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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7년차 커플의 초행의 시간들, 김대환 감독 '초행'
2018년 03월 13일 (화) 11:18:53 한상훈 영화연구가 press@sctoday.co.kr
   
▲한상훈 영화연구가

누구에게나 처음 가는 길은 두렵고 낯설다. 한번 가봤던 길이라면 길의 방향성을 이미 알고 있으며 주변 지형도 파악되어 있어 길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초행길은 길을 잘못 들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하며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마저 떠안게 된다. 김대환 감독의 <초행>은 7년 차 커플의 모습을 통해 초행의 시간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수현과 지영은 7년 차 동거 커플이다. 어느 날 수현은 수현의 형으로부터 아버지의 환갑 생신날에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는다. 지영은 생리가 멈춰서 임신을 의심하는 상황이며 대학원에 가야 하는 수현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수현과 지영은 인천에 있는 지영의 집과 삼척에 있는 수현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초행>은 언뜻 보면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지영 역의 김새벽과 수현 역의 조현철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고 거의 신 단위로만 컷을 나누고 있으며, 카메라는 지영과 수현이 직면하는 상황들을 차분하게 롱테이크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환 감독은 완성된 시나리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촬영을 할 때는 대부분의 대사를 배우들의 애드립에 의존해서 완성해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이 영화의 제작 과정도 그와 유사하게 현장에서 장면들을 즉흥적으로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획득된 현실감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초행>의 주인공들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 수현과 지영은 오랫동안 연애를 했고 지영이 임신을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지만 그들은 결혼을 망설이고 있다. 직장에서의 그들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지영은 종편 채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으나 정규직 전환이 불투명한 상황이고 수현은 미술학원의 강사로 오랫동안 일해 왔지만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갈등한다. 그들은 또한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이것 또한 그들의 불안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삶의 불안정성은 그들을 불안하게 하며 일상에 균열을 내도록 만든다. 

   
▲ 김대환 감독의 <초행> (사진=인디플러그)

<초행>은 결혼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 커플의 불안을 다루는데 이 영화의 형식은 이러한 불안이 잘 형상화될 수 있도록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구조화되어 있다. <초행>은 각 신이 자체로 완결된다기보다 급작스럽게 끝나버리고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삼척에서 지영과 수현의 어머니가 대화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지영과 수현의 어머니는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데 수현의 어머니는 지영에게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내비치면서 같이 살아보고 결혼하라고 말한다.

그때 지영은 수현의 어머니에게 같이 살아봤는데도 모르겠으면 어떻게 하냐고 질문하는데 수현의 어머니가 답을 하려는 찰나에 갑자기 외화면에서 수현의 형의 목소리가 들리고 상황은 종료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지영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다.

불안은 계속 되며 답변이 유보된 상태로 그녀는 그녀만의 답을 찾아야만 한다. 이밖에도 <초행>의 여러 신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 커플이 길을 잘 못 찾아서 헤매는 장면들이 있다. 이 영화는 크게 보면 인천과 삼척을 방문하는 여정인데 그때 주인공 커플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카메라는 자동차의 뒷자석에 위치해 그들의 뒷모습만을 보여주며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차가 이리저리 헤매거나 중간에 멈춰서거나 하는 물리적 시간들을 관객들도 함께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관객들은 주인공 커플이 마치 초행길을 가듯이 헤매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받게 되는 것이다. 수현이 주차해놓은 차가 사라져서 당황하며 차를 찾으러 돌아다닌다거나 주차해놓은 차에 불법딱지가 붙어있다거나 아무도 없는 식당 주변을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순간들도 주인공 커플의 행로가 순탄치 않음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또한 주인공 커플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사운드를 잘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천에 있는 지영의 집에서의 식사 장면을 들 수 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지영의 어머니는 결혼 얘기를 꺼내고 분위기는 서먹해진다.

지영은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말하지만 지영의 어머니는 말을 멈추지 않고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때 갑자기 외화면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난다. 수현이 핸드폰을 들고 와 통화 종료를 한 후 핸드폰을 식탁 위에 뒤집어놓는다. 그런데 지영과 지영의 어머니의 대화 사이로 다시 핸드폰 벨소리가 계속 들려와서 식사 자리를 보다 불편한 상황으로 만들고야 만다.

이밖에 수현이 아버지를 찾으러 갔을 때 텅빈 집에서 들려오는 빨래가 돌아가는 소리라던가 지영과 수현의 어머니가 결혼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외화면에서 들리는 물소리도 주인공 커플이 생경하고 불안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초행>은 7년차 커플의 불안한 심리를 그린다 (사진=인디플러그)

시종일관 지표가 없이 표류하는 듯한 인상을 주던 영화는 말미에 가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광화문 광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허구는 2016년의 촛불집회를 그대로 담아낸 현실과 만난다.

수현과 지영의 고민거리는 여기서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된다. 국가적으로도 사회적 변혁을 열망하며 국민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과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들의 처지가 미묘하게 닮아있다. 광화문 광장 시퀀스는 주로 닫힌 실내에서 진행되었던 영화가 완전히 열린 공간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인해 일종의 해방감을 전달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수많은 인파가 여러 방향으로 왔다갔다 움직이는 상황에서 주인공 커플이 원하는 길을 찾기란 더 어려워졌다. 그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이쪽 저쪽 헤매면서 전진해나간다. 카메라는 움직이고 있는 주인공 커플을 쫓아간다. 그들에게 해결된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결혼을 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결국 잘 헤쳐나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감독의 카메라는 그런 믿음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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