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만들어진 전통’, 태평무의 이중성
[성기숙의 문화읽기]‘만들어진 전통’, 태평무의 이중성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3.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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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른바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은 에릭 홉스 봄과 등식화되는 개념이다. 20세기 지성사의 거장 홉스 봄에 따르면, 우리에게 친숙한 전통이란 근대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창안된 일종의 발명품으로 이해된다.

즉 전통이란 낡고 오래된 것을 활용하여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집단적 기억의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발명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근대 국민국가에서 추구된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 숨겨져 있다.

예컨대, ‘천년의 전통’으로 표상되는 대영제국 황실의 장엄한 의례들도 사실은 근대발명품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스코틀랜드 전통복식에 사용된 ‘퀼트’도 사실은 18세기 잉글랜드인들에 의한 발명된 것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이렇듯 ‘만들어진 전통’은 유럽의 당대 정치엘리트들의 능숙한 속임수로서 지배이데올로기 구현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여졌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의 ‘만들어진 전통’의 기원은 무엇일까? 제3공화국 시절 무형문화재 제도의 창출에서 확인할 수 있다. 5·16으로 권력을 휘어잡은 박정희는 정권 창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전통과 민족을 끌어와 상징화한다. 일본지배와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겪으면서 점차 망실되어가는 전통예술을 보존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형문화재 제도를 창출했다.

1960년대 초반 공적(公的) 제도화의 산물인 무형문화재 제도는 바로 ‘만들어진 전통’으로 귀결된다. 당시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고 근대 국민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한 정치적 의도가 서려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홈스 봄은 말한다. 근대시기 국가의 권위와 지배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례나 상징물을 발명했으며 오래된 역사를 강조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이용했다고. 상당히 주도면밀했음을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중 ‘가장 오래된(最古)’ 전통춤에 속하는 진주검무(제12호), 처용무(40호) 등은 신라 시대에서 기원된 춤이다. 이 춤들이 무형문화재 지정번호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만들어진 전통’ 개념을 태평무와 결부하면 더욱 흥미롭다. 알다시피 태평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소위 관제예술에 속한다. 한편, 태평무는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韓成俊)이 근대 여명기 국권상실의 노정에서 소멸위기에 처한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예술춤의 초석을 다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기념비적 작품이기도 하다.

창작당시 조선시대 왕과 왕비를 상징화한 태평무는 2인무 형식으로 추어졌다. 나라의 태평성대를 주제로 한 태평무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이 극심했던 1930년대 말에 만들어졌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면 한성준은 왜 태평무를 창안했을까?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고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태평무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종과의 특별한 인연도 한 몫을 했으리라. 한성준은 한말 고종의 부름에 따라 궁중어전에 나아가 춤을 추는 특별한 행운을 누린다. 광대로 천대받던 시절 궁중에 초청되어 무대에 선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종은 그에게 참봉(參奉)이라는 벼슬을 내리는 등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비록 명예직이지만 평생 천대와 멸시를 짊어지고 유랑하던 그에겐 신분적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한성준은 이렇듯 조선왕실이 베푼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태평무를 창안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여하튼 태평무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부활을 꿈꾼 귀중한 춤문화 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오늘 여기’, 후속세대로 이어지는 태평무에 투영된 ‘만들어진 전통’은 어떤 모습일까? 태평무는 현재 두 가지 버전이 전한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를 상징한 2인무 중 강선영에 의해 계승된 ‘왕비의 춤’이 첫 번째 버전에 속한다. ‘왕의 춤’을 양식화한 한영숙류 태평무는 두 번째 버전에 해당된다.

전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에 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전승되고 있다. 반면 무형문화재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한영숙류 태평무는 전승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그럼에도 한영숙류 태평무가 쇠락하지 않고 웅장한 가지로 뻗어나가고 있음은 퍽 의미롭다.

오늘날 태평무에 내재된 존재론적 함의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 태평무가 문화재청의 보유자인정 심사과정에서 드러난 불공정 행정으로 인해 무용계에 혼란과 분열을 초래한 탓이다. 민족의 혼과 얼이 스며있는 태평무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올곧게 계승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기왕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선영류 태평무의 후계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강선영의 제1호 제자 이현자는 일찍이 국가로부터 ‘보유자후보(준보유자)’로 낙점 받았다. 그는 이른바 순혈주의(純血主義)적 전통으로 태평무의 원형보존에 일생을 바친 춤의 명인이다.

무형문화재 계승에서 지켜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원형보존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 당시 강선영과 더불어 2인무로 추어졌던 한영숙류 태평무 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야 마땅하다. 한영숙은 가계전승 방식으로 할아버지 한성준에게 모든 춤을 물려받은 내포제 전통춤의 진정한 후계자였다.

2년 전 큰 파장을 몰고 온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문제는 아직도 보류단계에 머물러 있다. 문화재청이 태평무로 인해 발목 잡혀 있는 셈이다. 미완의 과제를 떠안은 채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으나 내용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특히, 75세 이상의 전수조교들에게 명예보유자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발상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명예보유자는 예우차원의 명예직일 뿐 공적인 의무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고령화로 인한 신체 기능저하를 이유로 명예보유자로 전환하라고 유도하면서, 다른 한편 그들에게 전수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또 보유자 선정을 10년마다 한 차례씩 정기화한다는 방침도 개운치 않다. 그럴 경우, 우리 춤의 정통성을 지켜온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은 역사 속으로 퇴장할 수 밖에 없다. 대신 평준하향화된 중견세대가 혜택을 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동안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을 고령화에 이르도록 방치한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만들어진 전통’의 저자 에릭 홉스 봄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자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손꼽힌다. 공정사회를 꿈꾼 좌파지식인 홉스 봄이 남긴 지적 유산은 오늘날 한국사회, 나아가 무형문화재 제도의 구현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시사성을 제공한다.

건국 이래 초유의 사건으로 회자되는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는 온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촛불혁명으로 타올랐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민족사의 불행은 ‘장미대선’을 유발했고 결과는 진보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진보엘리트들의 조력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음은 예측한 그대로다. 문 대통령은 통치철학으로 ‘공정·평등·정의’를 내세웠다. 공정사회를 지향한 홉스 봄의 지적 전통 내지 그의 세계관과 중첩된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기운으로 온 산천이 화사하다. 일평생 전통춤의 보존계승에 헌신해온 원로예인들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며 한숨만을 토해내고 있다.

그분들에게 진정 봄은 오고 있는가? 무형문화재 제도의 행정에서 ‘공정·평등·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이젠 국가가 보다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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