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기행-133]여성생활사박물관-남한강에서 만난, 우리 아낙네들의 역사
[박물관기행-133]여성생활사박물관-남한강에서 만난, 우리 아낙네들의 역사
  • 동동 전통문화예술연구소
  • 승인 2015.06.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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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생활사밗물관 정문.
강바닥의 모래만큼 켜켜이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나르는 남한강은 여주를 지나면서 보다 입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신륵사와 명성황후 생가를 지나기 전, 그 물줄기는 마침내 여인들의 긴 치마폭을 잡고 잠시 멈춰 선다. 한때는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메웠을 법한 시골마을의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 이제는 우리 여인들의 생활사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여성생활사박물관(관장 이민정)은 과거의 화려함을 감춘 채, 흑백사진 같은 차분함으로 현대와의 조우를 꿈꾸게 한다. 여성생활사박물관에서 시간은 없다. 손목시계를 대신하고 있는 휴대전화도 이곳에서는 시간을 붙잡아놓은 듯 칭얼댐을 멈추고 점잖다. 유물에 숨은 시간의 흔적들은 여인의 손길과 만나 희로애락의 긴 역사가 된다. 실내화를 신고 마침내 복도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생활사박물관에 새로운 역사가 더해진다.

물동이를 이고 있는 어린이의 흑백사진, 비를 피할 요량으로 만들어 썼을 커다란 모자, 색이 고은 보자기…. 벽으로도 시간이 흐른 듯 그곳에서 세월의 손때가 묻은 귀중한 유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간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여성생활사밗물관 전시장 현황판.
춘거불사하春去不似夏…. 봄은 가직 가지 않았는데 자꾸 여름을 생각하게 할 만큼 더위가   말을 거는 때다.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324-20.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달려 여주의 강원도라고 불리는 강천면에서도 골짜기에 속하는 굴암리 초입에 들어서면 오래된 폐교가 이방인을 맞는다. 개구쟁이들이 조잘거리며 들락날락하였을 입구에는 정문 대신 ‘여성생활사박물관’이라는 아치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제법 넓은 운동장을 지나 교사校舍로 들어가는 계단에 오르면 이곳이 강천초등학교 강남분교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운동장을 걸으면 개똥벌레가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밟힌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제법 훤칠한 소나무와 밤나무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아이들 수가 줄어 문을 닫은 폐교를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점심을 먹고 난 뒤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수업시간의 끝을 알려주던 반가운 학교종과 복도 끝에 자리한 풍금까지… 여주에는 우리의 추억이 묻은 시간이 멈춰버린 박물관이 있었다.

‘여성생활사박물관’이란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굳이 역사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대는 분명 모계사회였을 터이다. 밖에 나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싸워야 했던 아버지들의 치열한 세상살이가 있었다면, 그 반쪽은 분명 어머니들의 역사가 흐르고 있지 않았을까. 여성생활사는 말 그대로 우리네 어머니, 또는 이 땅의 아낙네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성생활사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 건 지난 2001년 6월. 같은 해 7월에는 부설 천연염색연구소도 개관했다. 박물관 내부는 어떠한 얼개로 이루어졌을까. 여염집 대문 형태로 개조된 문을 열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던 발소리들이 남아 있음직한 복도를 맨발로 들어가니 1층 교무실이 있던 공간이 ‘전통염색실’이란 푯말을 달고 이방인을 맞았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은은하고 얌전한 빛을 내는 천연의 색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자연을 듬뿍 머금은 색에 사람의 솜씨가 더해져 그 색에서 향이 나는 듯하다.

그 옆 교실들은 작품전시실과 솜씨방 등이다. 염색재료전과 야생화사진전 등이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택 쪽으로는 다도교실이 마련되어 있다. 본관 밖으로 나와 콘크리트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오르면 일반 유물과 아동 의상, 고전 의상 및 장신구, 가구 및 생활용품 등이 오목조목하게 이방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담한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 여성생활사밗물관 1층 상설전시실.
1층 전시장 왼쪽 전통 차를 마시는 다도교실로 들어섰다. 전통 다기들부터 시작해 한국 작가들의 요즘 작품과 외국의 다기들까지 전시돼 있다. 이곳에선 다도 체험과 다도 교육 등도 이뤄진단다. 광목천을 교직하듯 짜 내려간 생활용품들......, 여성생활사와 관련된 전시물들은 2층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 

옛날 복식, 온갖 반닫이와 삼층장, 옷장, 물레나 베틀, 가마, 요강단지, 골무, 비녀, 화잠, 화관, 다리미, 댕기, 곱돌 주전자와 곱돌 약 멧돌, 도포 매듭, 말이나 되나 홉 등의 단위로 곡식을 퍼주던 용기, 오리 주둥이처럼 생긴 목이 특색인 똥장군, 옛날 어머니들이 바느질할 때 팔목에 끼던 토시, 놋쇠그릇, 조롱이, 옹기, 옛날 화장대, 방망이, 도롱이, 징,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들이 신었던 가죽으로 만들어진 운혜......., 

전시물들은 보존 상태도 좋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짙은 밤색 목재가 깔려 있고 천장은 광목천을 교직하듯 엇갈려 짜 올렸다.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다. 이쯤 되면 서울 중앙통 박물관과 견주어도 만만찮은 미적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 여성생활사밗물관 2층 상설전시실.
전시실에서 1930년대 결혼식 사진과 한복을 기증한 기증자의 친필 편지가 눈길을 끈다. 편지에는 1913년에 태어난 기증자 어머니의 일생의 기록과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박물관을 다 돌아본 뒤에는 황토염색도 체험할 수도 있다. 여성생활사박물관 입구 오른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주위로는 사람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돌로 자리가 조성되어 있다. 공연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객석이 되는 것이다. 여름방학이면 이곳에서 작은 국악 무대도 마련된다. 여주에는 한강의 긴 세월만큼이나 생명력으로 우리역사를 지탱해온 여인들의 흔적이 있다. 그곳에 여성생활사박물관이 있다.

여성생활사박물관=(위치 :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324-20, 문의_031-882-8100) ◆‘동동’전통문화예술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