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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 화백, 코발트 블루의 전설
천수(100세)를 내다보는 대가, 통영 모든 것이 그림의 영감, 오로지 그림만 생각한 영원한 젊은 현역
2009년 12월 11일 (금) 11:56:37 홍경찬 기자 cnk@sctoday.co.kr

 통영시 봉평동 미륵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혁림 미술관(관장 전영근). 통영 비진도 해수욕장 은빛 모래 백사장과 욕지 앞바다의 맑고 밝은 코발트 블루빛 바다인 자연을 이곳으로 모신 듯하다. 혹자는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하지만 멀리 갈 필요 없다, 바로 통영이다.

 코발트 블루는 쪽빛 한술에 청색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일어나는 가장 자리색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체는 통영항서 저녁 해가 지고 난 3,4분 후 그 찰나인 색. 바다를 감싸 도는 짙은 푸른색이 바로 통영의 전설 코발트 블루이다. 

 전혁림 미술관을 매번 찾을 때 마다 행여나 화백의 그림 그리는 작업에 누가 될까봐 발걸음도 사뿐,숨소리도 멎은 듯 한 관람은 비단 모든 방문객들의 모습이다.

 아드님인 화백 전영근 관장은 2003년 5월 11일 개관전, 단지 4개월간의 밤낮을 안가린 짧은 시간동안 아름다운 전혁림미술관을 건립했다.

 당시 전혁림 화백은 택시에서 내리던 도중 불의의 사고가 있었다. 행여나 풍수지리학적 해가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전영근 관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미술관을 지었다고 숨가빴던 그때를 전했다.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고 했듯이 통영은 화가 ‘전혁림‘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한다.

 천수(100세)를 내다보는 전혁림 화백은 자연으로 닮아 가는 선구자이자, 통영의 바다와 전통 오방색(청,백,적,황,흑)을 영감으로 한 우리 전통 문화유산을 세계적 현대 미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 자나 깨나 통영풍광이 눈에 선∼하고 저걸 어떻게 다 그릴까 하는 생각뿐이야. 시시각각 변하는 통영바다가 내 그림의 원천이라 할 수 있지”이토록 전 화백의 삶에 통영의 섬,바다,하늘은 분명 활력을 여전히 불어 드리고 있으리라.

  전혁림 화백의 그림 한 폭에는 통영의 모든 것이 담겨 있고 전혁림 화백 그림이 통영이고 통영 앞바다의 자연적색이 코발트 블루다.

 

   
▲ 통영코발트 블루의 전설, 전혁림 미술관 작업실서 전혁림 화백, 천수(100세)를 바라보는 노화가임에도 왕성한 작품활동과 오로지 그림 생각에 활력이 넘친다.

 전혁림 화백(95세)은 한 세기를 지나 한국현대사의 격동기(일제시대,한국전쟁등)와 다양한 문화 변동을 살아낸 이 시대의 위대한 현역 화가이다.

1915년 9월 17일생(음력)인 전혁림 화백은 경상남도 통영군(지금의 통영시) 무전리 478번지에서 전계주(全繼柱)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산(慶山). 이후 통영공립학교(현 통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통영공립수산중학교(지금의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 전신)에 입학했다.

 

   
▲ 전혁림 화백 1973년 작 '구름상자', 본지가 대한민국 최초로 공개하는 전혁림 화백의 1973년작  '구름상자',  서울문화투데이를 통해 37년만에 화려한 첫 외출을 하고 있다. 통영 코발트 블루의 전설,전혁림 화백은 당시 70년대에는 한국 미술계 거리를 두고 꿋꿋이 통영서 화업에 정진했다.

 당시 수산학교의 내용이 적성이 맞지 않았으나 아마추어 화가인 일본 선생으로부터 유화 등에 대한 미술의 상식과 함께 미술의 감수성을 개관하는 시기였다.

 

   
▲ 화백 전영근 관장은 2003년 5월 미술관 건립시 짧은 4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신했다. 지극한 효심이 널리 알려져 있다.

 1933년 통영공립수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진남금융조합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때 그림을 독학하였으며 1937년 부산일보사에서 주최한 제8회 부산미술전람회에 ‘나부습작’을 출품한다.

 이 시기 미술의 독학에 대한 애증은 후에 통영을 기반으로 평생을 펼쳐온 전혁림 화백 그만의 고집스런 예술의 삶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독학시기에 일본에서 수입된 서적과 잡지를 구입해 읽었으며,1935년에 일본인 도고 세이지가 강습한 부산의 ‘이과회 하기 양화 강습회’에 일주일동안 참석하여 누드 2점을 그렸다.

 이를 계기로 1938년 부산미술전에 유화 ‘신화적 해변’,‘월광’,‘누드’를 출품 입선하여 부산,경남지역의 신진 양화가로 주목을 받게 된다.

 통영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즈음 프랑스 유학을 준비 했으나 여러 상황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그 후 경남미술연구회에 출품했으며 그의 나이 31세에 통영서 대한민국 광복을 맞이한다.

 광복 후 통영여중고 선생이었던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윤이상,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와 함께 통영문화예술 창달을 도모하기 위해 통영문화협회(1945년)를 창립한다.

 

   
▲ 이중섭 화가가 통영서 머물던 곳 (통영시 항남동). 전혁림 화백은 이중섭 화가와 함께한 통영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곤 했다.


 한국전쟁 기에는 부산에 머물며 1952년 부산의 다방 ‘밀다원(密茶苑)’에서 제 1회 개인전을 개최하고, 같은 해 통영의 ‘호심다방’에서 <이중섭,유강렬,장윤성,전혁림-4인전>을 개최한다.

 이 당시 전혁림 화백은 이론적으로 탄탄한 손응성,박고석과 어울렸으며 한묵,김환기,이중섭과도 유대관계를 맺어 지방에서 작업하는 작가로서는 하나의 진일보하는 계기가 됐다.

 그때 부산화단은 서울에서 내려온 화가들의 작품에 지방적인 색채가 사라짐을 실감하고 반성의 기회로 삼았는데 이때 통영의 고집(향토 성)으로의 회귀를 생각하며 한국적인 정서와 지방적인 특색에 대한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 등잔이 있는 정물/전혁림 작 2008년/61x73cm

 1953년 39세에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늪’이 특선 및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해 부산 ‘피가로’다방에서 2회 개인전을 개최하고, 대한민술전에 ‘어항의 우후’와 ‘삼면관음’을 출품했다. 50년대 특이할만한 사항 중에 하나는 자의에 의해서 부산 대한 도자기회사 공방에서 도화를 연구한다.

 여기서 전혁림 화백은 도자기를 모티프로 채용하여 화면의 구성요소로 삼았던 다른 작가들과 그가 다른 조형의식을 지녔다. 한국적 이미지로서 도자기라는 형태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 자체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한국적인 미에 접근하는 태도는 전혁림 화백이 민화나 오방색을 한국적 미의 조형요소라는 이유로 사용할 때조차 다른 깊이를 지니게 된다.

 전혁림 화백의 미의식은 ‘감각보다는 실질에, 실용적인 미를 추구하는 구축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라고 호평을 받고 있다.

 

   
▲ 아침/전혁림 작

 이런 한 소신 있는 작품 세계는 구상과 추상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던 근간이며 자유로이 대상의 관념에 머물지 않는 작가의 태도에서 연유한 것이다.

 1950년대는 시대의 굴곡이 실험형식의 상황을 이끌어 냈으며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 미술계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통영에서 꿋꿋한 화업의 길로 정진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중앙에 뚜렷하게 알려졌으며 이때는 예순을 넘어 일흔에 가까운 시기였다.

 전혁림 화백은 한 세기를 관통하며 살고 있다.

 그의 1962년 ‘부산국제춘추 기고문(안고수저)’라는 자서에서 “나는 명치말년에 이어 대정 3.1 독립운동, 세계 2차 대전,일어상용 창씨개명, 8.15, 6.25, 4.19, 5.16 이런 일들을 겪었고 타고 넘었다” 며 “할 말이나 쓰고 싶은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나간 일들을 그리워하며 반추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줄 알지만 나의 연배되는 사람들은 수난이 너무 엄청나고 두려웠다”라고 술회했다.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한 질곡의 시대에 살아온 인생 여정의 세월을 담담히 서술한 이면에는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비애가 담겨 있다. 개인의 인고가 담겨있으며 젊은 세대에게는 화가 이전에 통영을 지켜온 큰 어르신으로서 염려도 그려져 있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고,입체와 평면을 활보하는 작품들에는 한결같이 통일성이 있다.

 이는 강렬하게 보이는 색채의 조화이다. 통영의 섬과 바다 하늘을 나타내는 색과 한민족의 오래 시간으로부터 전해온 향토적인 소재(민화에 주로 사용된)인 오방색(청,백,적,황,흑)을 일컫는다.

 오방색의 교차되는 사용은 강하고 원색인 색상의 대비로 나타나 신성감이 더해진다.

 전혁림 화백은 1994년 어느 전시회장서 “내 작품에는 충무(지금 통영)라는 지역의 고유성이 스며 있겠지만, 이는 우리 한민족의 미의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믿는다”며 “내가 10대부터 관심을 기울었던 민화 같은 것에서도 우리는 폭넓은 공감대를 확인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 민화로부터/전혁림 작 2002년/165x140cm

 민화에서 화면의 구성법,색채,시대성등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어떻든 내 그림은 오랫동안 경험을 통해서 걸러내진 내 삶의 총제임을 확실히 밝혔다.

 전혁림 화백이 명확히 한 것은 향토적인 색과 통영의 정취임에도 지방적이지 않은 것은 뚜렷한 자기주관이 국적을 가진 한국적이고 이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통영을 기반으로 ‘코발트 블루’를 이끌어낸 통영 풍경화가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갈 이유이다.

 

   
▲ 기둥과 바다/전혁림 작 2007년/165x135

 청와대 인왕홀에 걸린 '통영항'(전혁림 작 2006년,길이 2m 높이 2.7m)이 청와대를 찾은 외국국빈들에게 가장 먼저 선보여야 할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 세계적인 대작임에 틀림없다.

 고 노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 때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외국 정치지도자들이 외교현안 논의에 앞서 소장한 그림 자랑부터 하는 ‘문화 마인드‘에 자극받은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그림 구입에 앞서 2005년 11월 경기도 용인의 이영미술관(관장 김이환,경남 고성 출신)에서 열리는 전혁림 화백의 전시회 '90, 아직은 젊다'를 찾아 ‘통영항’에 감명을 깊게 받았다고 전했다.

   
▲ 호수/전혁림 작 1950년대 250x453cm

현존하는 거장 아흔 다섯의 전혁림 화백은 한 세기를 가로 지르고 있다. 전혁림 화백은 “예술은 굳이 배워서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주”라고 하였다. 하지만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재주뿐이겠는가?

 전혁림 화백의 손등은 퍼렇게 물들을 정도로 통영의 바다를 하늘을 그려온 인고의 세월이 있었으며 힘들고 고난 하던 아내와 아이가 그 곁을 묵묵히 지켜온 것이다.

 전혁림 화백은 “회화는 이야기에서 발전한 것이며 얍삽하게 물감만 발라 내놓는 그림을 보면 불쾌하다”고 했다. 어른다운 염려이다. “세상 모든 그림을 내가 다 잡아먹었다고 나는 자부하고 있소. 내 그림을 잘 보시오. 불화,성화,입체파,초현실주의 그림도 있소”라고 일갈한다.

 한 세기 독자적인 발걸음으로 살아온 자신 만만함의 표현이다.

 전혁림 화백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대여 김춘수 시인은 ‘전혁림 화백에게’라는 시를 지었다.

 전 화백/당신 얼굴에는/웃니만 하나 남고/당신 부인께서는/위벽이 하루하루 헐리고 있었지만/Cobalt Blue./이승의 더없이 살찐/여름 하늘이/당신네 지붕 위에 있었네.

 김춘수 시인은 ‘예술이란 혁명도 사회운동도 아닌,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통영이 낳은 두분 모두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해내기 위해 헌신 하신 분들이다.

 예술을 위해 눈여겨 볼만한 시선이 있는 전혁림미술관 2층, 청마 유치환과 가까웠던 이영도 시인과 전 화백이 같이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 작은 사진 하나로도 단아했던 이영도와 젊은 전혁림을 볼 수 있는 예술을 위한 지나간 세월이 총집대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청마의 시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그 시를 썼던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은 통영 시내 한복판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지금의 중앙우체국) ‘청마 우체국’으로 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 때 우체국 맞은편 2층집이 정운 이영도 시인의 집이었다.

 청마는 이영도 시인의 집 건너편 우체국 창문 앞에서 무려 5천여통의 러브레터를 보냈다.

 거진 100년이란 세월을 관통한 전혁림 화백은 당시를 생생히 들려줄, 오로지 유일하게 고집스러게 통영을 지키고 있는 예술계의 대부인 것이다.

 

   
▲ 전혁림 화백, 통영을 고집한 영원한 현역

 대한민국의 선현한 색채를 위해 지금도 물감을 펼쳐놓고 작업실에서 꼿꼿하게 붓질하는 노화가의 눈은 아직도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전혁림 화백은 통영이 낳은 영원한 현역이며 통영을 고집한 영원한 대가이시다.

 전혁림 화백 '천수(100세) 기념전' 개최를 넘어 오랫동안 건강하시길 통영의 모든 것이 지켜드릴 것이다.

 

   
▲ 새만다라 /전혁림, 200x120cm 목함지박에 유채 2007년작
   
▲ 들녘/전혁림 작 1953년/53x45cm

  -전혁림 화백이 걸어온 발자취-

 

 

년도

 

 

       걸어온 발자취

 

   

년도

 

 

         걸어온 발자취

 

 

1915

 

 

9월17일(음력) 경상남도 통영군 무전리 478번지에서 3남4녀중 차남으로 태어남

 

   

1964

 

 

8월 부산에서 개인전을 개최 김영교,이윤제,전혁림 3인전을 개최

 

 

1929

 

 

통영보통학교 졸업(현 통영초등학교)

 

   

1965

 

 

일본 동경의 국제자유미술전에 민화적인 요소의 반추상 작품<화조도>를 출품.

문화공보부 주최 3.1절 기념미술전에 6.25전쟁의 비극을 주제삼은 <실명의 용사>를 출품.

3월,부산에서 개인전을 개최

 

1930

 

 

통영공립수산중학교 졸업

   

1970

 

 

진해에서 도화및 유화 개인전을 개최

 

1933

 

 

통영공립수산중학교 졸업. 집안 형편상 미술학교 유학의 뜻을 펴지 못한 가운데 진남금융조합 취업. 독학으로 수채화와 유화 그리기를 지속

   

1971

 

 

6월26일~7월 3일, 서울코스모스 백화점에서 제2회 회화,도예개인전을 개최

 

 

1937
~8

 

 

부산미술전에 유화<신화적 해변>,<월광>,<누드>를 출품, 입선 한 후 부산,경남 지역의 신진 양화가로 주목을받게 됨

   

1974

 

 

1월 부산에서 개인전을 개최

11월 서울 춘추화랑 초대 개인전을 개최

 

1941 

 

 

경남미술연구회전에 출품

   

1975

 

 

부산 공간화랑에서 ‘전혁림 소품초대전’을 개최

 

1945

 

 

통영에서 민족해방과 조국광복을 맞음

   

1976

 

 

부산상업은행 3층,명인화랑에서 회화 도예 개인전 개최

 

1947

 

 

양달석. 서성찬,김원갑 등과 경남미술연구회전에참가.정명연(1929년생)과 결혼

   

1977

 

 

통영수산전문학교 개교 60주년 기념,전혁림 초대전이 통영 호심다방에서 개최. 부산 수로화랑 ‘전혁림 송혜수 성백주 3인 초대전’개최

10월 부산에서 은지화 개인전 개최

 

1948

 

 

통영문화협회(극작가 유치진, 청마 유치환,김춘수,김상옥,윤이상등) 창립,
통영 문화 창달에 이바지 함
 

   

1979

 

 

서울 예화랑에서 전혁림,오지호,유영국,윤종식,권옥연의 5인 초대전 개최

 

1949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서양화부에 <정물>이 입선.

부산역전 공회당에서 제1회 경남미술연구회전에 출품

   

1980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80 현대작가 초대전’에 <정물> 출품

 

1950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

   

1981

 

 

국립현대미술관 기획,‘한국의 자연전’에 <한려수도 실경>을 출품

11월 26일~12월 2일, 서울 춘추화랑에서 전혁림 초대전을 개최.

KBS주최 신체장애자를 위한 자선미술전에 협찬 출품

 

1952

 

 

전쟁상황 속에서도 작품생활을 지속하며, 부산의 다방 ‘밀다원’에서 제1회 개인전 개최, 통영의 호심다방에서 이중섭,유강렬,장윤성과 4인작품전을개최

   

1982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독립기념관 건립기금 조성전에 출품

 

1953

 

 

6.25 휴전 제2회 국전서양화부에서 반추상의 <늪>이 특선 및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크게 각광받음

부산에서 개최된 제5회 대한민술전에 <어항의 우후,삼면관음>을 출품. 부산의 피가로 다방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개최<한산도>,<두 여인>등 18점을 전시

   

1983

 

 

4월 15일~24일, 서울 샘터화랑에서 전혁림 유화,도예 초대전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83 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

 

 

1954

 

 

서울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된 6.25 4주년 대한미술전에 <산수도>,<꽃>,<조>를 출품

   

1984

 

 

제3회 대한민국미술대상전에 양화부 심사위원에 위촉. 국립현대미술관, 84현대작가초대전에 <실내>를 출품.

제1회 충무시문화상을 수상.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위촉

12월 8일~17일, 서울 샘터화랑에서 전혁림 유화,도예 초대전 개최

 

1955

 

 

제4회 국전에<화조월>이 입선 부산에서 제3회 개인전을 개최 <꽃과 새와 달>등을 출품

   

1985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협전’에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85현대미술초대전’에 <조>를 출품.

서울 샘터화랑에서 ‘전혁림 입체회화초대전’을 개최

 

1956
~62

 

 

부산 대한도자기회사 공방에서 도,화를 연구

   

1986

 

 

제1회 서울 아트페어에 샘터화랑의 초대작가로 참가. 국립현대미술관,‘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에 출품

 

1961

 

 

제10회 국전에서 완전 추상표현의 <회화>가 특선

 

   

1987

 

 

예문사에서 화집 ‘전혁림’ 간행

샘터화랑의 주관으로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화집발간 기념 초대전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87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 서울 한국화랑 개관기념전에 출품  

 

1962

 

 

제11회 국전에 추상 작품<작품>이 무감사로 입선.

제5회 부산시문화상(미술창작상)을 수상

   

1988

 

 

국립현대미술관, ‘88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 3월 17일~28일, 맥향화랑에서 초대전 개최.

인도,이집트,그리스,영국,프랑스 등지 여행. 뉴욕의 스페이스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1963

 

 

7월 부산에서 개인전을 개최 12월 김영교와 2인전 개최

   

1989  

 

 

10월 25일~11월 13일, 중앙일보사 주최, ‘전혁림근작전’호암갤러리서 개최

 

 

년도   

 

 

    걸어온 발자취

 

   

년 도

 

 

     걸어온 발자취

 

 

1990

 

 

동경 아트페어 출품.

11월 15일~24일, 서울 샘터화랑과 부산 갤러리월드(현,조현화랑)에서 초대 개인전 개최.

예술의 전당 미술관 개관기념전 ‘한국미술-오늘의 상황전’에 <한국적 풍물>출품

8월 ‘백두산실경전’참가작가로 중국을 거쳐 백두산 오름

   

 2001

 

 

국립현대미술관 ‘손의 유희:원로작가 드로잉전’에 출품.

서울아트페어(화랑미술제)에 송하갤러리의 초대작가로 출품

 

 

1992

 

 

국립현대미술관, ‘원로작가 회화전’에 출품

우리 미술문화연구소에서 작품집‘전혁림’간행. 경상남도미술대전 대회장으로 추대

 

   

 2002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근대회화 100선 전’에 <늪>(1953)이 선정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올해의 작가 2002’로 선정, 전혁림전 개최

2002대구아트엑스포 특별전에 초대 출품. 2002한국국제아트페어(KIAF)특별전에 초대 출품.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 미수기념 특별전’ 개최

 

1993

 

 

국제미술교류협회 주관,동경미술관에서 개최된 한일교루전에 초대 출품.

서남미술관(서울)기획 ‘장승의 해석전’에 초대 출품. 경상남도미술대전 대회장에 거듭 추대

예술의전당 전관개관 기념전 ‘현대미술전’에 초대 출품

   

 2003

 

 

5월 11일 통영시 봉평동에 전혁림미술관 개관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의 88세전 ‘목기와 그림의 만남전’개최

 

1994

 

 

예술의전당 기획, ‘음악과 무용의 미술전’에 출품

예술의전당 미술관, ‘동학 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

   

 2004

 

 

전혁림미술관에서 개관1주년 기념으로 ‘전혁림 미수 기념전’ 개최

월간 미술세계 창간20주년 기념문화상(미술상)수상

 

1995

 

 

중국 북경, 중국미술관 ‘한국현대미술 북경전’에 출품. 선재미술관, ‘오늘의 작품전’에 출품

 

   

2004
~5

 

 

한국국제아트페어에 마산아트센터 초대작가로 출품

 

1996

 

 

예술의 전당 기획, ‘21세기 아름다운 공룡전’에 출품. 대한민국문화훈장 추서

   

2005

 

 

이영미술관 전혁림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 개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통영항'에 감명받아 작품 구매

 

1997

 

 

10월21일~11월 1일, 선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청작화랑에서 모정이 있는 그림전에 초대

   

2006

 

 

2월 1일~10일, 마산문화방송 창사37주년 특별초대전 개최.

청와대 본관 인황홀에 <통영항>(2006년, 280x700cm)이 한국을 상징하는 의미로 설치.

8월31일~11월 3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의 거장-전혁림 특별전’이 학술 세미나와 함께 개최

 

1999

 

 

부산 공간화랑에서 초대개인전 개최. 마산 MBC문화방송 창사 30주년 기념 초대전 개최

   

2007

 

 

통영시 초대 전혁림 특별전 5월 15일~ 5월 31일 통영시민문화회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전 ‘전통과 현대사이’

 

2000

 

 

일맥문화상(부산 일맥문화재단)을 수상. 경남 국제조각 심포지움에 경남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회장으로 추대.

프랑스 유네스코 미로미술관 기획 ‘한국빛깔의 신비전’에 초대

   

2008

 

 

월간 미술세계 창간24주년 초대전 ‘정년은 없다’ 출품 11.26~12.2(인사아트센터)

       

2009

 

 

서울국제아트페어(삼성코엑스 전시장)

제6회 ‘이동훈 미술상 수상작가’ 초대전 개최, 대전시립미술관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경남본부장 김충남 , 촬영/정리 홍경찬 기자 cnk@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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