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 노로! 오데 오데!”
“노로 노로! 오데 오데!”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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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섭 대기자

“노로 노로! 오데 오데!......” 혹 이 말을 아십니까?
경상도 영천 경주 등의 지방에서 소를 부릴 때 쓰는 말입니다.

농부가 소를 몰며 논이나 밭을 갈 때 쓰는 말이지요. 소 모가지와 코뚜레에 멍에, 쟁기(훌찌), 이까리 등을 연결한 농부가 이까리를 툭툭 치며 “노로! 노로!”하면 소가 왼쪽으로 돌아 쟁기를 끕니다. 농부가 이까리를 살짝 살짝 당기며 “오데! 오데!”하면 소가 오른쪽으로 돌며 쟁기를 끕니다. 소와 농부가 소통하는 언어가 바로 “노로 노로! 오데 오데!”인 것입니다.

소가 가축으로 길들여져 인간과 함께 한 것이 기원전 6000년 전 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지금부터 약 8000년 전 쯤의 일입니다. 신석기시대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렵생활을 하며 떠 돌던 인간이 농사를 깨우쳐 정착생활로 들어간 것을 신석기 혁명이라 고 하는데, 소는 바로 신석기 혁명시대 노동력과 생산력을 배가시킨 주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신라 지증왕(서기 437~514년)때부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 1500년 전부터의 일인 셈입니다. 신라의 서울인 경주와 그 인근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 차츰 전국으로 퍼져 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까지 경상도 경주와 영천지방에서 농부들이 쓰고 있는 ‘노로 노로!’와 ‘오데! 오데!’란 말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사람과 짐승의 소통을 열어 준 가장 오랜 말이 아닐 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말은 소를 최초로 길들여 부려 먹기 시작했던 서남아시아나 인도 쪽에 어원을 두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와 인간의 소통어 가운데 또 하나가 ‘이랴! 이랴!’입니다. 소 코뚜레에 메어 연결한 이까리를 당겼다 놨다 하며 “이랴! 이랴!”하면 소는 재빨리 알아듣고 걸음을 빨리 합니다.

어린 시절 여름날 고향마을에서 소 먹이러 갈 때나 들에 나갈 때 짖궂게 소를 모는 아이들은 일부러 이까리를 툭툭 치며 “이랴! 이랴!”하고 소를 후쳐 봅니다. 말을 알아듣고 따라주는 소가 너무 신기해 소 모는 아이가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워~! 워~!”하면 소는 또 신기하게도 멈춰섭니다. 뚝 멈춰 서서 순진무구한 눈꽈리를 멀뚱멀뚱 거립니다.

한 갈래로 쩍 갈라진 발굽의 네발 짐승이 그 큰 덩치와 대가리와 엉덩이와 꼬리를 휘저으며 건충 건충, 황소 불알을 덜렁이며 걸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지요.

소가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은 특유의 유순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를 땅쪽으로 향해 가로서기로 걷는 소의 눈에 똑바로 서서 직립으로 걷는 사람이 자기 보다 크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덩치가 작은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직립한 인간의 키 높이 때문에 소의 눈에는 자기보다 크게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소를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쌍눈섭 밑에 멀뚱멀뚱 거리는 소의 눈빛은 한없이 선량하며 순진무구합니다. 아무 생각없는 무상무념의 경지가 그곳에 어립니다.

가끔 송아지를 갓 떼어낸 어미소의 “음머~!”하는 소리나 어미소를 찾는 송아지의 소리는 애절하게 들립니다. 감정이 없는 듯한 소 눈빛이지만 그들도 분명히 감정이 있습니다. 주인을 위해 호랑이와 싸우다 죽은 황소 이야기가 시골 지방에 상당수 있습니다.

쇠죽을 끓여 구유에 갖다 주면 좋아라 하며 고개를 흔들고, “웨엑~!”소리지르며 기분을 표현합니다. 주인을 몰라보는 것 같지만 나무 그늘에 메어 놓은 자기 집 소 옆을 지나가면 멀뚱멀뚱 쳐다보며 아는 체도 합니다. 산에서 소를 풀어 먹이다가 가끔 잃어버리면 해진 뒤 스스로 알아서 주인집을 찾아오기도 합니다.

깊은 겨울 밤 마구간에서 들려오는 소의 큰 숨소리 “푸우~”하는 소리는 주인 집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여름날 앞산 뒷산 할배 산소부근 소나무 숲에서 풀 뜯는 소의 요롱 소리는 소 먹이는 아이에게 “내 여기 있다” 하며 들려주는 신호음입니다.

그 소를 위해 꼴망태 가득 가득 꼴 베어 담은 아이의 마음은 행복합니다. 몰고 가던 소가 물이 먹고 싶음을 알아차린 아이는 물가로 소를 인도, 맘껏 물을 먹게 배려합니다. 뻑뻑 물을 빨아들이는 소를 보며 많이 행복했습니다.

2009년 기축년 소의 해에 우리 옛집 소가 없이 그립습니다. 온갖 어두운 소식들이 들려오지만 소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소를 추억하며 한시름 놓습니다. 노로 노로, 오데 오데 하며 소 모는 농부 생각에 용기도 냅니다. 그 소통어 따라 우직스게 밭을 가는 소처럼 우리들의 삶의 밭도 가꾸어 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