ▲남사당패연구 ▲한국의 민속극 ▲마당극연희본 ▲민속문화와 민중의식 ▲우리나라 탈 ▲우리나라 인형 ▲민속문화론서설 ▲우리나라 민속놀이 ▲옷본 ▲전통문화를 찾아서 ▲전통문화 길잡이 ▲굿·춤·소리를 찾아서 등이 있다.

또 그는 ▲쌍두아 ▲문 ▲남도 들노래 ▲새야 새야 ▲판문점 별신굿 ▲결혼굿 ▲거창 별신굿 ▲녹두장군 오셨네 ▲일본군 위안부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4·3의 고개를 넘어간다 등의 1인극 작품도 창작했다.

'설'  뜻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민속사학자
'설' 이란 한 해의 시작을 말한다. 그리고 ‘설날’이란 초하루를 지칭하는 말이요, ‘설’하면 ‘대보름’까지 15일 간을 뜻한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새해의 첫머리 15일 간을 명절로 삼아 첫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올리며 보름동안 갖가지 민속놀이를 즐겼던 것이다.

요즈음 풍속으로 하면 보름씩이나 놀다니 너무하지 않았는가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월요일이니 일요일이니 하는 요일 단위가 아니라 1년에 몇 번 있는 명절에만 놀았음을 알아야 한다.

그 옛날 마을의 촌장(村長)께서는 공동체의 평온을 비는 대동소지(大同燒紙)를 하늘 높이 태워 날려 보냈다. 당굿을 마친 마을 사람들은 총총히 집으로 돌아가 정성껏 조상께 차례를 올린다. 공동체의 기원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사사로운 개인 차례의식(茶禮儀式)을 갖는다.

차례를 마치면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식구들끼리 차례음식을 둘러 앉아 먹는데 이것을 음복(飮福)이라 했다. 한 평화로운 마을의 ‘설 풍속’을 다음에 적어본다.

▲ 대동소지

「......해가 뜨기 전 마을사람들은 당나무(堂木)가 서 있는 서낭당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한 공동체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는 당굿(마을제사)을 올리기 위해서이다. 떠오르는 밝은 햇살을 우러르며 무사하고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자리이다.

간략한 의식 끝에 집집의 가장(家長)들은 집안의 평온을 위하여 소지(燒紙)를 올리고 아침 후에는 마을 어른께로 빠짐없이 세배를 드림은 물론이요, 집집마다 서로 ‘반기’하는 풍속을 빼 놓을 수 없다.」

▲ 24절기 상차림

‘반기’란 제사음식을 나누는 것인데 이때 음식을 담는 나무로 된 접시를 ‘반기목판’이라 했다. 사방 한 뼘 크기의 반기 목판에 차례 음식을 예쁘게 담아 집집으로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꼭 ‘반기목판’이 아니라도 좋으니 올 설에는 플라스틱 접시에라도 반기를 했으면 좋겠다.

이처럼 따사로운 설 풍속과 아주 잘 어울렸던 민속놀이가 많았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먼저 ‘설’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의 3대 명절을 적는다. ‘설’을 비롯하여 ‘단오’, ‘한가위’를 꼽았었다.

그런데 민속놀이의 종류로는 단연 ‘설’에 많았고 규모도 컸었다. 윷놀이, 널뛰기, 비석차기, 썰매타기, 연날리기, 줄다리기, 고싸움, 차전놀이 등. 이 가운데서 ‘연날리기’와 ‘줄다리기’를 소개한다.

▲ 세배

◇연날리기

우리의 연은 ‘가오리연’과 ‘방패연’이 주종인데 ‘가오리’는 어린이 몫이고 ‘방패’는 어린이에서 청장년까지 거의 함께 즐겼다. 이 밖에도 갖가지 모양새와 기능을 발휘하는 ‘창작연’도 있다. 연날리기의 종류는 ‘높이 띄우기’, 재주부리기‘, 끊어먹기’등으로 나뉜다.

드넓은 겨울하늘에 한 어린이가 ‘방패연’으로 ‘재주부리기’를 하고 있다. 동그라미도 그리고 세모꼴도 그리고 엄마의 얼굴, 짝꿍의 얼굴도 그린다. 비둘기 가슴마냥 자그마한 어린이의 가슴이 하늘만큼이나 넓어진다.

▲ 경주 연날리기대회

‘끊어먹기’는 두 사람이 겨뤄 상대방의 연실을 누가 먼저 끊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연실에 사기가루나 유리가루를 아교에 반죽하여 곱게 먹이니 날카롭기가 칼날과 같다.

이 날카로운 실을 서로 비비다 보면 어느 한쪽인가 약한 편의 실이 끊어지면서 연은 하늘 멀리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게 웬일인가? 상대를 끊어 이긴 편이 진 편에게 한 턱을 내니 말이다. 그 연유인즉 끊어져 날아간 연은 이긴 사람의 새해 운수대통을 기원키 위하여 멀고 먼 하늘나라로 날아갔다는 따사로운 마음씨에서란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진편 이긴 편이 함께 즐거운 격조 높은 놀이에서으 승부관이다. 올 겨울에는 직접 연을 만들어 너도나도 하늘 높이 마음의 그림을 그려보자.

▲ 제주 당굿

◇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한강’이남, 주로 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아주 규모가 큰 민속놀이이다. 현재 경상남도 창녕지방의 ‘영산 줄다리기’와 충청남도 당진 지방의 ‘기지시 줄다리기’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아랫마을 윗마을 또는 동편 서편으로 나뉘어 예로부터 정해진 ‘암’, ‘수’에 ‘암줄‘, ’숫줄‘을 꼰다. 소용되는 짚도 집집에서 추념을 하는 것이니 처음부터 온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놀이이다.

정월 대보름 하루 전 한 쪽이 5-미터도 넘는 ‘암줄’과 ‘숫줄’을 비녀목이란 굵은 ‘상나무’로 연결시키는 것을 ‘결혼시킨다’고 하는데 이 단계로부터 본격적인 놀이로 보아야 한다. 대보름 아침, 마을 사람들은 징소리를 신호로 겨루기를 시작한다.

▲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의 한 장면

처음에는 힘없이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리기도 한다. 때로는 일부러 힘껏 당기던 편이 엉덩방아를 찧기도 한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양편의 힘이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우지끈 맞서는 순간이 있다.

두 개의 힘이 더 큰 하나의 힘으로 승화되는 찰나이다. 팔씨름을 할 때 서로의 힘이 비슷비슷하여 팽팽이 맞서는 순간과 같다. 바로 이 팽배의 희열을 만끽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토록 줄다리기는 계속된다.

갈라진 남과 북이 친선을 목적으로 축구를 한다거나 권투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전통적인 우리의 줄다리기판을 펼쳤으면 싶다. 그의 깊은 내력도 알지 못하면서 상대를 끌어당기기만 하면 된다는 경망스러운 ‘왜식줄다리기’는 하루 속히 버려야 하겠다.

우리의 전통적인 줄다리기에서도 결국 끝에는 승부가 나기 마련인데 이긴 편 마을은 ‘논농사’가 잘되고 진 편 마을은 ‘밭농사’  잘된다니 개울하나 사이에 다 잘되자는 뜻임이 분명하다.

을미(乙未)년 새해를 맞아 우리 함께 ‘연’도 날리고 ‘줄다리기’도 하자. 남과 북이 얼싸안는---. 우리 마음 가득 고매하고도 깔끔한 새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