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주택가내 대형주차장,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부암동 주택가내 대형주차장,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10.29 10: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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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주차환경 열악해 불법주차 성행 지역”
주민, “동네특성·주변 환경·주민의견 고려 안 해”

 

최근 평화로운 도심 속 전원으로 알려진 종로구 부암동의 특성과 자연환경, 주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시행해, 부암동을 사랑하는 주민들과 시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종로구청이 주차창을 지으려고 매입한 부지로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주차장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종로구청이 부암동 주택가 한가운데인 315-1번지 일대의 500평짜리 부지를 지난 6월 33억 원에 매입하고, 2층 건물의 대규모 공영 주차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부암동 공영주차장 건설 계획에 대한 구청의 설명은 이 일대의 주차환경이 매우 열악해 종로구 평균 주택가 주차 보급율이 80.2 %인 것에 비해 34.9%밖에 되지 않고, 폭 4m 내외의 양방통행이 불가한 좁은 도로에 불법 주차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반경 300m 이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가옥의 확보 주차 면수보다 많아 주차난을 겪는 가옥이 43%로 조사됐다고 한다.

따라서 종로구청은 주차환경개선지구로 지정돼 있는 이 지역에 주민들을 위한 공영주차장을 건설함으로써 주차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고 주차난을 해소해 주민편의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는 주차장을 건립하려는 대상 부지가 속해 있는 부암동의 특성과 주변 환경이다.

대상 부지는 부암동주민센터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주택가와 카페를 지나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 자락의 분지에 자리한 부암동은 경치도 좋을 뿐 아니라 단독주택이 밀집한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라 40년이 넘도록 서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심 속의 휴양림이다.

누구나 꿈꾸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들이 경사진 오르막길에 운치 있게 자리하고, 인근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 현진건 집터, 구한말의 동서양 절충 양식을 볼 수 있는 반계 윤웅렬 별장, 석파정, 세검정, 백사실 계곡 등의 문화유산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최근에는 종로구에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한성이네 집’ 촬영지로 유명한 갤러리 카페 ‘산모퉁이’를 포함한 그 일대를 생태문화탐방코스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평화로움을 간직한 서울 도심 속의 자연에 안겨 있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인 부암동에 종로구청이 주차장을 지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40년 간 법으로 규제하며 지켜온 부암동 주택가 한가운데 주차장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주차장을 지으려는 부지는 부암동 주택가 한가운데 있다.
부지 인근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유선근 할머니(여, 70대)는 “재산상의 손실을 많이 보면서도 우리는 오랜 세월 부암동을 지켜왔다”면서 “40여 년 동안 묶여온 규제를 구청이 이제 와서 마음대로 층수 제한을 풀고 건축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주민 김병애 씨는 “보존되어 온 이 멋진 녹색공간에 대기오염과 온실가스의 주범인 자동차를 위한 주차장을 만들면 매연과 소음, 거리혼잡 등은 오랫동안 부암동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감을 드러냈다. 부암동이 너무 좋아서 몇 년 전 아예 집을 지어 이사 온 김채경 씨는 “환경을 생각해 건물을 없애고 공원을 만들고 자전거도로를 닦고 있는 마당에 뜬금없이 대형 주차장이라니!”라며 “부암동만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던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올 이유가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이 더욱 분노를 느끼는 것은 주차장 건립 계획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주민들은 좁고 구불구불한 길에 차 댈 곳도 마땅치 않지만 주거와 문화, 그리고 상업시설이 제대로 어우러진 부암동이 좋아서 20~30년이 넘도록 살아왔다.

더구나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자 제한보호구역이라, 거주자우선주차지역에 돈을 내고 주차를 하거나 이웃끼리 양해를 구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부암동을 지켜 온 것이다. 그런데 종로구청이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해놓고 진행 과정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을 더 분노케 하고 있다.

지난 6월 주차장 예정부지를 매입한 것이 종로구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병애 씨가 ‘부암동 315-1, 315-3, 327지역의 공용주차장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한 후 종로구청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에 주민들을 끝내 분통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구청의 답변은 ‘부암동 지역의 주차수급 개선을 위해 2008. 8. 25 부암동 지역의 주차환경 개선지구 지정을 위한 주민 의견수렴 및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라고 명시돼 있었다.

이같은 내용에 대해 기자는 안재홍 종로구의회 건설복지위원장에게 확인해보았다. 그 결과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주차장 관련 주민 의견수렴 및 주민설명회가 이뤄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민 김채경 씨는 “올해 6월 부지 매입 사실을 알고 주민들이 요구하기 전까지 구청에서 알려준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정작 주민인 우리들의 뜻을 전할 기회도 주지 않아 놓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같이 주민의 개인적 구청방문 및 항의 전화, 서명 운동 등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종로구청 측은 당초 계획했던 지상 2층을 지하로 선회했고, 뒤이어 주차장 면수를 100대 이상에서 70대로 줄이고 지상에는 주민센터를 짓겠다고 했다. 주민들과 시민들의 바람인 ‘주차장 건립 백지화’는 수용되지 않았고 주차장 건립 계획에는 변함이 없으며,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뒤늦게 지난 10월 초 부암동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설문 내용은 주민들에게 말했던 계획과는 달리 주차장 예정부지에 지하 3층 주차장에 지상 2층 주민센터를 세울 방안을 묻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주민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종로구청의 주차장 건립 추진은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등을 통해 방송에 알려지면서 부암동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카페와 레스토랑이 주택가 깊숙한 곳까지 자리잡기 시작했고, 게다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오면서 주택가 근처에는 불법 주차 문제가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었다. 특히 주말이면 가족, 연인, 그리고 외국 관광객들까지 몰려 불법 주차 민원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주차장을 짓는다는 것은 주민들이나 제3자인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주민들은 뒷전이고 관광객만을 위한 주차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주차장 계획에 대한 경위를 전해들은 김강윤 도시개발과장(전임 부암동장)은 주민들과의 통화에서 “주택이 몇 안 되는 단독 주택가이기 때문에 주민을 위한 공영주차장이 필요한 곳이 아니다”면서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기에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데이터가 나왔는지 의아하다. 주변이 안평대군 유적지이기 때문에 주차장을 건립하기 전에 문화재 발굴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주민들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동사무소 앞 주차장부터 개방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곳을 파괴하려는 행위다. 부암동에 필요한 건 주차장이 아니다. 주차장을 짓느니 차라리 지금 그대로 그냥 두라”고 주차장 건립 백지화를 촉구했다.

주민들과 부암동을 사랑하는 시민들은 무엇보다 부암동의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이 부지에 주차장이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주민들이 주차장 건립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30~40년 규제로 인해 자연그대로 보존된 아름다운 부암동을 지키기 위해서다.

주민 강지원 씨는 “도시계획은 주민의 삶터로서 생활공간이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면서 “도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특색 있는 부암동에 대형 주차장이라니 최악의 선택과 방법이다. 절대 불가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88만 원 세대’라는 글로 유명한 우석훈 씨는 블로그를 통해 “부암동에 주차장을 세우면 더 많은 차들이 들어오고, 그러면 자연생태가 무너져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을 수 있게 된다”며 종로구청의 주차장 계획에 일침을 가했다.

한편, 주민 김병애 씨가 주차장 건립 반대를 위해 지난 6월 만든 ‘부암동사랑모임’ 인터넷 카페는 처음에는 주민들 중심으로 주차장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창구였다. 이후 몇 달 사이 부암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카페에 모여들면서 ‘그린 부암동 가꾸기’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주민들과 부암동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 500여 명이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주차장 예정부지 옆집에서 내려다본 부지의 일부 모습
출사를 위해 부암동을 찾은 한 대학생은 “버스가 자주 있는 데다 정류장과 가까워서 오는 데 불편이 없다”면서 “그 맛에 오는데 여기에 차가 많아지고 골목이 파괴된다면 더 이상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차장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부암동에서 인왕산 코스를 즐긴다는 최은경 씨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옛 정취와 자연을 느끼고 싶어서 걸어서 찾아오는 곳에 옛것을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자동차 매연으로 가득 찬 주차장을 안 될 일”이라면서 “주민들의 뜻을 살려 지금의 부암동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부암동을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은 진정 부암동과 주민들을 위해서는 주차장 건립을 백지화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부암동을 자주 찾는다는 개그아통 님은 “진정 주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화를 통해 부지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부암동에는 노인과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마땅치 않다. 그곳에 놀이터 및 산책공원 등 자연과 어울리는 주민 근린생활 시설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부지 바로 옆쪽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유선근 할머니는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 사직동 배화여고 근처에 있다”면서 “이 부지에 도서관이 생기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좋은 그야말로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 될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김채경 씨는 “부지 50m 위에 있는 현진건 집터에는 갤러리가 들어설 계획”이라며 “현재 부지에 있는 수십 년된 나무들을 그대로 두고 예술가들의 작업실, 공원, 그리고 도서관 등을 만들어 자연스레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이처럼 부암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종로구청이 부암동을 지키고 주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부지에 주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