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하석홍 초대전 《돌로 그린 화가의 세상》,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
[전시리뷰] 하석홍 초대전 《돌로 그린 화가의 세상》,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4.20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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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4.14~4.30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 기념전
하 작가 “나만의 취향과 내공 담을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2022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한 하석홍 작가 개인전이 관훈갤러리에서 개최되고 있다. 《돌로 그린 화가의 세상》이란 제목의 전시는 지난 14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오는 23일 오후 3시에는 갤러리에서 시상식이 개최될 예정이다.

▲붉은 돌 팽나무 앞 하석홍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붉은 돌 팽나무> 앞 하석홍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김진엽)은 2009년부터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제정해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보다는 뛰어난 예술성과 창작력을 가진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다. 역대 수상자로는 2009년 제1회 정현(조각), 제2회 석철주(한국화), 제3회 민병헌(사진), 제4회 이배(서양화, 설치), 제5회 왕렬(동양화), 제6회 이길래(조각), 제7회 문봉선(동양화), 제8회 김정명(조각), 제9회 권여현(서양화) 제 10회(수상자 없음) 제11회 김길후(서양화)가 있다.

하석홍 작가는 1962년 제주 태생으로, 동인미술관 4인전(1983), 觀點동인멤버(1991), 예술의전당기획 국제환경예술제 ‘맨발로걸어보세요’(2003), 부산비엔날레 ‘자연을 밟는다’(2006)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제주 현무암을 모티브로 한 ‘夢돌’을 특수 제작해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작업에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몽돌로 장식한 돌자동차를 제작해 다양한 작품의 성과를 보여줬다. 특히, 2019년부터는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자예술섬 프로젝트 책임 작가를 맡아 공공미술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석홍 대표작
▲하석홍 대표작 <夢돌>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하석홍만의 ‘돌’을 표현

지난 19일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전시장을 찾은 하석홍 작가를 만나봤다. 관훈갤러리 2,3층에는 최근 하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박우찬 위원장은 하 작가 작품에 대해 “그의 몽돌은 제주도를 만들어낸 불의 돌로, 생물의 화석과 제주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역사의 돌로, 돌 자동차를 만드는 문명의 돌로, 무한한 상상 세계를 펼쳐내는 상상의 돌로 변신한다”라며 “최근 그의 돌 작업은 새로운 가상현실의 세계, 돌들에 대한 발칙한 명상으로 확장하고 있다”라고 이야기 했다.

하 작가에게 ‘돌’은 주요 소재다. 왜 하필이면, ‘돌’을 택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하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어봤다. 그는 자신이 제주도 태생임을 밝히며,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돌로 작품을 시작하게 됐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하 작가는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고 싶었고, 내 취향과 내공이 드러나는 작업을 완성하고자 했다”라며 작품으로 지향하고 있는 점을 설명했다.

▲하석홍 대표작 <돌자동차>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돌’이라는 소재 자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꽤 여러 작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소재다. 하 작가가 택한 ‘돌’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 작가는 “나는 ‘돌’에서 반전이 있는 작업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 작가의 작품에서 돌은 돌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돌의 물성에서는 벗어나 있다. 그의 대표작인 <몽돌(夢돌)>은 지구상의 중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공중에 떠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 작가는 이에 대해 “만화적인 상상력이 기반됐다”라고 얘기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돌자동차>는 몽돌로 장식한, 말 그대로 돌 자동차의 모습을 한 작품이다. 작가는 지구 위에 ‘천자의 수레’를 구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그리고 구현된 하 작가의 돌 자동차는 돌을 뚫고도 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실세계의 규칙은 벗어난 채 하 작가가 구현한 우주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당시 작업을 했을 때, 수소자동차나 그린에너지 자동차들이 나오면서 모든 자동차들이 가볍고 날렵함을 추구하고 있을 때였다”라며 “‘그것을 꼭 따라가야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서 자동차가 돌을 들이받고 돌 옷을 입고나온 형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라며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갤러리 전시작, 하석홍 <붉은 돌 팽나무>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반전을 추구하는 작품

하 작가의 작품은 ‘꼭 그래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는 듯하다. 하 작가는 제주 현무암을 모티브로 한 특수 제작된 돌 설치물로 작품을 펼쳐왔다. 그리고 그는 최근 설치 미술에서, 회화와 건축 장르까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관훈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에 하 작가는 ‘돌’을 소재로 한 회화 작품과 건축 기법을 토대로 한 설치 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돌’을 소재로 하고 있는 평면 회화 작업인 <테오리아>라는 동명의 작업은 돌의 표면을 그대로 화폭 안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하지만, 그 형체가 단순히 돌로만 보이지 않는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있고, 하나의 형체인 듯 아닌 형태는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의 다양한 것들을 연상시킨다.

테오리아(theōriā)는 관상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이론’을 나타내는 theory(영어), théorie(프랑스어) 등의 어원이다. 특별히 <테오리아>라는 제목을 붙인 데에 있어서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하 작가는 “돌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다른 형체가 나타난다”라며 “돌을 소재로 계속 작품을 해오고 있는데, 돌의 파장을 바라보게 됐고 그 파장이 우주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됐다”라며 작품 창작 과정의 이야기를 전했다.

▲갤러리 전시작, 하석홍 <테오리아>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테오리아> 작품 중에는 작은 불꽃들이 점점이 번져 있는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은 제주도 영험한 산에 무당들이 기운을 받으려 제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무당들은 제를 올리며 바위 위에 초를 하나씩 피워두는 데, 하 작가는 그 모습을 가져와 화폭 위에 표현했다. 그림이 돌 위에 있는 촛불이라고 빠르게 인식할 수는 없지만, 그 불빛이 가진 안온함은 관람객들에게 따뜻하게 전달된다.

하 작가는 “이 작품으로 보는 이들에게 안정과 안녕같은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라며 “이 작품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저 불빛들을 다 내 손가락 지문으로 찍어 그렸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하 작가는 이후 기회가 된다면, 실제로 손으로 피워내는 불꽃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해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돌’을 소재로 한 하 작가의 회화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지점은 페인팅으로 구현한 돌의 질감 표현이다. 전시장에서 하 작가의 회화를 만나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그림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돌의 우둘투둘한 질감과 돌의 결이 굉장히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어, ‘물감에 실제 돌가루가 섞여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갤러리 전시작, 하석홍 <테오리아>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하 작가는 “작품을 만지면 안 되지만, 가끔 관람객들에게 한 번 회화 작품의 표면을 만져보라고 할 때가 있다. 작품 표면을 만진 이들은 아주 깜짝 놀라곤 하는데 아주 매끄럽고 얇은 겹으로 회화가 완성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돌의 질감을 그대로 담고 있는 평면 회화 작업에서 하 작가는 자신만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먼저 돌가루는 일절 들어가지 않는 완벽한 물감 작업으로 작품 표현을 완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두껍고 거칠 것 같은 표면을 오히려 아주 얇고 섬세한 작업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하 작가는 반전과 일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평범하게 흐를 수 있는 길에서 자신만의 전환을 추구하는 작가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었다.

▲갤러리 전시작, 하석홍 <명상의 방>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돌 안의 공간을 탐구하다

회화 작품과 함께 선보이는 하 작가의 새로운 신작에는 <The house of the rising>, <고흐의 방>, <명상의 방> 등 돌 속에 공간을 만든 설치 작품들이 있다. 겉에서 봤을 때 이 작품들은 그냥 묵직한 돌의 형태지만, 작품에 있는 유리창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갤러리 전시작, 하석홍 <명상의 방> 내부 모습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특히, <The house of the rising>은 실제 7층 높이의 집을 20분의 1 사이즈로 축소해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 이러한 건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 작업인 것이다. <The house of the rising> 작품 안에는 민병훈 영화 감독이 작업한 영상이 재생되는데 이 영상에는 상공에서 내려다 본 하 작가의 모습이 담겨있다. 마치 돌 안의 공간이 다시 한 번 깊어지는 느낌을 자아낸다.

<The house of the rising>은 하 작가의 청년 시절의 감성이 집약돼 있는 작품이다. The Animals(애니멀스)의 노래 ‘The house of the rising sun’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그 당시 하 작가가 가지고 있었던 감성과 노래 안에 담겨있었던 감성을 응축해 공간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작가는 현실 세계의 방을 돌 안에 가두거나, 돌 밖에 없을 돌 안에 공간을 창작하면서 반전의 포인트를 짚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갤러리 전시작, 하석홍 <The house of the rising>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주류의 방향 각도를 아주 조금 바꾸는 힘이 되고파

하 작가는 “상을 받아서 즐거운 마음이다”라며 “내게 미술 쪽에서 상을 받는 것은 꽤나 큰 의미가 있다”라고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 소감을 전했다. 하 작가는 “요즘 미술계는 상실감이 있는 때인 것 같다. 내공을 쌓아서 자신만의 작품관을 펼치는 것이 맞는가, 상업을 추구하는 것이 맞는가, 고민이 많이 들려온다. 이런 때에 간간히 얼굴을 알리면서 자신의 길을 밀고오던 작가가 기록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주류 화단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어볼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란다”라고 뚜렷한 자신의 주관을 전했다.

▲하석홍 작가 (사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공)

작가는 “작품은 망치면서 완성된다”라는 말을 했다. 잘하는 것보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근원의 모습과 날 것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짚었다. 남들이 지 않는 것, 남들과는 다른 것을 꾸준히 탐구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는 하 작가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세계보다 더욱 많은 세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설치미술에서 회화, 건축까지 넘어간 그의 세계가 앞으로 또 어떻게 대중과 미술계를 찾아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