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人生旅路, 우리의 정처 없는 인생에 대하여, 믹스라이스①
[특별기획]人生旅路, 우리의 정처 없는 인생에 대하여, 믹스라이스①
  • 박주원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0.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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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모·조지은 작가의 공동작업,‘이주, 공동체, 개발, 개개인에게 축적된 다양한 기억과 감각’ 통한 인생 모습 담담히 담아내
▲ <덩굴 연대기(The Vine Chronicle)> 2016 프로젝트 중에서 사진 일부, 작가 제공.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아주 많다. 배가 전복되듯 가까이 있는 것들이 뒤집히자, 멀리 있는 것들이 밀려들었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읽고, 쓰기, 고독, 연대에 대하여』, 김현우 역, 반비, 2016, p. 211.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이리 저리 떠돌아 다녀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오래 묵어 순환이 되지 않으면 귀신이 된다는 옛말이 있다 –믹스라이스

 미술 작품을 포함하여 세상의 많은 것들의 소재가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부분은 어떤 일을 겪은 누군가의 입에서, 혹은 간접적으로 타인이 겪은 것을 들은 누군가의 귀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의 입과 귀에서 시작되어 버무려진 여러 이야기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자라왔다. 세계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날이 더워지든 추워지든 간에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곧 우리의 삶이며, 삶과 관계된 것은 모든 것이 이야기 거리이다.

삶이 다양하니 이야기는 더욱 많을 수밖에 없다. ‘삶’이라는 단어 하나에 포함된, 미세하게 옹기종기 붙어있는 의미들은 처음에는 한 사람의 아주 작은 이야기였을 것이고, 그것이 두 배 세 배가 되며 마치 물 먹은 화선지처럼 크고 다양한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게 되었을는지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삶이라는 버거운 대상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삶이 주는 다양한 희노애락(喜怒愛樂)의 사건들을 버텨온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각각의 주체에게 각기 다른 의미와 이야기들을 전달해주므로, 리베카 솔닛의 언급처럼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아주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한 번의 파도에 모든 것이 뒤섞여 어떤 것은 멀어지고 어떤 것은 밀려드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결국 모두 섞여있다는 점이다. 즉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가까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멀리 있는 것이라고 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 모든 것이 뒤섞일 수 있다는 점, 뒤섞이며 어떤 것은 가버리고 또 다른 것이 올 수도 있다는 점 등이 우리 삶과 이야기의 매력이다. 다시 말해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동안 인간의 이야기가 정처 없고 두서없이 구전되고 와전되며 정리되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 역시 끊임없이 흘러간다.

나는 믹스라이스의 작업에서 이렇게 흐르는 우리의 삶과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양철모 작가와 조지은 작가로 이뤄진 믹스라이스(mixrice)는 2002년 처음 활동을 시작하였다. 팀의 이름은 ‘잡곡밥’ 혹은 ‘섞인 쌀’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그들과 함께 작업을 많이 진행하였던 이주노동자 분들이 대부분 쌀이 주식인 아시아 문화권에서 온 분들이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1) 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질문과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이주의 현상과 질문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2)

이들의 작품과 오랜 시간 연관되어 있는 ‘이주민/이주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의 작은  카테고리로 두고 그들의 작업을 조금 떨어져서 보다보면, 결국 믹스라이스의 작업은 사람들의 흘러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의 집합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2018년 7월 24일, 조지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믹스라이스가 진행하는 작업의 성격에 대해 우리가 조금은 찬찬히, 그리고 넓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마치 물을 머금어 붙어있는 화선지 여러 장을 한 장 한 장 공들여 떼어낼 때처럼 말이다.

믹스라이스가 작업을 통해서 보여준 많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는 겹겹이 들추어보면 가까이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때는 내가 아는 사람, 또 어떤 때는 한국인, 더 나아가 외국인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믹스라이스는 작품을 통해 외국인의 이야기라고 하여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며, 내 이야기이기에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단정을 짓지 못하게 한다. 결국 개인의 이야기는 타인과 사회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믹스라이스는 작품으로 넌지시 이야기 해준다. 마치 식은 카레 국물에 꾸덕하게 남아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당근이나 감자처럼, 어떤 단어 하나로 귀결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여러 단면들을 팀의 이름처럼 믹스(mix)하여 작업에 나타내고 있는 듯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믹스라이스가 지금껏 관심을 가지고 작품의 주제로 삼아온 현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이주의 모습,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이주와 그 부산물로 나타나는 여러 결과들을 작품으로 어떻게 표출하였는지를 살펴보며 그들이 귀 기울였던 삶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흘러가는 삶, 이주(移住)에 대하여
이주는 단지 공간을 이동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주는 어떤 나라들의 경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본국과 이주국의 시대적 시간까지도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60년대가 방글라데시라면, 방글라데시와 한국의 시간 간격은 40년이나 된다. 네팔에서 한 때 있었던 ‘한국은 미래의 일본’이라는 이야기처럼, 한국은 또 어딘가의 과거이다. 그리고 또 어딘가의 미래이다. -믹스라이스, 20063)

이주(移住)의 사전적인 의미는 ‘본래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김’이다. 이 두 단어를 풀어서 보면, 옮긴다는 뜻을 가진 ‘이(移)’에는 본래의 뜻 말고도 ‘바꾸다, 변하다’등의 뜻도 있다. 또한 ‘주(住)’에는 ‘살다, 거주하다’는 뜻 말고도 ‘멈추다, 살고 있는 사람’등의 다른 뜻도 함께 있다. 이러한 단어의 여러 뜻을 고려해보면, ‘이주’란 거처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거처를 옮김으로 인해 사람이 겪는 변화, 바뀜이 정지된 상태’ 등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주리어카(Migrantcart)>, 2005, 작가 제공.
이주리어카는 집회나 축제, 중요한 모임에 간단히 이동할 수 있 게 만든 리어카의 일종. 이 리어카에서는 핫케익을 굽거나, 간단 한 전시, 혹은 영상을 보여주는 등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2005년 12월 18일 이주노동자의 날 서울, 철도웨딩홀 2006년 1월 1일 안양네팔구릉축제, 안양중앙성당.

▲<이주리어카(Migrantcart)>, 2005, 작가 제공
이주리어카는 집회나 축제, 중요한 모임에 간단히 이동할 수 있 게 만든 리어카의 일종. 이 리어카에서는 핫케익을 굽거나, 간단 한 전시, 혹은 영상을 보여주는 등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2005년 12월 18일 이주노동자의 날 서울, 철도웨딩홀 2006년 1월 1일 안양네팔구릉축제, 안양중앙성당.

살던 곳이 변화된다는 것은 환경에 순응하고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잠시 잃어버릴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암묵적으로 정체성을 변화시켜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였을 때, 사람들은 크고 작은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원래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묵혀둔다. 생명체란 그렇게 단순하지 못하여 기억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믹스라이스는 사전적인 의미의 ‘이주’에 관련된 작업, 그리고 그것을 넘어 ‘이주’라는 단어 속에서 파생되는 여러 상황과 사람들의 묵혀둔 이야기들과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왔다. 이들은 2002년부터 2년 반 동안 이주노동자센터에서 믹스라이스비디오클래스를 운영하며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4) 조지은 작가는 예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캠코더만 들고 비추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를 포함한 4명의 젊은 작가들이 이주민센터에서 노동자에게 비디오기기 활용법을 강의한 것이 발단이었다.”5) 라고 말하며 이주민들과 작업을 시작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러한 시작을 바탕으로, 믹스라이스는 <믹스라이스 채널(mixrice channel)>(2002-2004), <이주리어카(Migrantcart)>(2005), <핫케익(Hotcake)>(2005) 등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 이주민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밖을 향해 표출할 수 있게 하였다. 믹스라이스가 이주 혹은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들은 아주 무겁거나 진지한 것부터 풍자나 해학에 가까운 것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를 향해 조용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러나 결과를 종용하기 보다는 그들의 상황을 담담히 말하며, 이 이야기들이 세상에 회자될 수 있게 하였다.

▲<핫케익(Hotcake)>, 2005, 밀가루, 프라이팬, 기름, 작가 제공.
▲<핫케익(Hotcake)>, 2005, 밀가루, 프라이팬, 기름, 작가 제공.

잊지 못할 감각과 기억에 대하여
 믹스라이스는 이렇게 현재 이주민들의 삶의 상황과 그들의 이야기를 표출할 수 있게 하는 장(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이주민들이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다양한 기억들과 감정들 역시 작품에 담아내었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믹스라이스의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작품을 구성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간이 흐르면 변하게 되는 어느 것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그것을 시간이 이끄는 대로 머릿속에서 흐르게만 두면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시간은 흐르지만 소중했던 기억들을 정리해두면 그것은 이후에 삶이 힘들 때라도 한 번쯤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그러한 사람들의 기억 역시 ‘이야기’를 통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무대에서 이어지는 노래(A song connected from A stage)>(2009-2014)는 믹스라이스가 출연 제안을 받기도 하였고,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던 <불법인생>과 같은 Maseok migrant theater의 연극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다. 이들은 실제 무대보다 1/10 크기로 만들어진 미니어처를 만들고 연극을 작은 모니터에서 볼 수 있게 한다. 믹스라이스는 이 작품을 ‘마석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연극을 기념하는 작업’6)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절대로 한국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외부인들이 지닌 그들 내부의 기억을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좋은 삶>에서 볼 수 있는 믹스라이스의 <오백 명의 남자들과 게임 그리고 경품: 면봉 한 봉지, 냅킨 한 봉지, 볼펜 한 자루, 설탕 1 kg짜리 한 봉지, 액자, 소금 1 kg 한 봉지, 감자 한 봉지(500 Men, Games and Free Gifts: 1 Pack of Q-tips, 1 Pack of Napkins, 1 Pen, 1 kg Sack of Sugar, 1 kg Sack of Salt, 1 Frame and 1 Pack of Potatoes)>(2018)라는 작품은 마석에서 처음 방글라데시 축제가 열렸던 ‘99년도 4월 4일의 하루’가 기록된 비디오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1999년도에 진행된 이 축제는 방글라데시의 500명의 남성들이 10만원으로 준비한 축제이다.

▲〈오백 명의 남자들과 게임 그리고 경품: 면봉 한 봉지, 냅킨 한 봉지, 볼펜 한 자루, 설탕 1 kg짜리 한 봉지, 액자, 소금 1 kg 한 봉지, 감자 한 봉지(500 Men, Games and Free Gifts: 1 Pack of Q-tips, 1 Pack of Napkins, 1 Pen, 1 kg Sack of Sugar, 1 kg Sack of Salt, 1 Frame and 1 Pack of Potatoes)>, 2018, 작가 제공.

1분이라는 시간 동안만 진행되는 다양한 게임들을 하며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힘든 타지살이를 잠시 잊고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설탕, 볼펜, 냅킨, 면봉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선물로 주어졌지만, 이 사소한 물건들이 그날 모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하루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7) 전시장에 있는 라이트패널에 비친 흐릿한 그날의 기록은 마치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 부분은 지워지고 어느 부분만 남아버리는 우리의 기억을 보여주는 듯하다.

②편으로 계속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46

[각주]
1)백아영, 「마음에 공명하나」, 『노블레스』, 2016.12. 09
http://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2184
2)믹스라이스, 『믹스라이스(mixrice) 2002-2016 포트폴리오』, p. 350.
3)믹스라이스, 『믹스라이스(mixrice) 2002-2016 포트폴리오』, p. 258.
4)믹스라이스, 『믹스라이스(mixrice) 2002-2016 포트폴리오』, p. 350.
5)노형석, 「우리는 작품 대신 관계를 만드는 작가들이다」, 『한겨레』, 2016.10.18.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66224.html 직접 인용
6)믹스라이스, 『믹스라이스(mixrice) 2002-2016 포트폴리오』, p.164.
7)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리플렛, ‘믹스라이스’, p. 55.

글쓴이· 박주원(미술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썼다. 2017년 삼성미술관 LEEUM 학예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수원 대안공간 눈 <취향은 존재의 집> 공동 전시에서 '글로 배우는 연애' 전시를 기획했다.

*이 지면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비평가 지원 프로그램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박주원 작가가 각각 선정돼 4회에 걸쳐 4명의 작가론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