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가기 위한 ‘국립창극단’의 방향성 ①
[현장스케치]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가기 위한 ‘국립창극단’의 방향성 ①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12.12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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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국립창극단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지난 5일 개최
“창극단의 중심, 예술감독에서 배우로 이동”
“작곡과 구분되는 ‘작창’의 역할 인식 강조 돼야”
국립극장,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 통해 영상화 작업 본격화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1962년 창단한 국립창극단은 그리스 비극, 오페라, 뮤지컬, 셰익스피어 희비극, 웹툰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장르와 교류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립창극단이 제작하는 작품들마다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창극단원들에 대한 관심과 인기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에 국립창극단은 그동안 발표해 온 창극 작품에 대한 결실을 검토하고, 발전된 창극의 미래를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창극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며 필요한 과제를 발견하고,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5일 국립극장 하늘에서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인건 국립극장장,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서인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윤중강 음악평론가, 최혜진 목원대 교수, 한승석 중앙대 교수/작창가,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연출가, 송소라 고려대 연구교수, 김향 호서대 교수, 남인우 극단 북새통 대표, 박애리 전 국립창극단원, 이주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팀장, 이진주 서울대 강사 등이 참석했다.

▲2023
▲국립창극단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지난 5일 개최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창극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담은 이야기, 관객의 마음을 웃기고 울리는 울림과 몸짓을 통해 한국 고유의 음악극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립창극단이 있었다”라며 “이번 심포지엄에서 이뤄질 유의미한 논의를 통해 창극단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국립창극단이 전통적 소개와 새로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도약하기 전, 구석구석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며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첫 번째 세션은 윤중강 음악평론가, 최혜진 목원대 교수, 한승석 중앙대 교수/작창가,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연출가, 송소라 고려대 연구교수의 주제발표로 이뤄졌다. 

윤중강 평론가 “‘노래’와 ‘배우’ 잘 살릴 때 창극 존재 가치 빛나”

윤중강 평론가는 최근 10년간 국립창극단을 지켜보며 꾸준하게 이어온 작품비평을 통한 그간의 성과와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국립창극단이 국립국극단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겼던 1962년당시, 여성국극 멤버를 적극 수용했지만 여성 국극에서 벗어나 국극(창극)을 정립하고자 하는 이중적 아이러니에서 출발한 단체였다”라고 정의했다.

윤 평론가는 국립창극단이 대한민국 공연예술사에서 ‘상전벽해’를 이뤄낸 유일한 단체라며, 여기엔 두 여성 예술감독의 공이 컸다고 설명했다. 안숙선이 내실을 다졌고, 김성녀가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다. 국립창극단은 특히 김성녀 예술감독 취임(2012)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다양한 연출가들이 창극과 만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윤중강 평론가는 “김성녀 예술감독은 창극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본질적 질문과 동시대성을 바탕으로 한 양식적 질문, 두 가지 화두를 가지고 창극의 향방을 찾았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립창극단의 저력은 ‘단원’이라고 말하며 “국립창극단 단원들은 저마다 오랫동안 수련해온 판소리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이런 무기가 과거에는 창극의 범주 안에서만 존재했으나, 이제는 한국적인 새로운 음악극의 차원으로 성장하게 됐다”라며 “단원들이 장착한 ‘음악성’과 ‘연극성’은 앞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윤중강 평론가는 “과거에는 김연수, 허규, 안숙선, 김성녀처럼 예술감독이 브랜드가 됐지만, 이제는 창극단의 배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며 “‘백조의 호수’ 하면 ‘마고트 폰테인’이란 신화를 떠올리듯 ‘그 창극에 그 배우’의 등식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창극이란 장르를 떠나서, 국립창극단은 한국의 무대극에서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국립창극단은 판소리라는 강력한 매체를 바탕으로 고전 작품을 가져와 동시대성까지 충족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눈부신 발전에도 창극단 앞에 숙제들은 존재한다. 윤중강 평론가는 “대본과 연출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창극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가 부족했고, 한국의 전통예술을 제대로 알고 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출가가 드물었다. 결정적 한계는 창극의 음악이었다. 한쪽은 전통에만 편승했고, 또 한쪽은 너무 전통을 간과했다. 전자의 수성가락과 후자의 관현악 반주의 갈등 안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시기가 너무 길었다”라고 봤다. 창극은 한자로 唱劇이라고 쓰는 게 보편적이지만, 倡劇이라고 쓴 글도 있다. 입 구를 쓰는 唱이 노래 중심이라면, 사람 인을 쓰는 倡은 배우(광대)가 중심이 된다. 그는 “결국 창극이라 함은 ‘노래’를 잘 살리고, ‘배우’를 잘 살릴 때 존재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며, 국립창극단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가야 할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국립창극단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윤중강 평론가
▲국립창극단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윤중강 평론가

최혜진 교수 “창극술 가르치는 ‘창극아카데미’ 본격 활성화 필요”

최혜진 교수 역시 창극에서 배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역사와 배우론, 당면 과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최 교수는 “창극배우는 판소리 소리꾼이 가지는 광대의 자질 혹은 기량을 공유하면서도 전통을 기반으로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창극 배우로서의 정체성은 곧 우리 창극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주요한 요소가 되기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립창극단이 국가 기관으로 설립되고 명실공히 ‘배우’로서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여성국극시대를 마감하면서, 배우들의 소리 실력뿐만 아니라 연기력과 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도 점차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혜진 교수는 배우들을 세대별 시기로 나눠본다면 1세대 명창 배우시대(1962~1979), 2세대 창극 배우 시대(1980~1999), 3세대 스타 배우 시대(2000~현재)로 구분 가능하다고 말했다. 

1세대 배우들로는 김연수, 박동진, 김소희, 박봉술, 박초월, 남해성, 정권진, 강종철, 박송희, 박후성, 조상현, 오정숙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로서 극의 소리 지도나 도창을 맡으며 주연 배우로 출연했다. 1세대의 후배 혹은 제자들로 이뤄진 2세대 주연급 배우로는 안숙선, 조통달, 김연자, 윤충일, 은희진, 박후성, 김일구, 김종엽, 정순임, 왕기석, 유수정, 김성녀, 김학용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는 90년대까지 허규 중심의 창극이 연출되고 90년대 이후로는 전통에 기반한 신창극이 창작되는 등 작품과 연출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 2세대 배우들은 명창들로부터 소리를 배워 정통성이 있는 소리를 하면서도, 무대의 연기를 세련되게 소화해냈다는 것이 최 교수의 평가다. 3세대 배우들은 창극 배우를 넘어 스타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국립극장 단원이 대폭 증가하던 시기에 선발된 배우들로, 판소리를 전공으로 대학교육을 받은 세대들로 구성돼 있다. 김지숙, 박애리, 서정금, 남상일, 김차경, 이소연, 김준수, 유태평양, 민은경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창극을 넘어 다양한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한편, 팬클럽을 형성하는 등 스타 배우로서의 입지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창극의 레퍼토리면에서도 세계적인 작품을 창극으로 재창조하고, 창작 작품을 만들어 나가던 시기이므로 과거의 도창이나 전통 판소리 기량보다 ‘작창’과 ‘작곡’이 중요해졌고, 판소리 외에 다양한 음악이 창극 안에서 시도되고 있다. 최혜진 교수는 “이러한 창극의 대중화, 세계화 시대에 스타성 있는 배우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것이 국립창극단의 또 다른 실험”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창극의 배우들은 판소리는 물론 극적 연기와 표현력에 있어 그 기량을 인정받고 활약했으며, 소리꾼이 아닌 명배우로서 창극 배우의 정체성을 키워왔다”라면서도 “창극은 ‘음악극’이면서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소리 실력과 연기 실력이 모두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립창극단 60여 년의 역사 속 가장 주목할 만한 ‘배우’로 안숙선 명창을 꼽았다. 그는 “안숙선은 명창이나 배우, 예술감독, 작창가, 소리지도자 등 국립창극단에서 단연코 많은 역할을 가장 오래 해왔다. 1989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래 2021년 ‘흥보전’ 작창을 하기까지 창극의 긴 역사를 함께했다”라며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두 번 맡으면서 안숙선은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는 창극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단장 재직 시절, 젊은 신진 창극 배우들을 대거 채용해 미래의 창극을 이끌어갈 후진 양성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현재 창극단을 이끌어 가고 있는 중진 단원 대부분이 안숙선 단장 재직 시절 입단해 주역으로 성장한 배우들이라는 점에서 창극에 미친 영향이 크다”라고 평가했다. 

창극이 우리나라의 ‘민족적’ 음악극으로 갈 것인지, ‘보편적’ 음악극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고뇌와 실험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혜진 교수는 “전통시대의 배우ㆍ광대들은 집단적인 삶 혹은 가문의 형태로 예술을 영위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됐지만, 현대는 전통예능이 분화되고 전문화되어 모든 것을 학습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다보니 창극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배우로서의 연기술이나 무대가 매우 한정돼 있고, 체계적인 창극술을 배울 기회가 없다”라며 “그러한 점에서 국립창극단의 ‘창극아카데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국립창극단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한승석 작창가

한승석 작창가 “창이 없는 극은 창극일 수 없다”

창극을 창극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唱)이다. 창극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핵심요체가 창임에도, 정작 창을 만드는 일인 작창(作唱)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는 피상적이다. 

한승석 작창가는 “많은 사람들이 창극에서 작창의 위상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고, 판소리 전공자라면 누구나 웬만큼 작창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작창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극의 맥락과 흐름에 부합하면서도 음악적 아름다움을 지닌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판소리의 모든 음악기법에 정통해야 한다. 또한, 드라마적 감각과 텍스트의 함의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노랫말의 말맛을 살리는 것은 기본이고, 문장의 호흡과 장단의 리듬을 일치시켜 전달력을 극대화하면서도 판소리 특유의 음악장식을 적절히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창은 고도의 훈련과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전문 창작 영역’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곡의 일반적 의미는 ‘음악작품을 창작하는 일’이다. 창도 성악의 한 형태이므로 창을 만드는 일인 작창 또한 작곡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창극작품의 크레딧에 작창과 작곡이 따로 표시되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창극에서 사용하는 작곡의 의미와 역할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승석 작창가는 “창은 전문 소리꾼 출신의 작창가가 짜고 기악연주는 작곡을 전공한 작곡가가 맡는데, 주로 작품의 서곡, 창 반주음악, 브릿지음악, 배경음악, 효과음악, 무용음악 등을 작곡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음악 창작은 곧 작곡’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에 작창까지도 작곡자가 하는 것이라는 일부의 오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작창 관련 크레딧과 더불어 작곡 크레딧도 창극 관계자들이 논의해 한번은 정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짚었다.

근래 창극의 엄청난 인기와 상승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창극의 내실 다지기가 필요한 시기이다. 배우들의 능력 향상, 창극에 특화된 작가와 연출가 발굴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유능한 작창가 양성’이라고 한 작창가는 밝혔다. 그는 “음악극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동력은 수준 높은 음악에서 나오며, 창극음악의 정수는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극의 장점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시대와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을 꼽곤 한다. 최근 창극의 상승세는 창극의 이런 장점과 유연성에 힘입은 바 크다. 한승석 작창가는 “국립창극단이 소리 창작의 중요성을 깨닫고 ‘작창가 프로젝트’를 통해 인재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세간의 이목은 여전히 작가나 연출가에 쏠려있는 듯하다”라며 “창극의 본령은 창이고, 그 창은 작창가들의 지난한 학습과 고통의 산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