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메시앙, 20세기 음악의 성자 <투랑가릴라> 교향곡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메시앙, 20세기 음악의 성자 <투랑가릴라> 교향곡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11.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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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은 음악에서 인간이 사라진 20세기에 인간을 되살려 놓은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불안의 시대’인 20세기의 판도라 상자에서 맨 마지막에 튀어나온 ‘희망의 음악’이다. 

이 세상에 음악이 없다면? 지금까지 들어 본 음악이 아무 것도 없다면? 이 백지 상태는 메시앙의 음악을 듣고 매혹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음악의 틀로 메시앙 음악을 이해하려 들면 미궁에 빠진다. 그의 음악은 복잡한 설명보다 아기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서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아주 매혹적이다. 메시앙 자신은 이론적인 분석보다도 '청각의 처녀성'을 갖고 들으면 될 거라고 얘기했다. 그의 음악에서 베토벤이나 말러나 차이코프스키를 메시앙에서 기대하면 실망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메시앙 본인의 얘기대로 아무 편견 없이 귀를 열고 마음을 맡기면 어려울 게 없다. 

메시앙은 "육감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번쩍거리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피, 미지의 향기, 깨어있는 새, 스테인드 글래스 속의 음악, 신의 편재, 초자연적 신비를 표현한 음악"이며 결국 "신학적인 무지개"라는 것이다. 그에게 모든 화음은 색채로 나타났다. 평생 저버린 적이 없는 깊은 카톨릭 신앙과 ‘색채의 음향’이 결합되어 나온 게 그가 말하는 ‘신학적 무지개’였다. 그의 음악적 이상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의 피아노 사운드는 물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들리고, 거친 관현악의 질주는 천진한 아기가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메시앙은 “육감적일 정도로 번쩍거리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신학적 무지개’이며, “새로운 피, 미지의 향기, 깨어있는 새, 신의 편재, 초자연적 신비를 표현한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힌두의 리듬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 언어를 만들었다. 그는 이것을 ‘역행할 수 없는 리듬’, ‘철저한 대칭으로 완결된 리듬’이라고 불렀다. 초현실적 에너지로 충만한 그의 음악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환희를 표현하며 폭발적인 긍정으로 끝나곤 한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1931년 파리 성 트리니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된 뒤 1992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몽마르트르의 검소한 집에서 작곡을 하고, 파리음악원에서 가르치고, 일요일이면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지휘자 정명훈은 메시앙을 ‘음악의 성자’라고 불렀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1975~83)의 한 대목은 그의 음악관을 집약해 들려준다. “주여, 진리가 없을 때 음악과 시는 나를 그대 앞에 데려왔습니다. 그대의 눈부신 진리 앞에 영원히 서 있게 해 주소서.” 그는 성 프란체스코를 친구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성 프란체스코는 나환자에게 입맞추고, 음악천사들을 만나고, 새들과 대화하고, 고통스러운 기쁨 속에서 죽는다. 마지막 합창은 이렇게 노래한다. “고통, 나약함, 수치를 딛고 그는 일어선다. 힘, 축복, 환희 속에…” 찬란한 금관, 떨리는 옹드 마르트노, 미친 듯한 글리산도, 폭포처럼 쏟아지는 종소리와 징소리…. 그것은 부정의 부정, 죽음의 죽음, 곧 삶의 긍정이다. 신앙 문제가 화제가 되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연주회장에, 바다에, 산에, 심지어 지하에도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메시앙은 카톨릭 신앙을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이러한 신앙은 그의 모든 음악에 배어 있다. 하지만 신앙을 떠나서 그의 음악은 보편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 인격신을 믿지 않는 나같은 사람도 그의 음악에 열광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이제 메시앙은 “그의 음악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연주되지 않는 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1941년 나치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초연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죽음의 시대에 희망을 던진 걸작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가 연주한다. 이 작품이 탄생한 감동적인 스토리는 졸저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에서 얘기했으므로, 여기서는 그의 기념비적인 관현악곡 두 곡을 소개하고 싶다. 교향곡 <투랑갈릴라>와 관현악 모음곡 <협곡에서 별들까지>다. 

1949년 초연된 <투랑가릴라> 교향곡은 산스크리트 말로 사랑을 뜻하는 ‘투랑가’와 노래를 뜻하는 ‘릴라’, 두 단어를 합친 ‘사랑의 노래’다. 이 곡은 ‘운동과 리듬’이자 ‘삶과 죽음의 성스런 놀이’다. 시간은 천방지축 말처럼 달리거나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리며 현기증 나는 초인적인 환희를 노래한다. 이 곡은 ‘환희의 송가’이기도 하다. 메시앙은 말했다. “이것은 초인적인, 흘러넘치는, 눈멀게 하는, 끝없는 환희다. 사랑도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 치명적인, 거역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 자기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사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미약으로 상징되는, 그런 사랑이다.”

피아노와 옹드 마르트노 및 대편성의 관현악을 위한 이 교향곡은 모두 10악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동상의 주제’, ‘꽃의 주제’, ‘사랑의 주제’, ‘화음의 사슬’ 등 네 개의 순환주제가 등장한다. 피아노 솔로에게 엄청난 힘과 기량을 요구하며, 음악이 폭발하는 순간마다 옹드 마르트노가 인상적인 고음으로 노래한다. 거대한 타악기군은 ‘오케스트라 속의 오케스트라’로, 인도네시아 발리의 가믈란 음악처럼 찬란한 효과를 낸다. 보스톤 심포니의 위촉으로 작곡하여 1949년 12월 2일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보스톤 심포니가 초연했다. 피아노 솔로는 메시앙의 두 번째 부인 이본느 로리오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