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영화제 '신성일' 회고전- '맨발의 청춘'
충무로영화제 '신성일' 회고전- '맨발의 청춘'
  • 임고운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09.09.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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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임스딘, 추억의 타임머신 속으로 데려가

한국영화사에 있어서 1960년대는 한국의 누벨바그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작품들을 영화화한 문예영화 부흥기의 정점이기도 했다.

당시 이미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신성일은 무비스타를 넘어선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서울은 여전히 불안하고, 가난하며, 알 수 없는 위협 속에서 전쟁 후유증을 떨쳐내지 못한 채 나약하고 허무한 감상에 휩싸여 있었다.

이것은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하릴없이 폼이나 잡으며 하루하루 취객들의 지갑이나 뒤지는, 그러나 속마음은 약하고 순수하기에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건달 도수’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전쟁 후의 세대들이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것은 마치 외교관의 딸인 요안나와 건달 도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계급대비를 보여줌으로써 비극적 결말을 부각시킨 것은 시대적 허무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맨발의 청춘’에서 자주 클로즈업되는 신성일의 우수에 잠긴, 반항아적인 모습은 한국의 제임스 딘 혹은 한국의 알랭 들롱으로 불리며 수많은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이제 반백의 할머니가 되어 신성일 회고전에서 ‘맨발의 청춘’을 다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쏟아지는 탄성과 웃음 소리는 이제껏 영화보기 풍경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영화 보는 내내 박수를 치고 눈물을 훔치며 대사에 추임새를 넣는 관객들은 어느새 추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건달 도수는 레이찰스의 포스터를 방에 붙이고 재즈 빅밴드의 음막이 흐르는 클럽에서 춤을 즐기는 멋쟁이이며, 사랑하는 요안나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두목 대신 옥살이를 결심하는 용기 있는 남자로서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오고 있다. 이별을 고하는 순간 그들은 함께 도주를 하고 밤새 고이 접은 종이학 두 마리를 허공에 매달아 둔 채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이 비극적 결말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의 희망 없는 내일에 대한 허무한 몸짓을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극적 결말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프랑스 영화가 있다. 1962년에 프랑수아 트뤼포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로맨스를 대표하는 고전이자 누벨바그의 상징이 되었다.

'줄 앤 짐’ 역시 세게대전 전후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허무하고 혼란스러운 청춘의 삶을 죽음으로 마감함으로써 ‘맨발의 청춘’처럼 시대적 기류를 같이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정신적 허탈감에 가득찬 전후세대의 모습은 착하지만 건달이 될 수밖에 없는 건달 도수의 모습인 동시에 30년간 한 여자를 두고 우정과 애정 혹은 증오 사이에서 방황하는 '줄 앤 짐'의 다름 아닌 모습이다.

또 다른 영화로는 루이지 코멘시니의 '부베의 연인'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마라는 돌발적인 사고로 살인을 하고 장기수로 복역 중인 첫사랑을 끝까지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시골처녀다. 이는 부잣집 딸이지만 순수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던지는 요안나와 일치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렇게 1960년대의 영화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순수, 반항, 허무와 혼란, 비극적 결말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는데 당시의 영화적 트렌드로 해석될 수 있다.

‘맨발의 청춘’이 상영된 1964년은 세계 영화사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한 해였는데 서스펜스의 백미라고 할 수있는데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주옥 같은 멜로디를 선보인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영화 ‘맨발의 청춘’은 시대의 절망적 분위기를 도수라는 인물로 상징, 표현하고 있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이 영화로 최고의 멜로스타가 된 신성일은 이후 시네아티스트로서의 화려한 삶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는 스타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그러나 배우 신성일의 위대함은 500여 편이 넘는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수 십년간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시대를 살아가는 배우였다는 점이다.

 아직도 신성일 하면 짧은 잠바를 걸친 청춘스타로 기억되는 것은 그 시대에 요구되었던 젊음의 표상을 그가 완벽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배우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영화 ‘맨발의 청춘’의 엔딩 장면을 보다가 "죽으면 안 돼!"를 연발하던 노인들이 그립다.

영화에 심취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다가는 극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21세기 한국의 영화보기 풍경은 삭막해져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임고운/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