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7]보스톤발레단 발레리나 한서혜
[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7]보스톤발레단 발레리나 한서혜
  • 박자윤 기자
  • 승인 2015.07.31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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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촉망받는 무용수, 보스턴발레단의 군무로 다시 시작해 3년만에 솔리스트로 승급되기까지

 

▲발레리나 한서혜

무대 위에서 더 빛이 나는 발레리나 한서혜. 그녀는 행복을 주는 무용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발레 전공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으로 1995년 만 7살의 나이에 처음 발레에 입문한 후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199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하 한예종)에서 김선희 교수에게 사제지간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쌓으며 8년 동안의 영재 교육원기관의 모든 교육과정을 수료하였다.

예원학교 졸업 그리고 서울예술고등학교 입학 후 3개월 뒤 2005년 만 16살의 나이로 다시 한예종 영재입학과 동시에 2005년 스위스 로잔국제콩쿠르에서 장학금 수상을 하였고, 세계적인 발레학교인 러시아 바가노바 고학년과정을 수료하였다.

남다른 힘과 자신만의 작품해석능력으로 특별한 춤을 보여주며 2008년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받았고, 세계적인 무용수들을 배출한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에서 은상을 받았다. 2009년 한예종 졸업과 동시에 유니버설발레단에 특채로 입단하며 본격적인 전문 무용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작품인 심청과 발레 대표작들인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호두까기 인형, 라바야데르 등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2010년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에 출연한 뒤 속칭 ‘얼짱 발레리나’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었고 그 후 연예계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모든 관심을 뒤로하고 무용에만 땀을 쏟았으며, 2012년 5월 보스턴 국제 콩쿠르에서 금상 수상 하였다. 그 당시 심사로 왔던 보스턴 발레단의 단장 미코 니시는(Miko Nisinnen)은 한서혜에게 콩쿠르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보스턴발레단과의 계약을 제안했다. 그녀는 미국행을 택했고, 보스턴발레단 입단하여 코르드 (군무) 단원으로 시작해 그다음 해에는 한 단계 위인 세컨드 솔리스트, 그다음 해에 또 한 단계 위인 솔리스트로 승급한 뒤 많은 작품에서 주요인물을 연기하며 굉장히 특별한 동양 무용수로 인정받고 있다. 2014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무용 잡지인 댄스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하며 눈여겨봐야 할 무용수 25명 안에 지목됐으며 현재 보스턴 발레단에서 애국하는 마음으로 동양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시도하지 않은 장르의 춤들을 번은 접해보며 배워보고 싶은 마음으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미국으로 향해”

▲한예종 20주년 기념 공연

특채로 들어가 활동할 만큼 주목도 많이 받고 애착도 많이 갔을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바로 보스턴 발레단에 둥지를 튼다는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같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요?

한예종 졸업 후 바로 입단하게 된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역시 군무부터 시작해 솔리스트로 춤을 추며 3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학교에서와는 또 다른 경험과 배움이 있었습니다. 15년을 넘게 발레를 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배움에는 끝도 한계도 없다고 느꼈었고 아직 한국에서는 많이 시도 하지 않던 현대발레들을 인터넷을 통해, 외국 콩쿠르들을 통해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미국에 있는 대표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 (George Balanchine)의 작품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시도하지 않은 장르의 춤을 꼭 한번은 접해보며 배워보고 싶은 마음으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보스턴에 국제발레콩쿠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참가하게 되었고, 너무나 운이 좋게도 금상을 받으며 그곳의 심사위원이었던 보스턴 발레단의 단장 ‘미코 니시는’을 만나 유니버설발레단을 그만둔 한 달 뒤에 보스턴 발레단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오디션을 봐야만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지만, 오디션을 보지 않고 아무 조건 없이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와 뜻밖의 조건에 꿈같은 이적을 하게 되었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홀로 고향을 떠나 머나먼 땅 미국 보스턴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보스턴 발레단, 한국인 없는 곳에서, 가장 낮은 승급인 코르드 발레 (군무) 시작해 입단한지 1 후에는 세컨드 솔리스트 인정받았으며, 바로 다음 년도 후에는 솔리스트로서 승급되어 활동하시는데에는 많은 노력 외에도 땀과 눈물이 있었을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한가지로 요약하기에는 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낯선 이국땅에 홀로 오게 되어 완전히 다른 언어, 인간관계, 문화 차이 등등이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해결해야 하는 높은 장벽들로 다가왔고 그 와중에 발레단입단 첫해인 2013년 12월 예상치 못한 호두까기인형의 주인공인 클라라 역할을 받게 되었지만 무대 위의 연습 도중 발뒤꿈치뼈의 골절로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온 순간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고 급하게 수술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공연을 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하였을 때 보스턴 발레단 단장, 미코 니시는은 걱정하지 말고 수술을 잘 받고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겠다며 격려의 말과 수술을 권하며 저를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그때 만일 단장님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그 상황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수술 후 그 어느 때 보다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여 3주라는 빠른 기간의 회복 후 다시 복귀, 전보다 더 열심히 발레를 하여 빠른 승급을 이룰 수 있었던 전화위복의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백조의 호수 주인공을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처음 맡았던 때가 최고의 경험”

▲보스턴 발래단의 <백조의 호수 '헝가리안 댄스'> 중 한 장면

지난 15년간의 발레 삶에 있어, 유니버설발레단, 보스턴발레단을 비롯해 한서혜씨의 최고의 무대는 언제였나요?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백조의 호수 주인공을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처음으로 맡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지만,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주인공 역을 맡게 된 계기는 원래 초청 무용수로 오기로 하였던 여자무용수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제가 대역으로 3주 만에 연습하여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백조의 호수 전 막을 처음 해보는 무용수에게 3주는 아주 짧은 연습 기간이라고 들었습니다. 백조의 호수 전 막은 마법에 걸린 가녀린 공주 오데트와 오데트에게 마법을 건 악마 로트발트가 만들어낸 존재인 오딜, 1인 2역을 소화해내야 하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그런 전 막 작품을 갑작스럽게 연습하여 무대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너무나 꿈같은 일이었기에 최선을 다하여 연습하고 공연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당시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님께서는 매일매일 저에게 백조의 날갯짓과 연기를 가르쳐 주셨는데 하루는 비어있는 연습실이 없어 발레단 복도에서까지 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온몸이 아프고 고된 연습에 피로했지만, 단장님의 가르침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고 아직도 그때의 연습이 많이 도움되고 있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덕분에 만난 발레리나로 성장시켜주신 김선희 교수님은 나에게 다른 어머니”

한예종의 김선희 교수님을 비롯하여 예원학교, 서울예고까지 많은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중에서도 한서혜씨의 무용세계를 빛내준 최고의 선생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한서혜는 보스턴 발레단 입단 3년만에 솔리스트로 발탁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발레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발레전공을 하신 어머니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을 자주 접하며 보고자라 발레리나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스승이자 어머니께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여 전문교육 기관인 한예종 영재교육원에 만 8살에 오디션을 거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 발레를 배우다가 가족에게는 운전을 배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 맞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다른 교육기관을 알아보시다가 한예종의 영재교육원을 찾으셨습니다. (하하)

현재 한예종 무용원 원장으로 계신 김선희 교수님을 만나 13년이라는 교육과정을 거쳐 한예종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가르침을 주시며 지금까지도 제 멘토이자 스승님으로 계십니다. 8살 때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세상에서 제일 엄하고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한번은 레슨 도중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가 무서워 끝나길 기다리며 참다가 그만 실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괜찮다며 직접 걸레를 들고와다 닦으신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아직 그때를 기억하시며 가끔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교수님과의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교수님이 한국 발레계의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시느라 자녀를 늦게 보셨는데 만일 제때 아이를 갖으셨다면 자녀의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와 비슷할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덕분에 만난 발레리나로 성장시켜주신 김선희 교수님은 저에게 또 다른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발레를 배우는 동안 수많은 분을 사사하며 보석 같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어머니와 김선희 교수님, 한예종의 마가리타 리따 꿀릭, 블라드미르 킴 러시아 선생님이 계신 것 같습니다.

리따 선생님과 블라드미르 킴 선생님은 부부 발레 커플로 세계 최고의 발레단 러시아의 마린스키 발레단의 주역으로 계시다가 김선희 교수님께서 특별히 모셔온 선생님으로 제가 학생으로 있을 당시 많은 작품 지도를 해주셨는데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 무대 위에서 전문무용수로 춤출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가셔서 더는 한예종의 학생들이 리따선생님과 블라드미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오셔서 한예종 후배들이 다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워낙 활달한 성격과 호기심이 많은 탓에 언제나 사고뭉치였던 저를 지금의 위치까지 엄하게 인도하며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을 만나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스턴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2015~2016 시즌을 또다시 준비하고 계시는 한서혜씨! 앞으로 어떠한 '발레리나 한서혜' 기억이 되고 싶으신가?

발레리나가 꿈이어서 8살에 시작한 발레인생을 벌써 20년이 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에는 완벽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선이 없는 것처럼 끝없이 공연해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 항상 좌절도 하고 후회도 하고 가끔은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무대에 서는 이유는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희열과 관객들에게서 전해지는 감동 때문인 듯합니다. 단 한 번의 공연도 쉬웠던 적이 없었지만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그 순간의 감정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합니다. 제가 느끼는 그 행복함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춤출 때 가장 행복하고 사람들에게 그 행복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꿈이며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몸이 따라주는 이상 춤을 사랑하며 즐기며 출 것이고 끝없이 배워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훗날 기회가 된다면 제가 배웠든 교육과 받았든 사랑을 후배들에게도 전달하여 앞으로 한국 발레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