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메시앙, 20세기 음악의 성자 <투랑가릴라> 교향곡 Ⅱ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메시앙, 20세기 음악의 성자 <투랑가릴라> 교향곡 Ⅱ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12.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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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1악장 ‘도입’은 ‘동상의 주제’와 ‘사랑의 주제’를 제시한다. 피아노의 카덴차에 이어지는 후반부는 다양한 리듬을 복잡하게 쌓아 올려서 걷잡을 수 없는 힘을 발산한다. 2악장 ‘사랑의 노래 1’은 트럼펫이 열정적인 첫 주제를 연주하고 옹드 마르트노와 현악이 부드러운 둘째 주제를 연주한다. 3악장 ‘투랑가릴라 1’ - 4악장 ‘사랑의 노래 2’에 이어 5악장 ‘별들의 피의 환희’는 엑스타시 속에서 외치는 소리다. 

6악장 ‘사랑의 잠의 정원’에서 사랑하는 두 연인은 사랑의 잠에 빠져 있다. 그들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정원이 에워싸고 있다. 이 정원은 빛과 그림자, 나무와 새로 핀 꽃, 멜로디를 노래하는 밝은 빛깔의 새들로 가득 차 있다. 7악장 ‘투랑가릴라 2’는 고통과 죽음을 표현한다. 8악장 ‘사랑의 전개’에서는 모든 주제가 다 등장하여 강렬한 환희에 도달한다. 교향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9악장 ‘투랑가릴라 3’은 다양한 타악기가 활약하는 변주곡이고 10악장 ‘피날레’는 ‘사랑의 주제’가 종횡무진 살아 춤추며 기쁨의 함성으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 옹드 마르트노는 1928년 처음 등장한 전자악기로, 발명한 모리스 마르트노의 이름을 땄다. 매우 짙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한 번에 한 음표만 연주할 수 있지만 글리산도가 가능하다. 이 곡을 초연할 때 메시앙의 두 번째 부인인 이본느 로리오 여사가 피아노를, 그녀의 동생 잔느 로리오가 옹드 마르트노를 맡아서 참여했다.  

나는 이 곡을 대학 초년이던 1978년에 처음 들었다. 당시 서울음대 이강숙 교수께서 학생회관 음악감상실에서 메시앙의 음악세계에 대해 특강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메시앙 음악을 대중에게 처음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새소리를 활용하여 음악을 만든다는 게 신기했고, 복잡한 리듬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흥미로웠다. 좀 더 들어보고 싶었지만 메시앙 음반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혹시나 하며 음대 시청각실을 뒤져 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메시앙 녹음 자료가 있는 게 아닌가! 보물 창고에 혼자 들어 온 심정으로 이곡 저곡 찾아서 들었는데, 앙드레 프레빈 지휘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투랑갈릴라> 교향곡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곡의 첫 느낌은 엄마 뱃속에서 천방지축 뛰노는 아기의 운동이었다. 나른하게 노래하는 옹드 마르트노, 기차 소리처럼 커졌다가 작아지는 드럼과 금관악기, 퉁명하게 내리꽂는 이름 모를 타악기, 이 모든 게 새로운 세계였다. 너무 천진난만한 느낌에 폭소를 터뜨리며 이 곡에 빠져들곤 했다. 

두 번째 소개할 <협곡에서 별들까지>(1974)는 피조물에 서려 있는 창조주의 장엄한 손길을 명상한 작품이다. 1970년, 뉴욕의 예술 후원자인 앨리스 털리는 메시앙에게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을 위촉했다. 메시앙은 미국 동부의 도시보다는 서부의 대자연을 찬양하는 작품을 쓰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그는 미국 유타주의 브라이스 협곡, 시더 절벽, 자이언 공원의 웅장한 풍경과 대담한 색채를 관찰하고 이 지역 새들의 노래를 들은 뒤 작곡에 착수했다. 모두 12악장, 연주시간 90분의 대곡으로, 지구의 사막과 협곡에서 하늘의 별들을 거쳐 천상의 도시까지 이어지는 신비의 여행이다. 

이 곡은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음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12악장, 연주 시간 90분의 이 대곡에서 피아노는 호른 솔로를 위한 6악장을 제외하면 거의 쉴 새 없이 연주한다. 피아노 솔로 연주 부분만 30분에 육박한다. 이 곡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곡 전체의 거대한 구조를 붙들어 주는 일종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43명으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도 개성있고 탁월하다. 드럼에 모래를 채워 넣어 만든 '지오폰'(메시앙이 직접 발명)은 흙의 소리를 표현하며, 마우스피스를 사용한 트럼펫 소리와 결합한 바람 기계는 혹독한 바람 소리를 낸다. 첼로는 5악장에서 활로 브리지 아래를 문질러서 '푸른 들꿩'의 야릇한 소리를 낸다. 13명의 현악 연주자들은 모두 다른 파트를 연주한다. 

메시앙은 <세계의 경이>라는 책에서 유타의 협곡들에 대해서 읽고 상상력에 불이 붙었다. 그는 이 협곡들을 직접 보기 위해 유타를 순례한다. 종교적인 신념과 관계없이 대자연의 장관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 작품을 듣는 사람은 지구의 협곡에서 우주의 별, 그리고 하늘 저편 천상의 비전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메시앙과 함께 떠나게 된다. 

12개의 악장은 가운데의 두 악장을 중심에 두고 앞의 앞의 다섯 악장과 뒤의 다섯 악장으로 나누어진다. 1부는 1악장부터 5악장까지, 2부는 6악장과 7악장, 3부는 8악장부터 12악장까지다. 

1악장 ‘사막’, 여행은 미국 서부의 사막에서 시작한다. 위대한 신비에 직면해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이다. 2악장 <꾀꼬리>에 이어서 3악장 ‘별들에 써 있는 것’, 메시앙은 별들 사이의 우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서 그는 '창조주의 전능함'에 대해서 명상한다. 4악장 ‘흰눈썹 로빈새’는 피아노 솔로가 연주하는 아프리카의 흰눈썹 로빈새의 노래다. 5악장 ‘시더 절벽 - 경외의 선물’은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유타의 자연 풍경이다. 여기서 느끼는 경외의 감정은 신의 사랑을 이해하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간다.   

6악장 ‘별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는 호른 솔로 단 한명이 연주한다. 텅 빈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없고 오직 '동경'이 있을 뿐이다. 7악장 ‘브라이스 협곡과 붉은 오렌지빛 바위들’은 '지상의 경이'에 대한 명상으로, 전곡의 중심이며 가장 긴 악장이다. 

8악장 ‘부활한 자, 그리고 알데바란 별’은 별들 사이를 지나 영원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투명한 빛과 사랑 속에서 부활한다. 9악장 ‘흉내지빠귀’와 10악장 ‘개똥지빠귀’는 미국 동부의 새들을 통해 인간 영혼과 창조주의 손길을 엮어 주는 사랑의 끈을 발견한다. 11악장 ‘오마오, 라이오트릭스, 엘레파이오, 샤마’는 지상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하와이의 새들이다. 12악장 ‘자이언 공원과 천상의 도시’는 관현악의 웅장한 코럴과 피아노의 현란한 새소리가 교차하는 피날레다. 

2002년, 미국 LA에 석 달 동안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메시앙의 <협곡에서 별들까지>에 영감을 준 브라이스 협곡, 시더 절벽, 자이언 공원을 둘러보았다. 밤에는 자이언 공원 허허벌판에 차를 세우고 하늘 가득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다. 1시간 반 동안 계속되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향연, 그 소리는 저 우주로 날아가서 별들 사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