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뮤지엄 산 《안도 타다오-청춘》展 개막, “청춘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
[현장스케치] 뮤지엄 산 《안도 타다오-청춘》展 개막, “청춘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10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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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 오는 7월 30일까지
안도 타다오 설계 공간서 열리는 전시
초기 건축물부터, 안도 타다오 건축 미학 완성 과정 담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독학으로 건축을 배워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공고하게 다진 안도 타다오가 한국을 찾았다.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예술공간 뮤지엄 산(관장 안영주)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대규모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전시 덕분이다. 더불어 안도 타다오의 예술관을 들어볼 수 있는 강연 <꿈을 걸고 달려라>도 운영돼, 안도 타다오를 기다린 많은 대중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안도 타다오의 청사과(파란사과)를 만지는 취재진들, 안도는 청사과를 만지면 1년 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안도 타다오의 청사과(파란사과)를 만지는 취재진들, 안도는 간담회에서 청사과를 만지면 1년 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리는 안도 타다오의 대규모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은 지난 1일 개막해 오는 7월 30일까지 개최된다. 지난달 31일에는 전시 개막 전 안도 타다오가 참석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선 안도 타다오의 건축과 뮤지엄 산과 작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언급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안도는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코드를 잃지 않으며,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관을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안도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이자, 한솔그룹 고문이었던 故 이인희 선생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뮤지엄 산’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건립됐는지 설명했다.

안도는 “이인희 선생이 뮤지엄 산 공간을 의뢰하면서, 전 세계에 어는 곳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곳은 서울에서 장장 2시간이 떨어진 곳이고 산골짜기에 있는 지역이다.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든다 해도 누가 찾아올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선생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게끔 만드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좋은 작품과 재미가 있으면 관람객을 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믿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연간 2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선생님의 의욕과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으면서, 잊었던 느낌을 다시 떠올렸다. ‘이런 자연이 있었지, 그리고 정말 멀었지’ 그런 생각들이다. 앞으로 이곳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뮤지엄 산’과의 일화를 전했다.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는 안도 타다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뮤지엄 산(SAN)은 공간(Space) – 예술(Art) – 자연(Nature)을 결합해 만든 이름으로, 대자연속에 자리한 문화공간에서 예술의 향유를 통한 ‘힐링’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안도는 건축 초기 당시 “뮤지엄 산을 ‘살아갈 힘을 되찾는 장소’로 보여주고 싶었고 한솔그룹 故이인희 고문의 강력한 열망에 마음이 움직여 설계를 맡게 됐다”라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간담회에선 이번 개인전의 주제인 ‘청춘’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뮤지엄 산은 “전시 제목인 ‘청춘’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자 매일매일 더 나은 설계를 한다는 스스로의 신념이자 인생을 대하는 그의 ‘도전 의식’을 함축한다”라고 말한다.

안도는 “나에게 ‘청춘’은 어떤 특정한 시간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다. 미술관에 방문해서 사람들이 ‘청춘’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청춘’을 느끼는 방법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인데, 뮤지엄 산은 그런 지점에서 최적의 장소다”라며 “이번 전시에서 ‘파란 사과’를 선보였다. 그 사과를 만지면 1년 더 오래 살 수 있다. 많이 만지고 가서, 모두가 오래 살길 바란다”라는 유쾌한 덕담을 전했다.

▲1부 공간의 원형(Primitive Shapes of Space) 섹션을 투어하는 취재진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안도는 정규교육 과정 속에서 건축을 배운 인물이 아니다. 대학교, 전문학교에도 진학하지 않아 한국과 더불어 학력주의 사회인 일본에서 쉽게 자리 잡기 어려운 삶을 살았다. 안도는 학력이 없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여기에 병마도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올해 한국나이로 83세인 안도는 암으로 인해 담낭, 십이지장 등 5개의 장기를 적출했다. 간담회에서 안도는 자신의 삶은 계속 절망적인 인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담담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안도는 말했다. 평범한 루트를 밟아 정상으로 오르기보다 의지와 끈기로 삶을 개척했고, 그는 살아있기에 계속 도전하고 꿈을 꾸고 있었다. 안도는 “얼마 전 신(神)과 합의를 봤다. 20년 정도 더 살기로 했는데,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삶은 이 사회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 나는 지금도 매일 만보씩 걷고, 한, 두 시간 공부를 하며, 30분 씩 식사를 한다. 계속 청춘을 유지하며 살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길 바란다. 살다보면 즐거운 일이 있을 것이고, 나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계속 희망을 찾아나갈 것이다”라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말했다.

▲3부 ‘도시에 대한 도전’ 전시장 안도 타다오, 뒷편에 드로잉이 있다 (사진=뮤지엄 산 제공)

간담회에선 안도가 가진 건축미학인 ‘노출 콘크리트’, ‘빛의 활용’ 등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안도는 구체적인 답을 전하기보다 두루뭉술한 가치적인 측면의 답을 전했다. 안도는 “내게 빛은 희망이고, 콘크리트는 희망을 버티는 힘이다.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재료로, 아무도 만들 수 없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회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시에서는 ‘건축이란 무엇이며, 건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건축의 원점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건축이 지닐 역할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 나누는 기회를 마련한다.

전시는 ▲공간의 원형(Primitive Shapes of Space) ▲풍경의 창조(Landscape Genesis) ▲도시에 대한 도전(An Urban Challenge) ▲나오시마 프로젝트(Projects in Naoshima) ▲역사와의 대화(Dialogues with History) 등 총 5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1부 전시작, Kidosaki House, 1986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1부 전시작, Kidosaki House, 1986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1부 ‘공간의 원형’은 1969년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안도의 건축 작품을 선보인다. <도시게릴라 주택 프로젝트>로 다듬어진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빛과 기하학이라는 근원적 주제를 보여준다. 안도의 건축은 책, 철학적 사유, 여행을 통한 가치관 형성으로 완성된다. 2부 ‘풍경의 창조’는 풍경을 창조하는 도전 정신이 담겨있는 안도 타다오의 공공건축을 소개한다. 여기서 풍경은 단순히 조경이나 디자인과 같은 근시안적 의미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의 기억이 포함된 개념이다.

3부 ‘도시에 대한 도전’에서는 1970년대 도시 게릴라로 출발한 안도 타다오가 그 변함없는 도전 정신을 세계 공공 장소에서 어떻게 꽃피웠는지 그 결과를 소개한다. 9.11 테러 공간에 대한 재해석을 담은 <그라운드 프로젝트(계획안)>는 실제 실행되진 않았지만 계획안의 형태로 전시되며, 그의 계속되는 도전과 꿈을 표현한다. 이와 별도로 30년에 걸쳐 진행 중인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설치 공간이 마련된다. 1980년대 말, 안도 타다오는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를 ‘자연이 풍성한 예술의 섬’으로 재생시키기 위한 문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완성된 건축물로는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지중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밸리 갤러리 등이 있으며, 마스터플랜 없이 건축물을 늘려 나가는 안도의 방식은 마치 유기체처럼 진화하는 건축물의 풍경을 자아낸다.

3부 공간에서는 특별한 드로잉도 만나 볼 수 있다. 간담회 전 인터뷰에 응한 안도가 현장에서 남긴 드로잉이다. ‘예술의 힘’을 표현한 드로잉으로 문화, 공간, 사람을 모두 담고 있다.

▲Nakanoshima Project II - Urban Egg (proposal)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마지막으로 4부 ‘역사와의 대화’에서는 2020년 준공한 <브르스 드 코메르스 Bourse de Commerce>에 이르기까지 안도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안도 타다오는 자신의 건축을 개별이 아닌 다양한 상황이 입체적으로 개입된 문맥으로 접근한다. 그렇다 보니 안도는 스스로 건축 역사를 이어가는 일부분으로 여긴다. 그의 건축은 역사에 정착된 순간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과거에 현대의 장소성을 심는 문맥의 힘을 보여준다.

전시와 함께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한국의 프로젝트 코너가 마련된다. 본태 뮤지엄(제주,2012), 마음의 교회(여주,2011~2015), LG아트센터(서울,2022) 등 9곳이 소개된다. 이 곳의 미니어처들은 서울대, 중앙대, 강원대 건축학과 대학생들의 작업으로 완성됐다. 안도는 젊은 세대가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이번 전시에 담길 원했다.

안도는 간담회 끝에 일본과 한국의 교류에 대해서 짧게 언급했다. 그는 “50년 전만해도 아시아는 굉장히 절망적이었지만, 지금은 아시아가 가장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경제, 정치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한일의 문화적 교류는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미술관의 성장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을 만들었으면 계속 사랑하고 키워나가야 한다”라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