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인박물관, ‘만져보셔도 됩니다’
목인박물관, ‘만져보셔도 됩니다’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12.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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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나무조각 박물관… 서울 인사동골목의 목인 박물관

비밀의 화원?” 인사동 골목 한 편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목인(木人) 박물관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이다. 여름에는 하얀 벽을 푸른빛으로 뒤덮었을, 지금은 커피색 낙엽이 된 담쟁이덩굴 옷을 입고 고요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의 목인 박물관. 국내 유일의 목(木) 조각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한국의 목인 5000여 점과 중국ㆍ인도ㆍ네팔ㆍ티베트 등 아시아의 목인 5000여 점을 합해 총 1만여 점이 소장돼 있다. 다양한 목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이곳엔 특히 상여에 부착하던 목 조각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어 그 비밀스런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12월, 모두가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이 시점에서 목인을 만나며 뜻깊은 마무리해보는 것이 어떨지….

▲목인박물관 전시실 모습

멀리서 풍경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조그맣고 아담한 마당을 지나 엔틱풍의 예쁜 문을 열고 들어섰다.

1층 대관 및 특별 전시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다소 좁은 나무 계단을 오르니 한층 더 비밀스런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드디어 다다른 전시실의 공간과 벽에는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목 조각상들과 목인들, 용수판들로 가득하다.

일반적인 박물관들과는 다른 ‘사진 촬영하셔도 됩니다’ 또는 ‘만져보셔도 됩니다’라는 문구들이 나무에 둘러싸인 포근한 기분을 한층 더 편안하게 해준다.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목인을 만져보니 손으로 온기가 전해졌다.

이 ‘비밀의 화원’의 주인인 김의광 관장은 목인과 꼭 닮은 사람이었다. 먼저 자신의 방에서 인터뷰를 할 수 없음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김 관장은 자신의 방 상태를 보여줬다. 그곳에는 언젠가는 김 관장의 손을 빌어 사람들을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는 목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있었다.

옥상은 올라가 보셨냐고 말하면서 성큼성큼 앞장서는 그를 따라가 보니 차 한잔을 하면서 하늘을 볼 수 있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는 쉼터가 나온다. 관장이 손수 수집한 돌 조각들과 특이한 모양의 장독들이 이곳에 감각을 더했다. 장독에 있는 버선 그림은 우리 선조들이 벌레를 쫒는다는 의미로 그렸던 것이란다.

▲목인박물관 김의광 관장
평범한 월급쟁이, 박물관을 꿈꾸다

김 관장의 삶은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박물관 관장이 되기 위한 길을 차곡차곡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제 그가 평생 수집한 목인들의 온기를 이 박물관을 통해 나누고 있다. 연세대 정외과 졸업에 평범한 대기업 월급쟁이 출신이라는 김 관장은 어떻게 박물관을 운영하게 된 걸까.

“제가 워낙에 민예품 수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수집은 70년대 중반부터 했는데 80년대 중반서부터는 목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목인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했지요.”

목인을 수집하는 그가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 들여졌을 리 만무하다. 특히 그의 아내인 서혜숙 씨는 목인 때문에 집에 냄새도 나고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고 크게 반대했단다.

그러나 아내도 서서히 목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퇴직 후 박물관을 운영하겠다는 그의 생각을 지지하고부터는 자신만큼이나 목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다고. 소위 신촌CC로 대학교 2학년에 만나 50년간을 함께해온 아내는 배우자를 돕는 배필로, 그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목인을 제 호(號)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목인은 나무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든 것을 말합니다.

목인이라고 하면 보통 상여에 관련된 것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숫자적으로 많아서 그럴 뿐이지 불상도 있을 수 있고 솟대나 장승을 비롯해 집안에서 떡을 만들 때 사용했던 떡살, 결혼식과 관련 있는 나무 기러기 등도 속합니다.”

학 조각상 발견했을 때의 희열… 시대상을 반영하는 목인들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관장이 특별히 아끼는 목인은 남사당패와 학 조각이란다. 특히 어느 골동품 상점에서 비스듬히 누워 있는 학 조각을 발견했을 때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한눈에 예감하고 세워 봤다고 한다.

“골동품 가게에서 이 학 조각을 세워서 봤을 때 참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가격이 많이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물었는데 큰 가격이 아니기에 얼른 사서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 나왔었죠. 많은 수장가들이 경험하는 일 중 하나일 겁니다.

과장과 축소, 생략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저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다른 분들도 좋아해서 복제품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복제품을 만드는 데 작가와 의논을 해서 목 조각상의 컨셉트를 따서 현대적으로 만듭니다.”

상여 장식 조각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인물상이다. 왕의 남자에 나왔던 살판 목인, 그 옆에는 한 시인이 적어주었다는 ‘물구나무서기’라는 시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무사의 모습을 한 인물상들은 죽은 사람의 격을 높여주기 위한 장치의 하나이다. 말을 탄 장군은 군인이나 순사들이 말에 올라탄 모습으로 변화해 호위하는 인물들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각종 종교적 영향을 받은 신선, 북ㆍ장구ㆍ꽹과리ㆍ바라를 연주하는 악공, 연주에 맞춰 재주를 넘는 재인이나 남사당패, 그리고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사자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이나 모습이 무척 다양하다. 이 인물 조각상들은 망자의 마지막 가는 저승길을 동행하는 수행자들이었다고 한다.

벽에 걸려 있는 용수판들은 험악한 얼굴을 한 것도 있고 만화와 같은 해학을 담은 것들도 있다. 김 관장이 그 중 장난기 가득한 검은 얼굴 용수판을 가리키며 “오바마!”라고 유머를 발휘한다.

목인들이 꼭 상여와 관계된 것뿐만은 아니라는 그의 앞선 설명에 부합하는 먹줄통과 떡살들도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진가 알아보는 이에 보람 느껴… 기증자에 대한 예우 신경 써야

김 관장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낄까.

“글쎄요.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서 어떤 유물을 수집을 했겠지만 그 유물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이 유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지요. 저는 박물관을 열어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나누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물관에 오시는 외국 사람들이 지나치다가 들어와서 감탄을 하고 예술 하시는 분들이 진가를 알아보고 오셔서 영감도 얻어가고 스케치까지 해 가실 때는 정말 기분이 좋지요.”

기자가 잠시 말머리를 돌려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묻자 ‘당연히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개인 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국가나 일반인들이 더욱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에서 큐레이터도 지원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지요. 비단 돈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같은 관심이 꼭 필요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보통 우리가 공공 박물관에 기증 같은 것을 많이 하게 되는데 기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고 봐요. 보통은 일회성 행사만을 하고 뒤처리가 불분명한 것이 현실이지요. 기증품으로 특별전시를 한다든지 또는 도록을 만든다든지 할 때 기증품을 기증한 사람이름을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증한 사람은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예우를 잘할 때 귀중한 유품들이 더욱 자발적으로 보관될 것입니다.”

박물관 개관 때 좋아하는 책 선물하기도… 행복은 만족하는 것

김 관장은 박물관을 오픈할 때 이색적이게도 박물관 도록이나 안내 책자가 아닌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책을 방문객들에게 선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책이 바로 그중 하나.

“우리가 늘 행복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데, 이 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죠. 말하자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한 정신과 의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서도 불행해하는 환자들에 시달려,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읽기도 재미있고 글로벌한 측면에서 쓰여 있어서 오픈할 때 선물로 드리곤 했지요.”

‘커피프린스 1호점’ 산모퉁이 주인장… 명품과 명소는 공유하는 것

그에게는 추가할 이색적인 항목이 또 하나 있다. 그가 얼마 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장소로 일약 유명해진 서울 부암동 소재의 ‘산모퉁이’의 주인장이라는 것.

“재미난 건데, 우연히 부암동에 놀러갔다 그 집을 보고 집경치가 너무 좋아서 수장고도 할 겸해서 구입을 하게 됐습니다. 경치가 진짜 좋은 곳이죠.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요. 명품과 명소는 여러 사람들이 찾는 것처럼, 그곳을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면 해서 카페를 오픈하게 됐지요. 그런데 MBC에서 그 집을 보더니 드라마 촬영을 할 수 없겠냐고 물어오더군요. 그래서 허락을 하게 됐고요.”

▲목조각으로 만든 가계도
덕분에 그곳에서의 수입이 박물관 운영에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소위 말하는 재태크에까지 성공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말에 너털웃음을 쳤다.

“저는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저더러 보는 눈이 있다, 운이 좋다라는 말을 하는데, 지하철역에 보면 왜 그런 말들 붙어 있잖아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저는 박물관을 열어 사회에 환원을 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하늘이 돕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오는 2010년 목인 박물관에는 어떤 행복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동안도 ‘중국의 탈’이라든지 ‘소도 웃고 말도 웃고’라는 제목을 가진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만, 내년은 호랑이의 해이니까 여름 즈음해서 호랑이 조각들을 선보이는 특별전시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이 특별한 것, 좋은 전시를 하고 좀더 넒은 공간에서 많은 유물을 보여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 목인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기회가 되면 자신이 만든 상여에 누워서 가고 싶다는 김 관장. 오늘도 목인으로 온기를 전한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