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1)이강소 작가 "장자의 ‘나비의 꿈’을 현대물리학의 기운생동으로 표현"
[Special Interview] (1)이강소 작가 "장자의 ‘나비의 꿈’을 현대물리학의 기운생동으로 표현"
  • 이우상 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22.11.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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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개념, 주관, 정신이 기운으로 서 에너지로서 그 프로세스 전달
사진과 조각이어 설치미술까지 전방위적 작품 활동
내년 국현과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70년대 작가 중심으로 중요한 의미

망양(罔兩)은 노장철학의 한 축인 장자에 나오는 말로 그림자의 그림자를 뜻한다.

“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까 그대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아까 그대는 앉아 있더니 지금은 일어섰구려. 어찌 그리 지조가 없소?”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의지하는 몸뚱이가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의지하는 몸뚱이가 또다시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의지하는 몸뚱이가 본체인가 아니면 허물 벗는 나비나 매미같이, 몸뚱이의 본체는 따로 있는 것인가 하며 존재의 근원에 대해 장자는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인터뷰에 응하는 이강소 작가

이강소 또한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가상의 현실이 아닌가 하며 묻고 또 묻고 있다. 그는 현대물리학의 새 물결인 양자역학 이론이 그의 동양사상과 어울려 일어나는 「기운생동」의 에너지를 화면에 드러내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작가 피스톨레토의 “거울페인팅”이 시사하듯 서양미술사의 흐름도 환영과의 씨름이었고, 실재에 가까운 그림을 위하여 경주한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강소 또한 “실재가 과연 있는가?” 하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며 실재와 환영을 모두 그의 기운생동 에너지에 녹여 화면에 풀어내고 있다. 그의 이 기운생동 에너지는 그가 끊임없이 연구하는 양자역학에 의해 더욱 단단히 응축되어 작가의 필력에 가미된다.

이강소 작품의 근원적 흐름은 「없음(無)」이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을 떠난 차는 경기도 안성의 이면도로를 한참 달린 후 작가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안성의 이면도로는 그야말로 지방의 정겹고 포근한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작업실은 수목이 둘려있는 넓은 장원 안에 있었다. 정문을 지나자 곧 작가의 작업실과 거실이 있고,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이 있는 언덕길 너머 제2, 제3의 작업실이 있었다. 이사 온 지 30년이 됐다고 한다.

서울에서 작업실 운영하다 보면 월세도 비싸고, 작품이나 물건들이 불어나면 감당이 안 돼서 아예 시골 넓은 곳으로 왔다. 임야와 밭이 있고 논도 있는 야트막한 산이었는데, 처음에는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 속에서 생활하고 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비나 눈이 오면 불편한 것이 많아서 12년 전부터 조금씩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작가가 자라 온 환경이 이러한 시골과 비슷했고, 어릴 때 외가가 있는 대구 비설 산 아래에서 소도 타며 시골 생활을 했었기에 도시보다는 시골이 편하고 익숙하다고 한다.

▲이강소, 무제 91191, 캔버스에 아크릴 130.3x162cm, 1991 (사진=작가 제공)

젊었을 때 미술실험을 많이 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이미 앵포르멜이 유행했고 그게 워낙 영향이 커서 4학년 때까지 앵포르멜을 했다. 4학년 때 미국 미술이 팝아트나 옵티걸아트(Optical Art)로 변화하며 전개되었고, 그때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 등이 정상을 이루며 마지막 단계까지 갔는데, 캔버스에서는 학생들이 빗자루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이 예술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전통적인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서구 근대미술을 배워왔는데, 빗자루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됐으니 ‘이제 회화는 막장이다’ 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더 나올까 하고 고민 들 하고 있었다. 현대미술이 이렇게 충격적으로 변화해 오는데 우리가 이렇게 수용만 할 것인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했던 시기였던 그 무렵에 우리 세대의 서울대와 홍대 몇몇이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70년도에 설립된 AG(아방가르드) 그룹에 71년부터 참가했고, 그 후 10여 년간 대구, 부산, 광주, 전주 등 전국의 도시를 다니며 현대미술제를 개최해 나갔다.

그 결과 현대미술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나가서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는데, 그 10여 년 동안의 영향이 한국 미술을 거의 현대미술화 했다고 나는 보고 있다. 물론 완성도는 우리가 논할 수 없지만, 작가들 각자의 열정과 다양함을 나는 대단히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미리 말해 두지만, 우리나라에 지금 단색화라는 어정쩡한 단어로 불리는 애매한 미술 장르가 있는데, 비평가들이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고 본다. 70년대의 미술은 상당히 다양했는데 앞으로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색화가 서구의 모노크롬과 관련이 있나?

글쎄. 모노크롬의 역사는 따로 있지 않나? 서구에서도 그렇고, 러시아로부터 이브 클라인에 이르기까지 모노크롬과 미니멀의 역사는 따로 있다고 본다. 서구의 미술이 상당히 주관적으로 세계를 보는 시각으로 흘러 왔기 때문에 그것을 교정하기가 매우 어렵게 돼 있다.

그러니까 서구 근대라는 것이 개념화되어 세계를 생각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미니멀이나 모노크롬이나 계속 존재론을 끌고 오는데, 존재론 자체가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니멀에 있어서 반복의 회화가 있고 반복이라는 것이 개념적인데, 개념은 설정이지 실재는 아니다.

역사적으로는 개념예술가도 소중하지만, 지난 세기 동안 과학이 전개한 세계관에 비하면 그것은 19세기 이전의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큰 변화를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수정하지 못하고 있다. 관습에 젖어있는 존재론이 현대미술이나 음악에 가장 장애가 되는 사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념미술은 어려운 말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의 시각으로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겠다.

우리가 미니멀이나 반복의 회화나 이런 예술들이 실재한다고 개념적으로 규정짓고 있는데,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 축적된 개념 즉 믿으려고 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있는 것이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이미 증명했다. 우리는 시간은 시간대로 장소는 좌표대로 특정해서 언제 어디에 있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게 실은 실재가 아니고 가상이다. 개념으로서의 존재이며 가상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이나 양자역학이나 과학은 지난 세기 초부터 실재라는 것을 전부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있고 대상이 있고 목적이 있는 그런 게 아니라, 세계는 생물, 무생물이 전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 입자는 다 살아있고 움직이며, 이 세포들과 입자들이 협력해서 서로를 이루며 끊임없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 이것이 유기론적 세계관인데, 서구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대비하는 학자도 있다.

반면 동아시아의 세계관은 내가 세계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만물이 연결되어 합일하는 유기적인 세계관으로 변천해 왔는데, 이것이 현대물리학의 방향인 것이다. 이제 현대미술도 유기적인 사고로 변화해야 하는데, 작가들은 거의 일세기 이상 접근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근대 서구의 정신을 그대로 답습하며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작업실을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강소 작가와 이우상 평론가

사고의 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그러니까 따로 떨어져 있고, 내 주체가 확실히 있다기보다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맞다.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주에 연결돼 있다는 좋은 사고를 왜? (웃음) 서구 사람들은 그것을 요가 등을 통해 접근하기도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기에 훨씬 쉬운 위치에 있다.

서구사상이 채움의 목적이 있다면 동양의 사상은 비움의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하나?

채우는 것 그게 하나의 기계론적인 사고이다. 여러 가지 지식을 모아서 논리화하고 개념화하는 이것이 기계론적으로 세계를 보는 구조인데, 비운다는 것은 어울린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미니멀이나 반복의 회화라는 것이 자꾸 반복하다 보면 나를 잊게 된다는 것인데, 잊게 되면 그것이 상승이 되어 동아시아에서 이야기하는 득도의 경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그냥 다 잊었다는 방법만 보여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득도하면 득도의 수준을 보여줘야 하는데 방법만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은 단지 개념이다. 서구 작가들이 거기서 많이 막히는데, 물론 좋은 작가들도 있다. 싸이톰블리의 의 만년의 작품은 상당히 접근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작가들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자가 오기 전 작가에 관한 논문 2편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오광수의 평론이다. 그는 작가의 그림이 항상 미완을 지향한다고 평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미완을 지향한다는 코멘트가 아주 멋진 코멘트라고 생각하고, 이런 코멘트가 있었나 하고 되돌아본다. 잘 골라 주셨다. 서구적인 개념을 가지면 자기 개념에 맞는 것으로 완성을 한다. 자기 개념을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감정이입인데, 주관적인 회화라고도 한다. 작가의 주관을 표현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근대미술이 대개 그런 구조로 돼 있다.

그러나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아시아에서는 필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필력은 작가의 기운, 정신상태 이런 것이 에너지로서 화폭에 전달되는 것이다. 작가의 개념이나 주관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정신이 기운으로서 또 에너지로서 그 프로세스가 전달되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화면 위에 그려진 그림이나 글씨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입증하고 있다.

화면 위의 물감의 흔적이 곧 물감이나 먹의 입자인데, 이것이 살아서 관객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기운생동이라고 불려왔는데, 기 에너지가 살아서 주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 기운생동의 원리가 이미 현대물리학에 의해서 증명이 되고 있다.

▲이강소, 허 虛 Emptiness-13109, 캔버스에 아크릴 250x485cm, 2013
▲이강소, 허 虛 Emptiness-13109, 캔버스에 아크릴 250x485cm, 2013 (사진=작가 제공)

작가의 기운이라는 것은 작가의 감정이나 교양이나 지식이나 정서 같은 것을 의미하나?

그렇다. 작가와 연결되는 모든 구조를 말한다. 인체의 구조나 주변의 공기나 책상의 그릇이나 붓이나, 모든 것이 연관돼서 이뤄지는 프로세스이다. 산을 보라는 것이 아니고 산을 느끼라는 것이니 서구의 개념과는 아주 다르다. 그러니까 완성이 아니고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그림이 미완을 지향한다는 오광수의 코멘트가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럼 미완을 지향할 때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없는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프로세스이다. 완결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완성은 서구미술의 구조이고 기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은 완성과는 다른 차원이다.

본래 글씨와 그림은 ‘서화동체’로 뿌리가 같다고 한다. 작가의 그림도 동시에 글씨라고 볼 수 있나?

서예 붓이나 동양화의 붓은 긴데 서양 붓은 짧다. 묘사하기는 서양 붓이 좋은데 이 털이 긴 붓은 너무 민감하다. 동양의 붓은 신체와 정신이 함께 섬세하게 작용하는 구조라, 서양의 화가들은 긴 붓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긴 붓은 정신과 너무 잘 연결돼 있다. 어린아이가 선을 그린다면 우리가 잘 흉내를 못 내듯이, 이 긴 털의 붓은 득도하면 득도의 상태로 아니면 아닌 상태로 그리는 사람의 정신을 잘 드러내 준다. 그래서 붓이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할 부분이다.

70년대 아방가르드협회 그룹전에 설치작업 ‘여백’을 발표했다. 낙동강 주변의 갈대를 가져와 설치한 작업이다. 왜 이 작품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허(虛)』의 출발점이 되었나?

재작년에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할 때 재현했었다. 갈대를 세워서 시멘트 안에 다시 심고 흰 페인트를 뿌렸는데 하얀 갈대밭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때는 커다란 방의 반에 하얀 갈대밭을 고요하게 설치했다. 이때도 나에게는 세계는 환상이지 실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깊었다. 고향인 대구 옆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 주변에 늪이 있고 늪에는 갈대들이 자라고 있었다. 대구에 갈 때마다 그 풍경이 보였다. 여름에는 늪에 물이 고여 어린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놀고 있고, 겨울에는 물이나 갈대가 싹 마른다. 그 싱싱한 갈대들이 지나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내 모습도 달라져 있었다.

거기서 가상현실을 느꼈나?

그렇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트럭을 갖고 가서 갈대를 베어 학교 미술실에 심었다. 그것을 경복궁 미술관에 출품했다. 하얀 갈대밭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다니는데, 사람이 다니는 것 같지 않고 내가 보기에는 영혼이 다니는 느낌이었다. 또 갈대의 성장이 멈춘 것이니 갈대의 시차를 느낄 수 있어서 나는 매우 좋았다.

그래서 『허』의 작품세계의 출발점이 되었나?

이때 이미 존재한다는 것에 의심을 품은 것이다.

불교의 공(空) 사상하고 연관성이 많다. 공(空) 사상이 우리가 보는 것이 다 실재가 아니며 진여(眞如)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학생 때 방학 중에 절에 들어가서 한 달간 묶은 적도 있고 어떤 때는 교회 창문을 통해서 목사님 설교를 들은 적도 있다. 종교는 없다.

▲이강소, Becoming-16-C-032, 42x39x25cm,세라믹, 2016
▲이강소, Becoming-16-C-032, 42x39x25cm,세라믹, 2016 (사진=작가 제공)

73년 명동화랑에서 작품 ‘소멸’을 발표했다. 퍼포먼스 작품인가, 아니면 회화작품도 있나?

회화는 없고 그냥 술집 차린 것이다. 그 당시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곳이 명동화랑 밖에 없었다. 명동화랑이 명동성당 앞에 있었는데 거기서 그룹전을 했다. 내 작품에 관심이 있었던지 명동화랑이 종로경찰서 앞으로 옮긴 뒤에 초대를 해줬다. 첫 초대전이라 고민을 많이 했다. 오픈 날짜는 다가오고 어쩔 줄 몰랐는데, 그 1-2년 전에 내 작업실에 친한 선배가 찾아와서 포장마차에 모시고 가서 막걸리와 점심을 대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탁자 위에 담배꽁초, 냄비 등이 널려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매일 닦아서 반짝반짝했다. 의자도 담배꽁초도 찢겨있고 이게 완전히 골동품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술 먹고 대화하는 소리가 와글와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선배를 봤다. 나는 선배를 보는데 선배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가? 또 나는 선배를 보는데 정작 나 자신은 못 보고 있으니 이건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있었지만, 실제는 서로의 시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봤던 시각이 달랐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 수만큼 존재하고 사람 수의 경험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떤 게 확실한가 했을 때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존재한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맞다 는 생각이 내 마음을 때렸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이, 존재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깨끗한 화랑에 대폿집을 일주일간 차리게 됐다. 일주일간 각자 돈 낼 사람은 돈 내고 막걸리를 사 먹고 그랬다.

왜 작품 제목이 ‘소멸’인가?

여기 있던 것들의 존재가 모두 없어지고 망각이 될 테니까 소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소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의 작업 전체의 모든 흐름은 「없다는 것」이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