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0.6-천수호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詩>0.6-천수호
  • 공광규 시인
  • 승인 2015.06.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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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천수호(1964~)

남편 안경을 빌렸다
0.6과 0.6
시력이 같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네온등이 훅 다가오고
사력을 다해 달려가는 자동차 전화번호가
당겨져 온다
남편과 내가 같은 시력으로
책을 보고 영화를 볼 동안
우리 집에서 벌어진 것들이 있다
옥외 광고탑의 실시간 뉴스와
농짝만한 경비실에서 고개 푹 숙이고 먹는
경비원의 반찬 가짓수
강아지가 실례한 통로의 배설물
사방 천지 0.6의 바리케이트다
가까워도 저지당하는 것들이 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대개 얼굴 외형이나 성격을 말한다. 그러나 시 속의 이 부부는 시력까지 닮았다. 화자는 남편의 안경을 빌려 쓰면서 시력이 닮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환하게 네온등이나 달리는 자동차번호판을 본다. 그러면서 시인은 0.6이라는 공통시력을 다른 사회적 방식으로 바꾸어 확장시킨다.시력 안에 들어와 있어도 보지 못하면 바리케이트 밖에 있는 사물이다. 시인은 시력을 물질에서 정신으로 다시 옮겨놓는 방법의 묘미를 보여준다.(공광규 시인)

*공광규 시인:1986년 등단. 시집 <담장을 허물다> 등 다수 시집 출간. 2009년 윤동주문학상, 2011년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