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자 코미디의 새로운 진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정치풍자 코미디의 새로운 진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09.10.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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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영화의 거룩한 계보, 기막힌 사내 장진 감독의 믿기지 않는 상상력의 쾌거

장진 감독은 그의 전작 가운데 ‘아는여자’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거룩한 계보’에서는 갱스터 느와르이자 코믹느와르의 경계를 무리없이 넘나드는 모습을,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는 살인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적 문법을 제시한 바 있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시도된 그의 코미디는 흐트러진 듯 보이지만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off beat’의 세련된 리듬감과 함께 예측불허의 상황, 위트와 풍자가 쉴새없이 새나오는 막강 대사가 삼합을 이루어 최고의 조화를 보여 준다.

민주화 투쟁으로 다져진 대쪽같은 성격의 대통령 김정호(이순재 분)도 244억이라는 복권당첨 앞에서는 밤잠을 설쳐가며 가슴을 졸이는 소심남이되고, 언제나 대한민국의 안보와 자존심을 위해 냉철한 지성을 잃지 않는 미남 대통령 차지욱(장동건 분)은 일상속에서는 아기를 키우는 싱글대디로 탈바꿈한다.

그는 주사바늘을 제일 무서워하고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 앞에서는 수줍음을 감추지 못하는 천상 귀여운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법무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한경자(고두심 분)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 전에 이혼하자며 떼쓰는 남편을 달래야하는 불쌍한 아줌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적이면서도 소심하고 겁이 많은 그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용기있게 복권당첨금을 내놓기도 하고 죽어가는 노인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도 하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남편에게 블루스를 청하는 등 매력 만점의 대통령 모습을 보여준다.

대통령이라는 가볍지 않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정치상황을 민감하게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장진 감독 특유의 상상력을 시원하게 내지르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의 일상을 엿보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지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억지스럽지 않은 코미디가 얼마나 관객을 편안하고 흐믓하게 하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순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영화의 빠질 수 없는 매력이다.

너무 거대하거나 격하거나 진하거나 혹은 너무 빠른 아니면 너무나 과장된 영화에 지쳐있는 관객들에게는 순하고 사소한 이야기가 그립기 마련이다.

요즘 신경질적인 감독의 이기심이 묻어나는 예술영화보다는 관객의 진정한 즐거움을 배려한 대중영화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은 비단 본인뿐만은 아닐 것이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회복을 돕기 위해 수술이나 약을 사용하지 않고 나을 수 있다는 거짓말로 치료하는 위약치료. 위약효과의 놀랄 만한 사례들이 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의사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의사의 말 한마디에 환자의 증상이 호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영화감독은 어떤 의미에서는 위약치료를 해야하는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양심이나 예의가 희박해져 가는 세상이라면 그 역할이 더욱 절실히 요구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즐겁게 꿈꿀 수 있는 힘, 그 힘이 일상에서 활력소 이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이다.

장진 감독은 자신의 대중영화 내지는 상업영화의 구조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웃음을 위해,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위해 노력하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한가지 더 분명한 것은 감독의 상상력이 위약의 긍정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다. 잘생긴 대통령이 인간적으로도 따뜻하고 정치도 잘 하는 세상. 꽃미남에 실력까지 갖춘 요즘 신세대들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역사의 흐름에 맡길 뿐...

끝으로 굴욕의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정치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한마디.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는가?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