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월
  • 장석주
  • 승인 2010.03.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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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서울문화투데이

3월
                                              <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지 3월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빚어낼 일이다

 


3월이 온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오늘은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장석주 시인은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한다.
3월 햇빛에서는 비릿한 젖내음이 나고 산수유 나무가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우는 3월,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고 한다.
매해 자연이 주는 부산스런 선물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생명의 부활을 꿈꾸는 봄을 깊게 느끼라는 시라고 본다.

한국여성문예원 원장 김도경